개인회사 에스피네이처 통해 삼표산업 지배력 강화…최근 들어 회사 단장 ‘분주’
삼표그룹은 지난 11월 30일 임원인사를 통해 정대현 부회장의 승진 소식을 알렸다. 2019년 사장으로 선임된 지 4년 만이다. 부회장 승진 소식에 재계에선 향후 샴표그룹 3세 승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정대현 부회장의 후계작업이 이미 속도를 내고 있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간 에스피네이처를 통해 정대현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 강화에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에스피네이처는 골재, 레미콘 등의 제조·판매, 철스크랩 수집·가공·판매 및 제강슬래그 처리 대행업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2004년 건설기계대여업체 ‘대원’에서 출발했다. 이후 2013년 ‘신대원’, 2017년 ‘삼표기초소재’, 2019년 ‘경한’과 ‘네이벤’ 등 그룹사들과 연이어 합병하며 급성장했다. 에스피네이처의 연결기준 자산규모는 2013년 2465억 원에서 2022년 7572억 원으로 확대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에스피네이처의 최대주주는 정대현 부회장으로 지분율은 71.95%다. 나머지 지분은 특수관계자(24.48%)와 자사주(3.57%)로 구성돼 있어 정대현 부회장 개인회사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삼표산업이 유상증자를 통해 새로 발행한 보통주 195만 주를 에스피네이처가 600억 원을 투입해 사들이면서 에스피네이처의 삼표산업에 대한 지배력은 강화됐다. 에스피네이처의 삼표산업 지분율은 1.74%에서 17.21%로 15.47%포인트 높아졌다.
지난 7월에는 총수일가→(주)삼표→삼표산업 등에서 총수일가→삼표산업→계열사로 변화하는 삼표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에스피네이처를 통해 정대현 부회장의 삼표산업 지배력은 더 강화됐다. 삼표산업이 역합병을 통해 삼표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된 셈. 자회사가 모회사를 합병하는 역합병시 자회사의 주식은 전부 자기주식(자사주)이 된다. 자사주는 기본적으로 의결권이 없어 실질적인 지배를 나타내는 지분율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모회사인 삼표가 갖고 있던 자회사 삼표산업에 대한 주식이, 존속회사인 삼표산업의 자사주로 편입된 것이다.
역합병 이후 절반이 자사주였던 정도원 회장의 삼표산업 지분율은 65.99%에서 30.33%로 축소됐다. 정대현 부회장의 지분율도 5.22%로 낮아졌지만, 삼표산업 지분을 들고 있는 에스피네이처(18.23%)의 몫을 포함하면 정대현 부회장의 실질적인 지분율은 23.45%로 높아졌다. 역합병 전 정대현 부회장의 삼표(기존 지주사) 지분은 11.34%, 에스피네이처의 삼표 지분은 19.43%였다. 반면 에스피네이처의 삼표산업 지분율은 1.74% 수준이었다. 그러나 에스피네이처의 삼표산업 보통주 전량 인수와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거치면서 정도원 회장과 정대현 부회장의 지분 격차는 6.88%포인트 좁혀졌다.
정도원 회장의 사법리스크도 정대현 부회장의 승계작업 가속의 이유로 꼽힌다. 정도원 회장은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다. 앞서 지난해 1월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했다. 정도원 회장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유해·위험 요인 등 확인·개선 절차와 중대산업재해를 대비한 매뉴얼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중대재해법상 실질적이고 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가 정도원 회장인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 정도원 회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지난 10월 24일 처음 열렸으며, 오는 22일 2차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된다.
정도원 회장이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주장도 적지 않다. 앞서 정도원 회장보다 먼저 기소된 두성산업이 중대재해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재판부에서 기각됐다. 두성산업 대표는 지난 11월 3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이에 정도원 회장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도원 회장의 본격적인 법정 공방은 내년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오너의 빈 자리가 예상되면서 정대현 부회장의 승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다.
정대현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경영의 승계자로 선택된 상황에서 경영권을 온전히 넘겨받기 위해 실탄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에선 에스피네이처가 정대현 부회장의 실질적인 자금줄이라고 보고 있다. 에스피네이처는 고배당 기조로 정대현 부회장에게 배당금을 두둑하게 챙겨주고 있다. 에스피네이처는 △2018년 31.99% △2019년 75.77% △2020년 135.62% △2021년 117.12% △2022년 59.89% 등 높은 배당성향을 보였다. 이 기간 최대주주 정대현 부회장은 △2018년 36억 원 △2019년 72억 원 △2020년 94억 원 △2021년 90억 원 △2022년 53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정대현 부회장이 배당금으로 확보한 현금을 정도원 회장의 주식을 증여 받을 때 세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SP성수PFV(주)가 추진하는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삼표 부지) 개발사업에 에스피네이처 등이 투자해 실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SP성수PFV(주)는 삼표레미콘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금융회사로 삼표산업이 지분 95%를 보유 중이다. 지난 17일 서울시는 ‘글로벌 미래업무지구’ 조성 관련, 성동구 성수동의 삼표공장 부지와 그 일대를 선정했다. 서울시는 SP성수PFV(주)와 내년 사전협상을 완료하고 2025년 인허가 및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에스피네이처 투자 등에 대해선)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정대현 부회장이 자사주를 활용해 승계 작업을 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IB업계 관계자는 “정대현 부회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사주를 확보해 정도원 회장의 주식을 상속받지 않고 삼표산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스피네이처가 향후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실제 에스피네이처는 최근 회사 단장에 분주하다. 특히 신사업 추진에 적극적이다. '일요신문i' 취재 결과, 에스피네이처는 21일 삼표산업이 보유하던 경기도 파주시 일대 토지 57만 2868㎡를 523억 원에 매수했다. 거래 목적은 ‘건설폐기물 재활용 및 폐기물 관련 신사업’이다. 지난 10월에는 새 기업이미지(CI)를 출원했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올해 에스피네이처 행보가 특별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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