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7.6, 흔들림 정도는 동일본대지진에 필적…“TV도 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아나운서 절규는 ‘새 매뉴얼’
#“지금 당장 도망쳐라” 절박한 호소
이날 새해맞이 프로그램을 방영하던 NHK는 즉각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특별보도체제로 전환했다. 화면 상단에 ‘긴급 지진 속보’ ‘쓰나미 경보 발령’이 뜨자, 그때까지 침착하게 특보를 전하던 야마우치 이즈미 아나운서는 강한 어조로 피난을 호소했다.
“한시라도 빨리 높은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즉시 대피하십시오. 지금 당장 대피! 쓰나미는 반복적으로 밀려옵니다. 절대 멈춰 서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말 것. 여러분의 생명을 지킬 것. TV도 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동일본대지진을 기억하세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기 때문에 야마우치 아나운서의 멘트는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아나운서답지 않아 듣기 불편했다”라는 의견도 일부 보였지만, “피난을 강력하게 호소한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위기감을 전달하는 방식이 훌륭했다”라며 극찬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그 절박한 호소는 동일본대지진에서 얻은 교훈이었을 것”이라며 “쓰나미로 잃어버린 수많은 생명을 기억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13년 전 동일본대지진 당시 각 사의 방송국 아나운서들은 뉴스를 중계하듯 차분하게 대피를 당부했다. 그 결과,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고 피난하지 않은 주민도 많아 1만 명 이상이 쓰나미로 숨졌다. 일본 매체 ‘포스트세븐’에 의하면 “NHK 아나운서실은 그때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대규모 재해 보도’를 검증하고 개선해왔다”고 한다.
먼저 ‘피해 상황을 전달한다’는 기존 방침에서 ‘생명을 우선한다’는 것으로 보도 방침을 바꿨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40개 이상 지역 방송국이 참가해 600페이지에 걸친 보도 매뉴얼이 완성됐다. 이른바 ‘생명을 지키는 호소’다. 이번처럼 평소 차분한 아나운서가 강하게 호소하는 방법도 개선된 방침 중 하나다. 이상 사태를 알리고 시청자들에게 긴박감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전해진다.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 전조일까
노토반도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64명, 부상자는 370명으로 집계됐다. 곳곳에 산사태와 도로 함몰 사고가 이어지면서 인명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진으로 추정되는 지진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기상청에 의하면, 3일 오전 8시까지 노토반도 인근에서 ‘진도 1’ 이상의 지진이 479회나 발생했다. ‘진도 5’ 이상의 지진은 11회였다. 설상가상 피해지역에 비까지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지진 진동으로 지반이 연약해져 적은 비에도 산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토사 재해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지진을 두고 “서일본 지역이 ‘지진 활동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토대의 우메다 야스히로 명예 교수(지진학)는 2023년 5월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6.5 지진을 언급하면서 “일련의 활동 속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난카이 트로프 거대 지진이 가까워지면 내륙부에서 단층의 뒤틀림이 축적돼 지반이 약한 지역의 지진 활동이 활발해진다”면서 “이번 지진도 그 일환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난카이 트로프(南海 trough)’란 시즈오카현 스루가만에서 규슈 동쪽 태평양 연안 사이 깊이 4000m 해저 봉우리와 협곡지대를 지칭한다. 태평양 쪽의 필리핀해 플레이트(판)와 대륙 플레이트의 경계선상에 있어 지진 발생 위험이 매우 큰 지역이다. 일본에서는 100~150년 주기로 규모 8 이상의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 꾸준히 일어났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발생한 것은 1946년(규모 8.0)이었다.
지진고고학자 산가와 아키라 교수는 “역사적으로 보면 난카이 트로프의 거대 지진이 발생하기 수십 년 전부터 노토반도를 포함해 규슈에 걸친 서일본 지역에서 지진 활동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내륙 직하형 지진으로 규모 자체는 난카이 트로프 지진보다 작지만, 진원지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심과 가깝기 때문에 상당히 큰 피해가 난다.
마지막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 1946년에 있었고, 이후 서일본 내륙에서는 강진이 거의 50년 정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20년 사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지진 활동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가와 교수는 2000년 발생한 돗토리현 서부지진(규모 7.3)과 2016년 구마모토 지진(규모 7.3)을 그 예로 들었다.
일본 정부 지진조사위원회는 ‘난카이 트로프에서 향후 40년 안에 규모 8~9급인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80~90%로 예측해왔다. 그러나 2022년에는 90% 수준으로 예상 확률을 더 높였다.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도쿄대학 지진연구소 히라타 나오시 교수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며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의 피해를 막기 위한 각종 준비 태세를 곧장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겨울철 지진이 두려운 이유
난카이 트로프를 둘러싼 바다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지진과 쓰나미 징후를 감지하기 위해 관측망이 설치돼 있다. 가령 지진계와 쓰나미 감지 장비가 30∼60km 간격으로 장착돼 해저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일본 방재과학기술연구소는 “기존보다 최대 20분 빨리 쓰나미를 포착할 수 있고, 지진에 의한 흔들림을 최대 30초 더 빨리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바다의 변화도 관건이다. 도쿄대의 쓰지 다케시 교수는 계절별 해수면 높이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해수면이 높고 겨울에는 낮아진다. 쓰지 교수는 “역사를 돌이켜보면 해구형 거대지진은 겨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진이 일어나기 쉬운 플레이트 경계를 누르는 해수면의 힘이 겨울에 약해지는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진의 피해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는 계절도 겨울이다.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 쓰나미를 피한다 해도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사람이 늘어난다. 또한, 난방기구 사용의 증가로 인해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데, 전형적인 ‘서고동저’ 겨울철 기압배치로 강한 바람이 불고 공기도 건조해 연소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이번 노토지진에서도 강진 직후 일어난 화재로 와지마시에서는 건물 약 200채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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