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보다 상황 더 안 좋아…결국 정부 주도 대규모 자금 투입 가능성 제기
2024년 2월까지 부동산 PF 차입금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한다.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및 등급전망 하향도 잇따르고 있다. 금융권의 채권회수가 쇄도할 수 있다. 돈을 제때 못 갚으면 워크아웃이나 파산을 신청해야 한다. 부실이 잇따라 터지면 관련 PF와 연결된 건설사뿐 아니라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제공한 금융회사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관건은 부동산 PF 사태가 금융시스템을 거쳐 실물경제의 위기로 번지는 경로를 정부가 어떻게 차단할지다.
부동산 PF 부실은 시행사나 건설사들이 땅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서 초래된다. 개발을 해서 땅값을 갚아야 하는데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공사 자체가 어렵게 된다. 빈 땅에서는 돈이 나오지 않는다. 보증을 선 건설사들이 대신 땅값을 갚아야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애초 땅값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이 부실을 감당해야 한다.
2011년 부동산 PF 부실로 촉발된 저축은행 사태 해결을 위해 예금보험공사는 27조 원 넘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중 절반도 안 되는 13조 원을 회수하는 데에 그쳤다. 지금은 그때보다 부실 규모도 크고 금융시장을 둘러싼 여건도 좋지 않다. 특히 2024년 상반기 자금시장은 부동산 PF 외에도 여러 악재들이 겹쳐 있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 기업들이 저금리로 현금을 비축하기 위해 발행한 회사채 만기가 대거 도래한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만기도래물량은 81조 2309억 원으로 2023년보다 16%나 많다. 역대 최대다. 2021년 초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주가연계증권(ELS)의 수조 원대 손실도 변수다. ELS는 채권 이자를 기초로 옵션에 투자하는 구조다. 채권을 발행한 회사 입장에서는 ELS 원리금 상환이 원활해야 현금 상환이 아닌 차환발행으로 자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줄이면 ELS의 대규모 손실은 채권 발행사의 자금난이다.
금융권에서 주요한 자금공급원은 연기금, 보험, 증권 등 금융기관들이다. 이들은 2023년 말 해외부동산펀드의 대규모 손실을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 2024년에는 더욱 보수적인 자금운용을 할 가능성이 크다. 세수 부족으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보내는 지방교부금이 급감했다. 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이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사실상 보증하는 이들 채권이 자금을 흡수해 가면 일반 기업들이 돈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부동산 PF의 자금난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후 정부의 대책은 사태 확산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태영건설 주요 사업장 구조조정과 협력업체 지원 등이다. 반면 시장의 관심은 제2의 태영건설이 나올 가능성에 쏠리고 있다. 중소형 건설사 가운데 PF 부실 부담이 큰 곳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2023년 내내 부실 부동산 PF 사업장은 ‘정리’보다 만기연장 등으로 연명한 곳이 더 많았다. 대출액과 연체액이 함께 늘었고, 경매나 공매를 통한 부실 정리 실적은 미미했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태영건설 외 부동산 PF들이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르면 2024년 1월 중 ‘건설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건설투자 수요를 자극해 부동산 PF의 사업성을 높이려는 접근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계부채가 이미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수준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소득이 늘지 않으면 돈을 더 빌리기 어려워졌다. 사실상 대출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 제도까지 도입된다. 국민들에게 집 살 돈이 없다는 뜻이다. 공급을 받아낼 정도로 부동산 수요가 충분히 살아나지 않으면 아무리 건설투자를 자극해도 PF가 사업성을 갖추기는 어렵다.
결국 이번에도 2011년과 마찬가지로 정부 주도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가 조성한 자금을 투입해 부실한 부동산 PF 사업장을 매입하고 경매나 공매 등으로 되팔아 자금을 회수하는 접근이다. 이때 부동산 PF와 연결된 건설사나 금융회사도 부실을 반영한 가격으로 매각해 먼저 상당한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 부실한 부동산 PF라도 일단 값이 낮아지면 사업성이 개선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현재 정부도 비슷한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부실한 사업장을 사들일 재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시장 불안을 불식시킬 정도의 규모를 갖춘 대책이 언제 나올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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