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진행으로 '잡음'
지난 12월 1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공헌재단)'이 주최한 '제18회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대회장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과 같은 당 최재형 의원이 직접 참석해 사회 공헌 기업 40여 곳에 정부표창을 시상했다.
이번 행사는 개최 전 일정·장소가 갑자기 바뀌는 등 혼선이 이어졌다. 실제 주최 단체인 공헌재단 사이트에는 여전히 잘못된 일정과 장소 등이 공지돼 있을 정도다.
일부 참석자들은 행사 당일에도 장소를 헤매다 겨우 찾아왔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넘게 소통해온 주최 측 관계자들이 돌연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기자 번호를 차단까지 했다. 결국 이용호 의원실 안내로 간신히 입장했다.
수개월 전부터 의문이 따른 행사였다. 2023년 8월까지는 '대통령상'도 시상한다고 돼 있었지만 갑자기 사라졌다. 이용호 의원도 대회장을 맡을지 고심을 거듭했다고 전해졌다. 주최 단체와 행사의 불명확한 성격을 놓고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 "단체명 탓에 재단법인으로 오해"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주최 측인 공헌재단은 명칭과 달리 '재단법인'이 아니었다. 이곳은 '비영리 임의단체'(임의단체)다. 법인의 실체는 없이 지역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마친 단계다. 자본금 등 제반 여건이 부족하거나 공익 및 친교 목적의 집단이 까다롭지 않은 절차로 활동을 허가 받을 때 주로 활용한다.
물론 임의단체도 행사를 열고 후원도 받을 수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공헌재단은 서울시 등의 후원을 받고 행사를 열었다. 이는 단체가 서울시에 '비영리 민간단체'(비영리단체)로도 등록했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는 지자체에 보조금 등을 신청할 수 있다.
이마저도 서울시는 단체를 재단법인으로 인지한 채 후원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2023 사회공헌대상 지원계획'을 보면 주최 측을 "2019년 재단으로 변경했다"고 소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영리단체에도 후원이야 가능하지만 단체명 탓에 재단법인으로 알고 후원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당 단체는 2019년 '대한민국전문가자원봉사자연합회'에서 이름만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으로 변경했다. 이후 대표자의 직함을 '회장'에서 '이사장'으로 바꾸고 기업 등을 상대로 사회적책임(CSR) 인증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헌재단을 향한 의구심은 더 있다. 홈페이지에 '기부금단체'라고 밝혔으나 국세청 공익법인 목록에 없다. 이 같은 혼란은 해당 단체가 대단히 복잡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러 단체와 법인을 분별이 힘들게 만들어 내고,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오가는 사업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돈 흐름도 말끔하지 않다.
#비영리단체가 '주식회사' 등기 왜?
약 10명이 상주하는 공헌재단 사무실에는 임의단체·비영리단체·사단법인·기부금단체 등 최소 6개 집단이 공존하고 있다. 전부 공헌재단 이사장이자 대학교수인 A 씨가 주도하는 곳으로 일부는 주식회사 형태도 띤다.
우선 기부금단체로 지정된 곳은 '국제협력개발협회'라는 사단법인이다. 자세한 공익 활동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2020~2022년 1억여 원의 기부금을 받았으나 지출 내역은 비공개다.
이 협회의 기부금이지만 돈은 공헌재단이 쓰는 듯 비친다. 기부금단체는 자금 활용 실적을 홈페이지에도 공지하도록 규정됐는데, 여기는 공헌재단 산하 '어머나운동본부'라는 곳이 따로 운영하는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어서다.
A 교수는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KSI)'도 이끈다. 역시 임의단체로서 서울시에는 2013년 '서비스업 에너지 절약 운동' 등을 한다며 비영리단체로 또 등록했다.
문제는 KSI는 2020년에는 '주식회사'로도 등기됐다는 점이다. 사업 내용은 경영컨설팅 등이다. 비영리단체의 주식회사 등기는 위법이지만 KSI는 편법의 경계를 활용했다. 비영리단체는 동일명칭 관련 규제가 없어 '주식회사 KSI'는 같은 이름의 별도 기관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A 교수는 주식회사 KSI의 사내이사로도 등기돼 있다. KSI의 '비영리단체장 A 교수'와 '사내이사 A 교수'를 각각 다르다고 봐야 할까.
서울시 관계자는 "구성원이 겹쳐도 동일명칭 개별 단체라고 주장하면 규제할 수단이 없다"며 "지자체는 자격 요건에 따른 비영리단체 등록이 주요 업무라 운영상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사로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단체 뒤얽혀 '회계 불투명' 지적
A 교수 단체들의 석연찮은 행보는 더 있다. 이를 알려면 기부금단체인 '국제협력개발협회'를 잠깐 되짚어야 한다. 등기부상 이곳 전신은 국제두피모발협회(KAT)다. 2008년 설립된 KAT가 2021년 국제협력개발협회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KAT도 당연히 A 교수가 대표로서 2012년 서울시 비영리단체로도 등록했다. 현재 '가모관리사' 등 각종 민간자격증을 제작·발급하고 있다. 두피 분야 컨설팅·평가도 한다. 비용은 기본 300만 원, 인증 항목당 100만 원이다. 200만 원짜리 멤버십도 모집한다. 특이하게도 관련 문의처는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이 적힌 이메일이다. 이 밖에도 A 교수가 사회공헌재단 안에서 운영하는 단체들은 'K-ESG 평가원' 등 여러 개가 더 있다.
