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B-올림픽-WBC 평정하고 MLB로…다저스서 오타니와 한솥밥
구단은 계약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MLB닷컴 등 미국 언론은 "야마모토는 다저스와 3억 2500만 달러(약 4215억 원)에 사인했다. 계약금 5000만 달러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전했다. 이전까지 MLB 투수 역대 최고액 계약은 2019년 12월 게릿 콜이 뉴욕 양키스와 사인한 9년 3억 2400만 달러였다. 아직 MLB에서 공 한 개도 던지지 않은 야마모토가 양키스 에이스 콜을 뛰어 넘는 투수 최고액 계약을 성사시켰다.
#야마모토가 누구길래
야마모토는 명실상부한 일본 프로야구(NPB) 최고 투수다. 시속 160㎞를 넘나드는 강속구, 정교한 제구력, 다양한 투구 레퍼토리를 모두 갖춰 '완전체 투수'로 통한다. 고교 1학년까지 내야수로 뛰다 2학년 때 뒤늦게 투수로 전향했는데, 그해 여름 규슈 지역대회 결승전에서 노히트노런을 해내며 단숨에 특급 유망주로 떠올랐다. 대부분의 강속구 투수들과 달리 키(178㎝)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투수로 전향하자마자 시속 150㎞를 훌쩍 넘기는 폭발적인 구위를 자랑해 더 화제가 됐다. 다만 2016년 열린 NPB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4라운드까지 밀린 끝에 오릭스 버팔로스의 지명을 받았다. 투수 치고 작은 키가 역시 걸림돌이었고, 왜소한 체격(체중 80㎏)으로 인한 부상 우려가 늘 따라다닌 탓이다. 심지어 모교인 미야코노조고가 여름 전국대회(고시엔) 진출에 실패하면서 스카우트들에게 기량을 보여줄 기회도 충분히 얻지 못했다. 미야코노조고 출신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은 것은 1994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한 후쿠모리 가즈오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었다.
야마모토는 프로 입단 첫해인 2017시즌을 2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첫 8경기에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점 0.27을 기록하자 곧바로 1군의 부름을 받았다. 8월 20일 지바롯데 마린스전에서 1군 데뷔전(5이닝 6탈삼진 1실점)을 치렀고, 31일 다시 지바롯데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잘 던져 데뷔 첫 승리를 신고했다. 야마모토는 두 번째 시즌인 2018년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다시 6경기 평균자책점 0.38으로 '무력 시위'를 하면서 개막 한 달 만에 1군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1군에선 불펜 셋업맨으로 활약하면서 퍼시픽리그 10대 선수 최초로 15경기 연속 홀드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또 54경기에서 4승 2패 26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해 NPB 최초로 10대 선수가 구원 포인트 30개(홀드 26개+세이브 4개)를 기록하는 역사를 남겼다. 다나카 가즈키(라쿠텐 골든이글스)에 밀려 신인왕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대투수'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야마모토는 2019년 본격적으로 1군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꿰찼다. 팀 전력이 최악이던 시절이라 8승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양대 리그에서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1.95)을 기록하면서 첫 개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시즌이 끝난 뒤엔 2019 프리미어12 대표팀에 대체 선수로 발탁돼 일본 야구대표팀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특히 한국과의 결승전 8회 마운드에 올라 한국 대표팀 중심 타선인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김재환(두산 베어스)을 공 8개로 돌려세우는 위력을 뽐냈다. 야마모토의 이름이 한국 야구팬에게 각인된 계기였다. 당시 야마모토에게 3구 삼진을 당한 이정후는 "공이 정말 좋았다. 또래 투수들 중 가장 좋은 공을 던지는 것 같다"며 "다음 국제대회에서는 꼭 설욕하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2021년부터 NPB 평정
야마모토는 2020년 처음으로 오릭스의 개막전 선발을 맡으면서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그해 성적은 8승 4패, 평균자책점 2.20. 시즌 막바지 부상이 잦아 126이닝만 소화했는데도 삼진 149개를 잡아 탈삼진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평균자책점도 센가 고다이(뉴욕 메츠)에 이어 2위였다. 연봉은 6000만 엔에서 1억 5000만 엔으로 뛰어 팀 내 투수 중 최고액을 받게 됐다. 오릭스에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선수가 5년 만에 연봉 1억 엔을 돌파한 건 1997년의 스즈키 이치로 이후 야마모토가 처음이었다.
