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사업 추진단과 유사"
삼성전자는 2023년 8월 새로운 기술과 제품 확보를 위해 DX 부문 직속의 ‘미래기술사무국’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이어 11월 신사업 발굴을 위한 조직 ‘미래사업기획단’을 출범시켰고, 최근에는 DX 부문에 ‘비즈니스개발그룹’이라는 신사업 개발 조직을 추가로 신설했다. DX 부문은 가전제품 및 스마트폰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 놓고 삼성전자가 대규모 M&A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 4000억 원)에 인수한 이후 M&A와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연이은 재판과 2017년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해체로 삼성전자가 M&A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미래사업기획단은 삼성전자와 전자 계열사의 10년 미래 먹거리 신사업 발굴에 초점을 두고, 특정 부문에 종속되지 않고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운영될 전망”이라며 “미래사업기획단은 2009년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을 기획해 배터리와 바이오 사업을 확대한 신사업 추진단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전장 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미래사업기획단 출범 다음날인 11월 28일 삼성전자는 자회사 하만을 통해 음악 관리·검색·스트리밍 플랫폼 ‘룬’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삼성의 역사와 현재 삼성의 상황을 통해 다음 투자의 대상으로 전장을 주목한다”며 “미래사업기획단 신설 발표 이후 바로 하만의 룬 인수 소식이 발표됐다. 이를 통해 삼성은 ‘전장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수직계열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대형 M&A에 나서기에는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2022년 1~3분기 39조 705억 원에서 2023년 1~3분기 3조 7423억 원으로 90.42% 감소하는 등 실적이 악화됐다. 또 고금리 기조에 따라 부담이 가중됐고,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성공적인 M&A를 장담할 수도 없다.
M&A 시장 자체도 축소되는 분위기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2023년 매출 기준 500대 기업 중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356개 기업을 대상으로 M&A 현황을 조사한 결과 M&A 건수는 △2021년 166건 △2022년 158건 △2023년 60건으로 감소세에 있다.
#2인자에 시선 주목
삼성전자는 2023년 11월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으로 선임했다. 이번 인사 발표 후 삼성전자가 미래기술사무국과 비즈니스개발그룹보다 미래사업기획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미래기술사무국장과 비즈니스개발그룹장은 김상태 부사장과 백종수 부사장이 각각 맡고 있다. 전영현 부회장이 이들을 직급에서 앞서고 있다. 또 미래기술사무국과 비즈니스개발그룹은 어디까지나 삼성전자 DX 부문 산하 조직이다.
재계에서는 최근까지 삼성그룹 2인자로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부회장)을 거론했다. 사업지원TF는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의 미래 전략과 인사 전반을 총괄해왔다. 정현호 부회장도 삼성그룹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사업기획단이 출범하면서 사업지원TF의 신사업 관련 권한이 일부 분산될 전망이다.
삼성그룹의 역사를 살펴보면 2인자로 평가받은 인물은 대부분 컨트롤타워의 수장을 맡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각각 전략기획실장과 미래전략실장을 맡았다. 정현호 부회장이 2인자로 거론된 것도 사업지원TF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전자에 미래사업기획단이라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이 추가로 신설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전영현 부회장과 정현호 부회장이 2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 구도를 형성한 셈이다.
미래사업기획단의 주요 구성원은 전영현 부회장을 비롯해 정성택 삼성전자 부사장, 이원용 삼성전자 상무 등이다. 이들은 모두 경력직 입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영현 부회장은 LG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정성택 부사장은 맥킨지, 도이치텔레콤 등에서 근무하다가 2022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이원용 상무 역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활동하다가 2012년 삼성전자에 합류한 인물이다. 정현호 부회장이 1983년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삼성전자 "신사업 발굴 위한 부회장급 조직"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미래사업기획단이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지 주목하고 있다. 미래전략실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경유착의 통로로 활용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비판 여론이 불거지자 2017년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재계에서는 이미 2022년부터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부활설이 나돌곤 했다. 수십 개 계열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중장기 성장 전략 마련을 위해서는 총수 주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관련기사 ‘이재용 결정에 달렸다’ 삼성 그룹컨트롤타워 부활설 막후).
재계 한 관계자는 “미래사업기획단이 당장은 회사 전체를 컨트롤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신사업 발굴을 염두에 둔 모양새”라면서도 “사업지원TF와 업무 조정 등을 거치면서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신사업 발굴을 위해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을 뿐,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설립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의 인사·기획·지원·재무 등을 총괄한 반면 미래사업기획단은 미래 먹거리 개발을 중점적으로 맡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미래사업기획단에 대해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신사업 발굴을 위한 부회장급 조직”이라며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해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러시아 공장 매각할까?
현대자동차가 최근 러시아 공장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삼성전자 러시아 공장 매각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3년 12월 19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공장을 아트파이낸스에 1만 루블(약 14만 원)에 매각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주에 TV 생산 공장을 보유 중이다. 해당 러시아 공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3월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는 사이 삼성전자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도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적지 않은 손해를 입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러시아 전자제품 판매법인 SERC와 러시아 TV 생산 법인 SERK는 2021년 각각 935억 원, 777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각각 489억 원, 1044억 원의 순손실을 거두며 적자전환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공장 운영 계획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시장은 폐쇄적인 특성상 한번 철수한 기업은 재진입이 어렵고, 이탈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이후에는 점유율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우리 기업의 공백을 중국 제조업체들이 차지할 경우 우리 기업의 러시아 시장 재진입 및 점유율 확보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