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 영화’ 제작진 몸 사렸지만 정계 반응 폭발적…여 “윤 정권, 검찰 하나회” 야 “덮어씌우지 말라” 공방
12월 2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꺼낸 말이다. 이날 국방위에서는 때 아닌 ‘서울의 봄’ 설전이 오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2019년 신 장관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12·12 군사반란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공백기에 나라를 구해야겠다고 나왔다고 본다”고 말한 사실을 줄곧 문제 삼고 있다. 12·12 군사반란을 옹호했다는 지적이다. 마침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상황에서 영화와 연결해 신 장관의 생각을 재차 확인하려는 시도가 국회에서 계속되고 있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과 정우성이 주연한 ‘서울의 봄’을 둘러싼 불씨가 정치권으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11월 22일 개봉 직후부터 뜨겁게 달아올라 어느새 1000만 관객 흥행을 앞둔 영화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다룬 ‘변호인’, 6월 민주항쟁을 그린 ‘1987’ 등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흥행할 때마다 정치권은 이에 반응했지만 이번 ‘서울의 봄’을 둘러싼 열기는 그 이상이다.
영화가 집요하게 파고든 신군부에 의한 정권 탈취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그 여파가 내년 총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와 ‘우려’까지 교차하고 있다.
#정치권과 엮이지 않으려던 ‘서울의 봄’
‘서울의 봄’ 측은 정치권과 연결되는 상황을 극도로 꺼렸고 제작 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가장 조심스러워했다. 때문에 ‘서울의 봄’ 측은 영화를 공개하는 시사회 직전까지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시사회 전 진행되는 제작보고회도 열지 않았다. 시사회 역시 횟수를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제작진은 이렇게 몸을 사린 이유를 한 번도 밝히지 않았지만 영화계에서는 그 배경을 충분히 짐작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영화에 유독 너그럽지 않은 현 정권의 기조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과 우려로 인해 ‘서울의 봄’은 개봉 직후 보통 주연 배우들이 진행하는 언론 인터뷰 역시 계획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 혼자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잡았다. 황정민과 정우성의 인터뷰 역시 진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제작진이 원하는 대로 ‘조율’할 수 있는 유튜브 출연만큼은 예외였다.
하지만 개봉 직후 작품을 향한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호평이 이어지면서 처음의 방침을 선회했다. 극 중 이태신 장군 역의 정우성과 노태우를 빗댄 노태건 역의 박해준 등 배우들이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임한 각오를 하나둘 밝혔다. 그런 상황에서도 ‘반란군 수장’ 전두환을 빗댄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은 앞에 나서지 않았다. 방송사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출연 요청도 쏟아졌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끝까지 몸을 사린 이유도 비슷하다.
대신 배우들은 200회가 넘는 무대인사를 통해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광주까지 전국 극장을 찾았다. 무대인사의 피날레는 광주에서 맞았다. 황정민은 광주의 한 극장에서 “서울의 봄이 광주에 오길 43년을 기다렸다”고 쓴 관객의 피켓을 보고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에 따르면 ‘미안해서’ 흘린 눈물이다.
#국회·보수단체·교원단체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초반 상황과 달리 지금 ‘서울의 봄’은 영화계보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더 활발히 거론되고 있다. 제작진의 의도가 무색하게 그야말로 ‘봉인해제’ 된 상황. 여야 할 것 없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회, 보수단체, 전교조가 한데 얽힌 ‘서울의 봄’ 핫이슈가 뜨겁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서울의 봄’ 관람 이후인 12월 18일 SNS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영화 관람을 권했다. 당시는 윤 대통령이 검사 선배인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지명하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때였다. 박 전 원장은 소위 ‘검찰 라인’으로 이뤄진 인사를 ‘서울의 봄’에 등장하는 신군부 세력 하나회에 빗대면서 “검찰 하나회로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최근 국회 국방위에서는 ‘서울의 봄’에 등장한,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다가 숨진 고 정선엽 병장에 대한 훈장 추서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등장했다. 정 병장은 제대를 3개월 앞둔 1979년 12월 13일 새벽 지하벙커를 지키다 반란군의 총탄에 전사했다. 이에 신원식 국방장관은 “정확하게 공적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보수단체들도 바빠졌다. 전교조에 따르면 자유대한호국단이라는 이름의 보수단체가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한 용산구 소재 학교의 교장을 직권남용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한 실천교육교사모임의 간부까지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보수단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 앞에서 단체관람을 비판하는 집단 시위까지 벌였다. 이에 전교조는 “12·12는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며 학생들이 자기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학교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맞섰다.
#1200만까지 넘보는 영화, 총선까지 영향?
극장가에서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가뿐하게 넘어 내년 1월에도 흥행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1200만 동원도 가능하다는 예측에도 힘이 실린다. 2024년 초에도 화제의 중심에는 ‘서울의 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현재 민주당은 검찰이 득세하는 현 정권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서울의 봄’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서울의 봄을 이용해 군부독재 이미지를 윤석열 정부에 덮어씌우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하나회를 척결한 주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총선 전까지 여야 공방이 달아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서울의 봄’이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영화의 힘은 때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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