완벽하게 프로 적응을 마친 야마모토는 이듬해 본격적으로 NPB를 평정해 나갔다. 2021년 26경기에서 193⅔이닝을 던지면서 18승 5패, 탈삼진 206개, 평균자책점 1.39, 이닝당 출루 허용(WHIP) 0.85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완봉 타이틀을 석권하면서 NPB 역대 8번째 투수 5관왕에 올랐다. 첫 포스트시즌 등판이던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서는 9이닝 동안 공 128개를 던지면서 10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는 투혼을 보여 오릭스 팬들의 기립박수도 받았다. 그의 연봉은 그해 말 3억 7000만엔으로 두 배 넘게 치솟았다.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고졸 선수가 데뷔 6년 만에 연봉 3억 엔을 돌파한 사례였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와무라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했고,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야마모토는 그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도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해 금메달을 이끌었다. 다만 프리미어12 이후 다시 만난 한국 간판타자 이정후에게는 예선 맞대결에서 2루타 포함 2안타를 맞았다. 이정후가 2년 만의 설욕에 성공한 셈이다. 이정후는 "야마모토는 좋은 투수고, 좋은 투수와 상대한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라면서도 "전력분석에서 좋은 자료를 많이 줬고, 나도 나름대로 전략을 잘 짜고 들어가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뿌듯해했다.
야마모토는 멈추지 않았다. 2022년과 2023년에도 투수 5관왕에 올라 범접할 수 없는 역사를 써내려갔다. 2022년엔 26경기 193이닝 15승 5패, 평균자책점 1.21, 탈삼진 205개, WHIP 0.93의 성적을 남겨 2년 연속 만장일치로 사와무라상을 받고 다시 리그 MVP에 올랐다. 2023년 3월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합류해 일본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2023년엔 23경기에서 164이닝을 소화하면서 16승 6패, 평균자책점 1.21, 탈삼진 169개, WHIP 0.88의 기록을 작성했다. 특히 평균자책점 1.21은 규정이닝을 채운 21세기 NPB 투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사와무라상과 리그 MVP 모두 또 다시 야마모토의 차지였다. 특히 사와무라상 3연패는 1958년 가네다 마사이치 이후 NPB 역대 두 번째이자 65년 만의 대기록이었고, 퍼시픽리그 MVP 3연패도 야마다 히사시(1976~1978)와 스즈키 이치로(1994~1996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위업이었다. 또 한 투수가 3년 연속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타이틀을 모두 석권한 것은 야마모토가 역대 최초였다. 심지어 그는 2022년과 2023년 모두 노히트노런을 한 차례씩 달성해 양대 리그 도입 82년 만에 최초로 2년 연속 노히터 기록을 세운 투수가 됐다.
#오타니만큼 뜨거웠던 영입전
그런 야마모토가 2023시즌 이후 MLB 진출을 선언하자 빅리그 구단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7월 8일 세이부 라이온스전에 보스턴 레드삭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 8개 구단 스카우트가 찾아 야마모토의 투구를 지켜봤다. 그는 그날 9이닝 13탈삼진 1실점 완투승으로 자신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8월 23일 세이부전에는 다시 다저스, 보스턴,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등 10개 구단의 스카우트가 야마모토를 보러 찾아왔다. 야마모토는 이 경기에서도 7이닝 5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그가 NPB 역대 100호 노히트노런을 작성한 9월 2일 닛폰햄 파이터스전은 브라이언 캐시먼 양키스 단장이 직접 관중석에서 지켜봐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야마모토가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에 나오자 빅리그 구단들의 경쟁은 더 뜨거워졌다.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로 꼽힌 '슈퍼 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계약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야마모토의 포스팅 협상도 지연됐지만, 오타니가 다저스로 행선지를 정한 뒤에는 영입 경쟁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양키스는 LA와 뉴욕에서 두 차례 야마모토를 만나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전했다. 에런 분 감독이 직접 야마모토에게 등번호 18번이 박힌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선물했고, '고질라'라는 애칭으로 유명했던 양키스의 일본인 레전드 마쓰이 히데키가 영상 메시지로 입단을 권유했다. 