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DNA 증폭 감식기술 발전과 경찰의 발품 수사가 이뤄낸 성과…성관계 거부해서 범행 진술
2012년 1월 10일 오후 11시 26분 무렵 울산 남구의 한 다방에서 업주 김 아무개 씨(여·55)가 숨져 있는 것을 사위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피해자 김 씨는 다방 계산대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김 씨 목에서 졸린 흔적을 발견했다.
이날 김 씨는 다방 영업을 끝낸 뒤 딸의 집에 들르기로 약속했는데 밤이 늦도록 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사위가 장모가 운영하는 다방을 찾았는데 문이 잠겨 있는 상태였다. 열쇠공을 불러 다방 문을 개방하고 들어갔는데 장모 김 씨가 계산대 앞에 쓰러져 숨져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인을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한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보고 바로 수사에 돌입했다. 현장에서 특별히 없어진 물건은 없었고 현장에 있던 술잔이나 찻잔 등에서 별다른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다방 문은 잠겨 있었다. 경찰은 장갑을 낀 범인이 다방에 들어와 여주인을 살해한 뒤 밖에서 문을 잠근 뒤 달아난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에 돌입했다.
당시 경찰 수사는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우선 사망 추정 당일 다방을 출입한 것으로 확인된 손님들을 조사했지만 모두 알리바이가 있었다. 인력사무소, 다방 주변 가게 등을 탐문해 500여 명을 조사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이 사체 검안을 통해 추정된 사망시각이 1월 9일 밤 시간대인 것을 감안해 1월 9일 저녁 9시 30분부터 10일 오전 6시 30분 사이에 찍힌 인근 CCTV 화면을 모두 분석했다. 다만 다방 내부에는 CCTV가 없었으며 인근에서 다방을 직접 비추는 CCTV도 없었다.
유일한 단서는 사망한 김 씨 손톱 밑에서 채취한 DNA 시료였다. 경찰은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지만 ‘남녀 DNA가 섞여 있어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과만 나왔다.
2012년 3월 잠시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듯 보이기도 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다방 건물 앞 CCTV에 찍힌 4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찾는 전단지 5000여 장을 만들어 배포했다. 다방 간판 불이 꺼지기 5분 전 그 건물에서 나온 남성으로 경찰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렇지만 수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2012년 울산에선 유난히 강력 사건이 많았다. 앞서 언급한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을 비롯해 울산 중구 성남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한 ‘자매 살인사건’, 울주군 온양읍에서 발생한 ‘70대 노인 살인사건’ 등이다. ‘울산 자매 살인사건’의 범인 김홍일은 사건 발생 56일 만에 검거됐고, ‘울산 70대 노인 살인사건’의 범인도 2016년에 검거됐다. 그렇지만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은 장기미제 사건이 되고 말았다.
12년여의 시간이 흘러 비로소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검거됐다. 1월 4일 울산경찰청은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의 피의자 A 씨(55)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실마리를 풀어 준 것은 국과수였다. 유일한 증거인 사망한 김 씨 손톱 밑에서 채취한 DNA 시료에 대한 재의뢰를 받은 국과수는 2019년 10월 특정 DNA를 확인했다. 7년 사이 국과수의 DNA 증폭 감식기술이 더 발전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그리고 바로 DNA가 누구 것인지도 특정됐다. A 씨는 2013년 1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의 한 다방에서 찻값 문제로 여주인과 다투다 재떨이 등으로 심하게 폭행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렇게 A 씨의 DNA가 전과자 DNA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어 바로 특정이 가능했다.
한편 ‘울산 신정동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 발생 1년여 만에 벌어진 ‘언양읍 다방 폭행 사건’도 다방에 여주인만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다행히 우연히 다른 손님들이 다방에 들어오면서 A 씨의 폭행 현장을 목격하고 신고해 경찰에 바로 체포됐다.
DNA가 특정됐다고 바로 체포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부터 경찰의 발로 뛰는 수사가 필요하다. 경찰은 탐문수사 등을 통해 2012년 1월 즈음 A 씨가 사건이 발생한 신정동 다방 인근 여관 등을 전전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주변인 진술 확보를 위해 울산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 소속 경찰들은 울산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 등을 돌아다녔다. 사건 관계인 300여 명을 만나고 A 씨가 다녀간 것으로 추정되는 행선지 500여 곳을 직접 방문하는 등 근성 어린 수사를 이어간 결과다.
경찰은 12월 27일 양산의 한 여관에서 A 씨를 검거했다. 범행 12년 만에 검거된 A 씨는 강하게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은 프로파일러 등을 투입해 심리적인 압박과 회유에 들어가 결국 범행 전모에 대한 자백을 확보하게 된다.
A 씨는 2012년 1월 9일 처음으로 사건이 벌어진 다방을 찾았다. 그리고 이날 밤 9시 27분 즈음 술을 마신 상태에서 다른 손님들이 모두 귀가한 것을 확인한 뒤 다방에 다시 찾았다. 그리고 다방 여주인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술김에 범행을 저질렀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다방 여주인에게 성관계를 거부당하자 자신을 경멸하는 것 같다는 모욕감에 화가 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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