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사건 유가족 여전히 사과 듣지 못해…HUG에 배신당한 전세 피해자들 소송으로 새해맞이
#흉기난동 희생자 유가족 "상식적 판결 요구"
2023년 국민들에게 '최악의 기억'으로 남은 사건 가운데 하나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벌어진 최원종 흉기난동 사건이다. 역대급 공분을 일으키며 '이상동기 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어느새 관심은 잦아들었다. 와중에 피해자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8월 3일 일요신문과 최초로 인터뷰한 고 김혜빈 씨(20)의 가족들은 2024년 1월 4일자 달력에 주목하고 있다. 서현역에서 딸을 숨지게 한 최원종(22)의 다음 공판이 예정된 날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부(강현구 부장판사)는 최원종 측의 정신감청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진행 중이다.
혜빈 씨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인 법원에 대해서도 유감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감형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여지를 제공한 자체만으로도 섭섭할 따름이다. 2023년 8월 28일 하나뿐인 딸이 하늘의 별이 되고 100일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4차 공판에 그치는 등 재판 지연도 답답하기만 하다.
서현역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고 이희남 씨(65) 유족들도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긴 마찬가지다. 이들 유족은 다음 공판에서 참고인 성격으로 증언에도 나선다. 이희남 씨 한 가족은 "가해자 측에 한마디 사과조차 듣지 못했다"면서도 "증언에선 엄벌을 촉구할 것도 없이 상식적인 판결을 요구할 뿐"이라고 전했다.
최원종은 9월 1일 한 언론사에 자필 편지를 보내 피해자들에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두 번째 공판을 마친 지난 9월 19일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은 정작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유족과 피해자들이 꾸준히 확인을 요청했음에도 최원종 변호인 측이 거절한 탓이다. 그런 뒤 정신감정을 요청한 행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먼저 챙긴 방역노동자
코로나 방역노동자로 일하다 소독액에 노출되는 사고로 심각한 화상 등을 입은 김정태 씨(46)는 다시 만나보니 본인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먼저 챙기고 있었다. 수만 명의 시민을 아프게 한 유해물질을 활용한 기업에 책임을 묻고, 이 물질들의 사용을 허가한 제도를 바꾸겠다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돕고 있었다.
그는 서울 광진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방역노동자로 일하다 2020년 8월 24일 소독액에 직접 노출되는 사고로 화상에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됐다. 최근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검토했으나 잠시 미뤄둔 상태다(관련기사 [단독] '공중분사 금지' 표기 추진 이제서야…방역소독제 위험 방치 논란).
김 씨는 "혼자 싸우려다 보니 비용의 한계도 컸고 제 사고의 표면적 원인이 공무원들의 안전 불감증 등에서 비롯된 만큼, 그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며 "제도적으로 허가된 유해물질로 고통을 겪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연대해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연 그의 새해 첫 소망은 2024년 1월 11일로 예정된 애경산업 등 가습기살균제 사용 기업들에 대한 항소심 유죄 판결이다. 김 씨는 "유죄가 안 나오면 앞으로 어떤 기업이든 유해물질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과 다름없다"며 "다음 판결을 계기로 2024년부터는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괘씸죄? 가해자보다 심한 벌 받은 박인아 경위
직속상관인 파출소장의 갑질을 폭로하다 징계를 받은 서울 성동경찰서 뚝섬치안센터 박인아 경위는 연말연시를 맞아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박 경위는 경찰청 감찰에서 갑질 혐의가 인정돼 '견책'을 받은 파출소장 정 아무개 경감(60)의 역진정 때문에 12월 6일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심한 벌을 받은 셈이다.
박 경위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은 상식 밖 전개가 반복되며 경찰 안팎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조직 내부의 치부를 언론 등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다 '괘씸죄'에 걸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관련 기사 [단독] 서울경찰청 '갑질 피해' 박인아 경위 보복감찰 논란). 그는 현재 인사소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현장 경찰관들이 겪는 불합리한 실태가 수면에 오르기도 했다. 상급기관인 광주경찰청에서 민원을 상담한 뒤 허위 병가 등을 의심 받아 경찰서장 등으로부터 고발당한 끝에 무혐의를 받은 광주 북부경찰서 소속 A 경사도 한 예다(관련기사 [단독] '시간선택제 문제제기 하자…' 여경, 소속 경찰서와 법적다툼 준비 내막).