메츠는 '억만장자'로 유명한 구단주 스티브 코헨과 데이비드 스턴스 야구 부문 사장이 아예 일본을 직접 방문해 야마모토의 가족까지 만났다. 또 야마모토가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는 코헨 구단주의 자택으로 직접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스턴스 사장은 "모든 팀이 관심을 갖고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구단주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저스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야구선수들의 우상인 오타니가 먼저 다저스와 계약한 점을 활용해 그가 야마모토와의 면담에 동석하도록 했다. 오타니 역시 "우승을 위해 야마모토가 꼭 필요하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다저스의 또 다른 슈퍼스타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과 포수 윌 스미스도 동석해 야마모토의 환심을 사는 데 힘을 보탰다. 내로라하는 빅마켓 구단들의 애정 공세에 행복한 고민을 하던 야마모토는 결국 새 소속팀으로 역대 MLB 투수 계약 최고액을 안긴 다저스를 선택했다. 이와 함께 2014년 다나카가 양키스와 7년간 계약하며 받은 1억 5500만 달러를 넘어 MLB 역대 포스팅 최고액을 두 배 이상 경신했다. 다저스는 포스팅시스템 규정에 따라 야마모토의 원 소속구단 오릭스 버펄로스에 총 5062만 5000달러의 이적료를 지급해야 한다. 앞서 오타니가 계약한 10년 총액 7억 달러를 포함하면, 다저스는 올겨울 두 일본인 슈퍼스타를 잡기 위해 총 10억 7562만 5000달러(약 1조 3935억 원)을 투자한 셈이다.
#야마모토는 지급 유예 없다
야마모토보다 먼저 다저스와 계약한 오타니는 계약 총액 7억 달러 중 97%에 해당하는 6억 8000만 달러를 계약기간 이후 10년간 나눠 받는 파격적인 '지급 유예'에 합의했다. 오타니 자신이 "내가 지금 당장 돈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구단이 (우승에 필요한 선수들을 더 영입할 수 있도록) 재정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먼저 제안한 조항이다. 오직 '월드시리즈 우승'이 목표인 오타니의 열정과 너무 큰 돈을 한꺼번에 지출하게 생긴 다저스의 이해득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 덕에 다저스는 향후 10년간 오타니에게 MLB 선수 최저 연봉 수준인 연봉 200만 달러씩만 지급하면 된다. 야마모토를 향한 다저스의 '역대급' 물량공세는 오타니의 유례없는 '묘안' 덕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야마모토는 계약 조건에 지급 유예 조항을 포함하지 않고 연평균 2708만 달러를 그대로 수령하기로 했다. 또 계약 6년 뒤인 2029년과 8년 뒤인 2031년에 두 차례 옵트아웃(구단과 선수 합의로 잔여계약 파기) 조항도 포함했다. 야마모토에게는 여러모로 최상의 계약이다.
그는 "역사적인 구단의 일원이 돼 무척 기분 좋다. LA를 새로운 홈타운으로 부를 수 있게 된 건 내게 정말 큰 의미가 있다"며 "다저스타디움의 만원 관중 앞에서 던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단 소감을 밝혔다. 또 '오타니가 계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오타니의 존재가 다저스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승리를 원하는 다저스의 의지에 감동받았다"면서도 "오타니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 최고 야구선수다. 그와 함께 뛰는 건 내게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야마모토는 내년 시즌 다저스의 1선발로 활약하게 된다. 오타니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팔꿈치 수술을 받아 내년엔 투수를 포기하고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오타니가 투타 겸업을 재개하게 되는 2025년부터 오타니-야마모토 원투펀치를 가동할 수 있다. 따라서 야마모토의 빅리그 데뷔전은 내년 3월 20일과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정규시즌 개막 2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기는 오타니가 다저스 소속으로 치르는 첫 경기이기도 하다. MLB 사무국이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기획한 'MLB 월드투어'가 '서울 시리즈'에서 뜻밖의 흥행 대박을 예고한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샌디에이고에는 또 다른 일본인 슈퍼스타 다르빗슈가 몸담고 있다. 다르빗슈도 개막 2연전 등판이 유력해 오타니와 투타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NPB 최연소 200세이브를 달성한 투수 마쓰이 유키도 최근 샌디에이고에 입단해 서울 경기에 동행할 수 있다. 최근 트레이드설에 휩싸인 한국인 내야수 김하성이 이적하지 않고 샌디에이고에 남는다면, 야마모토와의 한일 투타 맞대결도 성사될 수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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