대부분 표면상 비영리지만 임의단체로 컨설팅·자격증·인증 등으로 수익을 내는 게 특징이다. 엄연히 별개인 단체와 업체들이지만 한데 뒤섞어 운영하다 보니 기부·후원자의 혼란과 회계 불투명성을 심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회계사는 "임의단체 등은 회계장부 신고 의무가 없어 법인보다 회계규정도 비교적 느슨하다"고 설명했다.
A 교수는 "기부금의 경우 큰 액수는 아니지만 공헌재단 등 다른 단체가 쓰지 못하도록 회계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주식회사 KSI는 여러 사정상 등기만 하고 실제 영리 사업은 추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다수 비영리단체 등록 이유'에 대해 "지자체 등과 각종 협력을 하려면 비영리단체로 등록해야 할 때가 있다"며 "업계에서 흔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소규모라 미흡한 점이 일부 있어도 사회공헌을 위한 뜻만큼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수상 이후 '홍보' 명목 돈 낸 기업들
A 교수의 단체들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입원이 적절한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다시 12월 14일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시상식. 개최 이전부터 각 정부 기관들은 표창장 제작 및 기타 후원 등을 위한 예산집행으로 분주했다. 이를 통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서울시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소방청장, 국회의장, 보건복지부 장관, 교육부 장관, 외교부 장관, 식약처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등이 수여됐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상당수 기업들이 수상 이후 '홍보분담' 명목의 돈을 낸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 후원 등으로 공헌재단이 주최한 행사지만 입금처는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KSI)'이었다. 이날 상을 받은 기업에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들도 포함됐다.
1년 전 서울시의회 상을 받은 한 기업이 2023년에는 장관 표창을 받았다. 한 피부 마사지 업소는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상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전부 A 교수가 대표인 국제두피모발협회(KAT) 등의 관계자들이다.
A 교수는 "KSI는 공헌재단의 협력기관으로 상을 받은 기업 등과 홍보책자 제작 필요성 등에 협의를 거쳤다"며 "원칙과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수상 기업은 부처 등 기관의 공적 평가를 통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시상식은 18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유력 인사가 대회장을 맡았다. 1~5회 고 이윤구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후부터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바통을 이어온 게 특징이다. △6회 최경희(새누리당) △7회 유재중(미래통합당) △8회 김을동(새누리당) △9회 나경원(자유한국당) △10회 이인제(새누리당) △11회 정우택(국민의힘) △12회 김두관(더불어민주당) △13회 원혜영(민주당) △14회 민병두(민주당) △15회 노웅래(민주당) △16회 이개호(민주당) △17회 이용호(국민의힘) 의원 등이다.
기자가 4시간 만에 '분노조절상담사' 자격증 딴 비결
A 교수의 비영리단체 가운데에는 'H 개발원'도 있다. 주식회사로도 등기돼 있다. 비영리단체는 A 교수, 주식회사는 B 씨가 대표다. 이곳은 수십여 종의 민간자격증 온라인 강의와 시험 제공 및 자격증 발급 등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과거 '한국인터넷신문방송기자협회'에서 나란히 자문위원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이 협회는 A 교수의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KSI)과 정부 후원을 받고 '공정사회발전대상' 시상식을 공동주최한 적이 있다. B 씨는 2015년, A 교수는 2019년 상을 받았다.
2022년 10월에는 H 개발원과 KSI가 업무협약을 맺었다. KSI가 민간자격증 약 63종의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KSI가 지원한 H 개발원의 온라인 강의는 체계적일까. 기자가 '분노조절상담사' 자격증에 도전해봤다. 불과 4~5시간 동안 2배속 재생만 시켜 놓고 수강을 마쳤다. 곧장 온라인 시험을 치러 95점으로 합격했다. 함께 첨부된 기출자료집과 문제가 많이 겹친 덕분에 커닝이 가능했다.
수강료는 무료였지만 '콘텐츠 이용료' '자격증발급' '택배비' 등 9만 3000원이 청구됐다. 3일 안에 내지 않으면 자격이 취소된다고 한다. 사실상 돈만 내면 취득 가능한 민간자격증의 무분별한 남발 실태는 그동안 언론 등에서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A 교수는 "비영리단체 H 개발원은 산업계에 필요한 여러 직무개발 등을 위해 오래 전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했는데 지금은 활동량이 많지 않다"며 "주식회사 H 개발원은 저희와 업무협약만 맺었을 뿐 기타 구체적인 사항은 잘 모른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