A 경사는 간신히 억울함은 벗었지만 여느 때보다 피곤한 연말을 보내는 중이다. 자신을 고발한 여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경찰청 본청에 감찰을 촉구했는데 진행이 너무 더디다. 약 두 달 동안 3차례 조사가 이뤄진 게 전부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피해를 토로하며 진정을 제기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
A 경사는 "저를 향한 무고 등을 입증할 정황들을 상당수 확보한 만큼, 경찰청 감찰과 인권위 등에서 바람직한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내다본다"며 "새해에는 저는 물론 박인아 경위 등 모든 일선 경찰관들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환경에서 민생 치안에 집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HUG 상대로 소송 나서
'사기꾼에 속고 정부기관한테 배신당했다'고 토로해온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2024년을 소송으로 시작한다. 집주인 B 씨의 허위 서류가 발견됐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임대보증금 보증의 '중도취소' 통보를 받은 2030세대 청년들이다(관련기사 HUG 너마저…전세금 보증 중도 취소에 2030 세입자 '날벼락').
집주인 B 씨는 사건이 공론화한 직후 잠적했다. 그러다 최근 붙잡혀 검찰에 송치됐고, 12월 20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결과 그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으로 건물을 매입하거나 채무변제 등에도 사용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약 150명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HUG의 부실한 관리 체계를 지적하며 구제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100명 안팎의 피해자들이 HUG를 상대로 민사소송 등에 나섰다. 다만 분위기는 좋지 않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HUG 측에 각종 질의를 보내도 묵묵부답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를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듯한 태도에 더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10월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의 질타가 이어지는 등 큰 문제로 지적됐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피해자들의 피해를 구제할 대책을 강구해달라'는 질의에 유병태 HUG 사장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현재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 방안을 함께 고민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지도교수와 갈등에 놓인 예비 박사들
이 같은 사례들은 사회 전체로 보면 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현실에서 고소·고발이나 언론 인터뷰 등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자체로 부담이 크다. 가해자가 무혐의를 받게 되거나 피해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되레 피해자가 보복이나 제보자 색출 등으로 더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더 큰 용기를 내기 힘든 구조 안에서 남몰래 끙끙 앓는 평범한 이들이 많다.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중독학과 학생들이 이와 비슷한 경우다. 중독 분야 전문가를 꿈꾸는 학생들이지만 남도 아닌 지도교수와 갈등에 놓였다. 권리 회복을 위해 기댈 곳은 오로지 학교의 교직원 등 주변의 어른들뿐이다.
학생 가운데 일부는 수년 동안 한 번도 논문지도를 못 받았다고 알려졌다. 또 올여름 미국 연수 때는 지도교수를 따라온 아내도 응대하며 경비를 나눠 쓰기도 했다. 당시 지각한 일부 학생들은 아내에게 '교수를 우습게 보나' 등 질타도 받았다고 전해졌다(관련기사 '교수님 사모님이 미국 연수에 왜…' 가톨릭대 중독학과에서 무슨 일이?).
12월 22일 가톨릭대 인권센터는 관련 조사를 마치고 사건을 인권심의원회에 넘겼다. 인권센터는 경찰, 심의위는 검찰로 비유된다. 심의위 조사를 마치는 대로 최종 단계인 징계위원회로 회부할 전망이다. 주요 안건에는 해당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청탁금지법상 한도를 넘는 식사나 선물 등을 받은 정황도 있다.
해당 교수는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거부했다. 학교 측은 물론 소속 대학원장과 대학총장 등도 아직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만 해당 교수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고 알려졌다. 학생들은 엄정한 조사는 물론 혹시 모를 2차 피해 방지책 마련까지 학교 측에 요구하고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
‘독도’ 노래한 엔믹스에 일본서 역대급 반발…일본서 반대 청원 4만건 돌파
온라인 기사 ( 2024.11.18 09:45 )
-
동덕여대 공학 전환 사태에 동문들 “훼손 용납 안 돼” vs “근간 흔든다”
온라인 기사 ( 2024.11.17 16:06 )
-
한국 조선은 미국 해군 ‘구원병’ 될 수 있을까
온라인 기사 ( 2024.11.19 16: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