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여운국 ‘후임 인선 논의’ 대면조사 시도…공수처 반발 속 일각 ‘정치적 의도’ 의구심
#'묵과할 수 없는 제보'의 기억
권익위는 불과 약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정부의 눈엣가시였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이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사퇴 압박에도 기어이 버텨낸 영향이 컸다. 윤 대통령이 전 전 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배제하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섰지만 전 전 위원장은 결국 임기를 다 채우고 2023년 7월 물러났다.
정부 입장에선 권익위를 향한 칼날이 유독 잘 들지를 않았다. 전임 정부 인사로 함께 남은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그나마 TV조선 재승인 점수조작 의혹으로 면직 처분해 힘을 뺐지만, 권익위는 전 전 위원장이 한마디를 지지 않으며 되레 존재감을 키웠다. 권익위 일부에서 "낯선 관심에 부담스럽다"는 농담도 따랐을 정도다.
감사원까지 나서 전 전 위원장과 권익위를 먼지 털 듯 했어도 소용없었다. 2022년 8월 '묵과할 수 없는 제보를 받았다'며 1년여 진행한 대대적인 감사의 결과는 사실상 빈손이었다. '고충민원 부적절한 처리' 등으로 기관주의 조치가 전부였다. 수사의뢰 등까지 이어진 혐의는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원이 '되치기'를 당했다. 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감사위원 패싱' 등 절차적 하자가 발견됐고, '표적감사' 의혹까지 번지며 유병호 사무총장 등 감사원 관계자들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공수처 수사를 받게 됐다. 유 총장은 5차례 공수처의 소환 요구를 거부하다 2023년 12월 9일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공수처 수사 결과 감사원의 표적감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부 차원에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맹탕 감사'였다는 비판이 거셌는데, 전임 정부 인사를 내쫓으려 사정기관까지 동원했다는 비판도 더해질 수 있어서다. 게다가 공수처는 그동안 기소한 3건 가운데 2건이 1심에서 무죄가 나와 성과가 절실한 상황이다.
#'묵과할 수 없는 신고(?)'에 공수처 조사
그러다 2023년 12월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현장에서 일이 터졌다. 이날 공수처의 김진욱 공수처장과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나눈 후임 공수처장 관련 문자가 카메라에 잡혔다. 두 사람은 "친한데 수락 가능성 제로" "수락 가능성으로 추천할 수도 없고" 등의 메시지를 나눴다.
이에 권익위가 나섰다. 권익위에 따르면 그 직후 두 사람의 대화가 부패행위에 해당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고 한다. 기관의 책임자들이 민감한 인사 문제를 논의한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김 처장과 여 차장 모두 후임 처장 인사에 개입할 권한도 없다.
권익위가 모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사이 진용이 대폭 바뀐 덕분이다. 전 전 위원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나며 현 정부가 임명한 김태규 부위원장과 정승윤 부위원장 등이 자리를 채운 상태다. 김홍일 위원장은 2023년 7월 취임했으나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지금은 정 부위원장 직무대리 체제다.
이에 일각에선 이번 권익위 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반영됐다는 의심도 드러낸다. 권익위가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공수처를 압박한다는 시각이다. 감사원 표적감사 의혹 수사의 힘을 빼려고 공수처 수뇌부를 직접 압박하는 게 아니겠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상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조사에 착수한 점도 여기에 힘을 싣는다.
권익위 김태규 부위원장의 경우 임명 당시부터 전 전 위원장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시선이 자주 따라다녔다. 그는 판사 출신으로 전 전 위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지만, 2023년 초반까지도 "현 정부 정무직이 전 정부 철학을 추구하면 국민적 배신"이라는 등 곁에 있는 전 전 위원장에 직접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 와중에 김 부위원장이 유력한 차기 공수처장 후보로 떠올랐다. 그가 공수처장으로 가게 되면 감사원 표적감사 의혹 수사의 향방도 알기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잇따랐다. 다만 차기 공수처장 인선이 현재 차질을 빚는 상황인데, 공교롭게도 권익위가 공수처 현 수뇌부를 직접 조사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권익위가 월권' vs '공수처가 불성실'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권익위는 2023년 12월 28일 공수처에 직접 찾아가 조사를 벌이려 했으나 그냥 돌아왔다. 공수처가 '대면조사'를 거절한 탓이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권익위는 신고를 접수한 뒤 유선 등을 통해 공수처에 여러 차례 대면조사를 요청했지만 계속 거부당해왔다.
이에 공수처는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지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권익위가 일방적으로 직원들을 보내 처장과 차장의 면담을 시도했다"며 "그동안의 협의 과정 및 국가 기관 간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부적절함은 물론 권한을 넘어선 행보"라고 주장했다. 즉 권익위가 '월권'을 범했다는 의미다.
권익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있다. 같은 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인사 관련 부정청탁은 청탁금지법 등의 위반뿐 아니라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에도 해당한다"면서 "이를 요구받은 공공기관 또는 공직자는 성실히 응하고 협조해야 하며, 이에 불응하는 경우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이에 따르면, 공수처는 '애초 권익위가 서면과 대면 가운데 하나의 조사 방식을 제시했으나 갑자기 대면을 고집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반면 권익위는 '서면은 여러 조사 방법 가운데 한 가지로 규정상 소개만 했을 뿐, 이번 사안은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고 맞서는 분위기다.
공수처는 김 처장과 여 차장의 '사담'만으로 조사를 받는 자체가 과하다는 인상을 못 지운다. 반면 권익위는 '서면은 질의 내용을 조사대상자끼리 공유할 수 있다' '피의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조사할 수만은 없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운다고 파악됐다. 권익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대면 조사를 계속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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