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갑질 논란’ 경비원 돌발성 난청 산재 인정, 법원도 ‘상당한 인과관계’ 판단…이명희 측 항소
#이 고문 폭언 스트레스로 난청 얻은 경비원
지난 11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이 2019년 이명희 고문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근로복지공단 일부 승소 판단을 내렸다. 12월 15일 이 고문은 항소장을 제출했다.
A 씨는 2014년 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이명희 고문의 주거지인 조양호 회장의 평창동 자택에서 24시간 2교대 형태로 시설경비·정원관리·내실보조·주방업무와 동물 관리·쓰레기 정리 등 기타 업무를 담당했다. A 씨는 이 고문 자택에서 일을 시작한 지 약 1년 후인 2015년 좌이 돌발성 난청이 발병해 입원치료를 받았다. 2018년부터는 우이 돌발성 난청으로 진료를 받았다. 이전에 A 씨가 유사한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A 씨의 돌발성 난청은 이명희 고문의 과거 갑질 폭행 논란과 무관치 않다. 앞서 2018년 이 고문은 주거지에서 근무하는 운전기사, 경비원 등에 대한 상습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 고문은 2020년 11월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았다. 이 고문은 사택 경비원들을 7회에 걸쳐 상습 폭행하고 21회에 걸쳐 관리소장에게 화분·철제 전지가위·모종삽 등을 던지는 방법으로 폭행했다는 범죄사실 등을 인정받았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사실상 피고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상습 폭언과 폭행을 저지른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며 “다만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원만하게 합의한 점, 범행이 순간적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아량을 베푸는 태도로 나머지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A 씨는 이 형사 사건의 피해자로 적시되지는 않았다. A 씨는 이명희 고문을 모욕 혐의로 형사 고소했지만,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2019년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다만 형사사건 진술 등에서 이 고문이 A 씨에게도 폭언과 욕설을 한 사실이 기재됐다. A 씨는 요양급여 신청 과정에서 “(이 고문으로부터) 폭언과 욕설을 당한 것은 일상적이고 너무 많아서 특정할 수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 씨가 얻은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 등 업무상의 이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 근로복지공단은 A 씨에게 2019년 요양급여와 휴업급여, 장해급여를 합쳐 약 4100만 원을 지급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명희 고문에게 구상금을 청구했다. 산재보험법 87조는 제3자의 행위로 인한 재해일 경우 제3자에게 구상금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구상금에 대해) 납입 지도와 통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납입하지 않을 경우 구상금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민호 변호사는 “구상금 청구 소송에 이른 이유는 양측의 대화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 입장에서는 구상권을 행사해야 사업주가 근로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80% 손해배상 책임 인정…소송은 2심으로
이번 재판의 쟁점은 이명희 고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어떻게 책정할지였다. 재판부는 이 고문에 구상금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형사 사건에서 인정된 피고의 다른 피해자들에 한 언행을 감안해 보면, 피고가 A 씨에 대해서만 폭언과 욕설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보이지 않는다. 공연성이나 전파가능성이 없어 형사상 모욕이나 명예훼손의 죄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이 성립하는 데는 지장이 되지 않는다”며 “이를 종합해 보면 A 씨에게 2014년경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욕설 등의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는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명희 고문의 폭언 행위와 A 씨가 얻은 돌발성 난청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폭력적인 근무환경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돌발성 난청은 원인을 명확히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극심한 스트레스가 촉발 요인으로 작용해 발병하거나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을 당한 피해자의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는 24시간 교대근무로 인한 야간근무와 1주 평균 50~70시간의 노동시간으로 인해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당초 근로복지공단은 이명희 고문의 과실 비율이 100%라고 보고 이 고문이 산재 보험금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고문의 과실 비율을 80%만 인정했다. A 씨가 2015년 진단 받은 당뇨병이 돌발성 난청 발병 및 확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 고문이 근로복지공단에 약 3280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이 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해 2023년 7월 화해권고결정을 받았다. 다만 이번 소송 판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이 고문이 A 씨에) 손해배상을 했다 하더라도 이를 법원에서는 구상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위자료 명목으로 본 것 같다. (이 고문의) 책임비율을 정하는 데 있어서 (이 고문과 A 씨의) 손해배상소송 결과를 참고만 한 정도인 듯하다”라고 내다봤다.
이 고문이 항소하면서 불과(?) 3000만 원을 둘러싼 소송은 2심으로 향하게 됐다. 이민호 변호사는 “2심에서는 (고용주가) 고의 과실이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또 고의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정된 금액이 과다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며 “1심은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만 2심은 1심만큼 오래 걸리지 않는다. 또 최근 민사소송법이 개정돼서 항소인이 40일(연장 시 7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항소가 각하된다. 항소심을 빨리 진행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개인적인 사안이라 회사 법무실에서도 관여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고문 측 변호사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다른 관계자는 “산재 보험료를 지급했으니 돌려달라는 것이다. 손해배상 규모의 싸움”이라며 “(이 전 이사장 관련 형사 재판 피해자들의) 산재 혹은 구상금 청구 여부는 파악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한편 지난 9월 이명희 고문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70만 1001주를 처분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300억 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고문의 한진칼 지분율은 2023년 초 3.73%에서 현재 2.68%로 하락했다. 덩달아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분쟁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 회장은 과거 ‘3자 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조 회장 측과 조 회장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 KDB산업은행 등의 한진칼 지분율을 합치면 33% 수준이다. 아직은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변수가 적지 않다. 조 회장 우호지분으로 분류됐었던 팬오션은 지난 12월 호반호텔앤리조트에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호반건설 측은 한진칼 지분 17.5%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됐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무산되면 한진칼 지분 10.58%를 보유한 산업은행이 지분 매각에 나설 수도 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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