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 제품이 이끄는 D램 시장
2023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다. 2018~2019년 이어진 반도체 하강 국면보다 불황의 늪이 한층 깊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탓에 정보기술(IT) 전방산업 수요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 탓에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했다.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은 D램 감산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2022년 말부터 공급량 조절에 나섰다. 2023년 4월 삼성전자도 1998년 이후 25년 만에 D램 감산을 공식 선언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재고 관리에 나섰지만 2023년 실적 악화는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2023년 1분기 4조 5800억 원, 2분기 4조 3600억 원, 3분기 3조 75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하이닉스도 2023년 1분기 3조 4023억 원, 2분기 2조 8821억 원, 3분기 1조 792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2023년 삼성전자 DS 부문은 13조 7000억 원대, SK하이닉스는 7조 900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2023년 말부터 D램을 중심으로 상황은 나아지는 분위기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의 2023년 4분기 평균판매단가(ASP)가 2023년 3분기 대비 3~8%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문별로는 PC·서버·그래픽·소비자용 D램이 각각 3~8% 오르고 모바일용 D램이 3~10%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D램 가격도 상승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11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1.55달러로 10월(1.50달러)보다 3.33% 상승했다. PC용 D램의 10월 평균 가격은 9월 대비 15.38% 올랐다. 2021년 7월 이후 2년 3개월 만의 반등이다.
2024년에는 특히 HBM 판매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생성형 AI 시장이 성장하면서 엔비디아·AMD·인텔 등을 중심으로 AI 가속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을 가능하게 한 AI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다.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50% 정도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4세대 제품인 HBM3를 2022년 6월부터 독점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2024년 2분기 양산 예정인 5세대 제품 HBM3E 최종 품질 테스트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HBM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역시 HBM3 공급을 늘리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 말부터 HBM3를 엔비디아와 AMD 등 주요 고객사들에 공급할 예정이다. 2024년 3분기에는 HBM3E를 양산할 예정이다. HBM 시장 점유율이 5% 수준인 마이크론도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HBM3E를 납품하기 위해 마지막 검증 단계를 밟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세대 제품인 HBM4를 선제적으로 개발하며 기술 격차를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D램 고부가 제품 중에서는 DDR5도 주목 받는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스마트폰이나 PC 쪽 수요가 전폭적으로 되살아났다고 보긴 이르다. 하지만 DDR4에서 DDR5로 전환하려는 서버 회사들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온디바이스 AI(인터넷 접속 없이 스마트폰 등 단말기 내에서 연산과 추론을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것)가 확산하는 점도 DDR5 수요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이유로 2024년 삼성전자 DS 부문과 SK하이닉스는 흑자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전자 DS 부문은 2024년 1분기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도 2024년 1분기엔 흑자 전환이 예상되는데, 2023년 4분기에도 손익분기점(BEP) 수준까지는 (실적이) 올라올 것 같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23년 4분기 흑자 전환 전망을 내놓는 곳도 있다”며 “양사 모두 D램 매출 비중이 각각 60% 정도씩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낸드플래시, 회복까지는 시간 걸릴 듯
낸드플래시 시장은 아직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의 정보저장장치 역할을 하는 낸드플래시는 IT 기기 수요 감소 직격탄을 맞았다. 엄재철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 정책부회장은 “낸드플래시는 수요를 드라이브할 요소가 많지 않고, 이미 기술이 발달한 스마트폰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스마트폰 구매를 유발할 요인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3년 20조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올라가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카드와 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10월과 11월에 각각 전월 대비 1.59%, 5.41% 상승했다. 2021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반등한 것이다. 하지만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은 수요는 미진한데 강도 높은 공급 감산을 진행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2024년 하반기가 돼야 좋아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나온다. 제조업체들의 감산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024년 하반기 반도체 전반적으로 수요가 되살아날 때 낸드플래시 시장도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원우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결국엔 전방 수요가 얼마나 회복되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AI 관련 수요가 늘어나다 보면 저장에 대한 니즈도 있을 수 있다. AI 영향이 아직 낸드플래시 시장에 반영은 안 된 상황”이라고 했다.
전기차 시장 둔화에 광물 가격 하락…불확실성 고조되는 2차전지
2024년 2차전지 업계는 ‘불확실성’이라는 장막에 휩싸여 있다. 국내 배터리 셀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배터리 소재 업체로는 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 등이 있다.
우선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는 추세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2024년 전기차 시장은 성장은 계속되겠지만 (과거에 비해) 성장세는 둔화될 것”이라며 “완성차 제조사의 실적에 따라 (국내 배터리 셀, 소재사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GM과 포드 등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 계획을 연기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되며 국내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 약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광물 가격 하락으로 인한 영향은 2024년에도 작용할 전망이다. 박종일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2차전지 업계는 광물 가격 하락에 맞물려 2024년 상반기까지는 수익성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며 “2024년 하반기에는 광물 가격 하락이 둔화되면서 2024년 상반기 대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배터리 셀과 소재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판가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2024년 11월 있을 미국 대선도 변수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권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 시 전기차 전환 정책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방향성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세계 각국의 친환경 정책 방향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시적 수요 둔화 가능성은 존재하더라도 전기차로의 대전환 방향성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도 “장기적으로는 내연기관차는 퇴출될 수밖에 없다. 속도는 늦어져도 방향은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본다”라고 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