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LG 다년 계약 제안 정중히 고사…포스팅 마감 하루 앞두고 샌디에이고와 극적 계약
고우석은 이로써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리그 무대를 밟는 역대 여섯 번째 KBO리그 출신 선수로 기록됐다. 투수로는 류현진과 김광현(SSG 랜더스)에 이어 세 번째인데, 선발이 아닌 불펜 투수는 고우석이 처음이다.
#3년 뛰면 최대 940만 달러까지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고우석의 계약 세부 내용을 가장 먼저 공개했다. 이 매체는 "고우석은 올해 연봉 175만 달러, 내년 225만 달러를 각각 받는다"며 "2년 뒤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전별금 성격의 바이아웃 50만 달러를 수령한다. 옵션을 실행하면 2026년 연봉은 300만 달러가 된다"고 밝혔다. 지난 시즌 MLB 불펜 투수 평균 연봉은 231만 8772만 달러였다. 고우석은 일단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대우를 받고 빅리그에 첫발을 내딛는 셈이다. AP통신은 "고우석은 출전 경기 수와 성적에 따라 3년 기준 총 24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한 빅리그 로스터에 머물 수 있는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포함했다"고 덧붙였다. 고우석이 샌디에이고에서 옵션을 모두 채우면서 3년을 뛸 경우 총액이 940만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LG는 한미 선수 계약 협정에 따라 고우석의 포스팅 이적료로 기본 87만 5000달러(약 11억 5000만 원)를 지급 받는다. 향후 고우석이 옵션을 충족해 2026년까지 샌디에이고에서 뛰게 되면, 이적료 73만 5000달러(약 9억 6000만 원)를 추가로 보상받을 수 있다.
시속 150㎞ 중후반대 강속구를 던지는 고우석은 2017년 LG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7시즌 통산 139세이브(평균자책점 3.18)를 올린 전문 마무리 투수다. 2022년에는 42세이브를 수확해 역대 최연소 단일시즌 40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2019 프리미어12,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에서 국가대표 소방수로도 활약했다. 지난 시즌엔 부상 여파로 15세이브(평균자책점 3.68)를 올리며 주춤했지만,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보상 포인트(현역 등록일수)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덕에 해외 진출이 가능한 7시즌 요건을 채웠다.
고우석은 계약 후 "큰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LG 트윈스 구단과 새로운 도전 기회를 준 샌디에이고 구단에 감사하다"며 "새로운 곳에서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됐다. 좋은 모습으로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차명석 LG 단장은 "고우석은 MLB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투수다.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성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빅리거로 활약하길 기대한다. 샌디에이고 입단을 축하하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1년 앞당긴 빅리그 진출 계획
극적인 계약이었다. 1~2개월 전까지만 해도 고우석이 올해 빅리그에서 뛰게 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11월 14일 MLB 사무국이 KBO에 고우석의 신분조회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LG 구단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다.
물론 고우석은 이전부터 MLB 진출을 향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2022년 말 LG가 "역대 최장 기간·최고 금액 계약을 보장하겠다"며 비 자유계약선수(FA) 다년 계약을 제안하자 "FA 자격을 얻으면 MLB에 도전할 생각"이라며 정중히 고사했다. 고우석은 당시 "어차피 빅리그 진출을 노릴 생각이어서 구체적인 계약 기간과 액수는 듣지 않은 채 거절했다"고 했는데, 그 후 LG가 준비한 조건이 8년 총액 200억 원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도 고우석의 신분 조회 소식이 놀라움을 안긴 건, 해외 진출 시점이 예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야구계는 고우석이 FA 자격을 얻는 2024년 말에 '자유의 몸'으로 해외 진출을 꾀할 거라 예상해왔다. 지난 시즌 성적이 예년보다 좋지 않았기에 적절한 시기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고우석의 빅리그행 의지는 점점 더 크고 단단해졌다. 절친한 친구이자 처남인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본격적으로 MLB 포스팅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 불씨는 더 크게 타올랐다. 지난 시즌 LG가 29년 만에 통합 우승의 숙원을 푼 것도 마무리 투수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고우석은 결국 신분조회 요청 사흘 뒤인 11월 17일 구단 사무실을 방문해 "MLB에 도전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LG는 닷새간 고심한 끝에 "포스팅을 허용하되, 이적료 규모를 보고 MLB 진출 허용 여부를 최종 판단하겠다"며 조건부 승낙했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포스팅이 정식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고우석에게 관심이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세인트루이스는 한국인 투수 김광현과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 거쳐간 팀이라 한국 야구팬에게 익숙하다. 지역지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는 "세인트루이스 구단이 불펜을 보강하기 위해 에이전트들을 만났다"며 "한국의 고우석과 일본의 마쓰이 유키 영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미국 일리노이주와 미주리주를 기반으로 한 일간지 벨레빌 뉴스 데머크랏도 "세인트루이스가 고우석과 마쓰이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제 구단은 그들을 불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정작 MLB 30개 구단에 고우석의 포스팅이 통보된 12월 5일 이후로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같은 날 포스팅에 나섰던 이정후가 일주일 만에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 13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에 합의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포스팅 마감 기한(1월 4일 오전 7시)이 다가오는데도 현지 소식통들이 잠잠하자 결국 고우석이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LG에 잔류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과거 한국의 불펜 투수들이 포스팅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에 더 그랬다.
#포스팅 마감 직전 극적으로 계약
고우석이 목 빠지게 기다리던 '계약 임박' 소식은 포스팅 마감을 하루 앞둔 1월 3일에야 터져나왔다. 뉴욕 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 존 헤이먼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한국인 오른손 투수 고우석과 샌디에이고의 계약이 임박했다. 고우석이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될 것 같다"고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LG도 "포스팅 절차에 따라 MLB 구단으로부터 고우석 이적 제의를 받았다"며 "LG는 선수의 뜻을 존중해 해당 팀 이적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고우석의 이적료는 당초 LG가 고려했던 마지노선에 미치지 못했지만, 구광모 구단주로부터 "선수가 간절히 원한다면 조건을 따지지 말고 보내주라"는 뜻을 전달 받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머물던 고우석은 이날 오후 부랴부랴 샌디에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메디컬 테스트를 비롯한 입단 절차를 속전속결로 통과해 포스팅 기한 종료 전 계약을 성사시켰다.
샌디에이고 구단은 계약 발표 후 공식 SNS에 한글로 '고우석 선수, 샌디에이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적고 그가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은 합성 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어 구단 공식 유튜브에 고우석의 KBO리그 시절 활약상을 담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업로드해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샌디에이고는 또 계약 발표 보도자료에서 "그는 지난해 KBO리그 LG에서 44경기에 구원 등판해 9이닝당 탈삼진 12.1개, 평균자책점 3.68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왼손 타자 상대 피안타율 0.179,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0.286를 기록했다"며 "고우석은 지난해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한 마지막 투수였다. 올해 초엔 우리 팀 내야수 김하성과 2023 WBC 국가대표로 함께 출전했다. 다만 부상으로 등판은 하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취재진이 '고우석'(Woo Suk Go)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상황을 대비해 "우-석-고(OOO-suck-go)로 발음하면 된다"는 설명도 곁들여 눈길을 끌었다.
#샌디에이고 입단은 호재
MLB에 첫 발을 내딛는 고우석에게 샌디에이고는 최적의 구단이다. 2021년부터 샌디에이고에 몸담아온 김하성은 지난해 한국인 선수 최초로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면서 팀 안팎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빅리그에 첫발을 내딛는 고우석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다. 또 김하성 영입을 주도한 A.J. 프렐러 샌디에이고 단장은 아시아 선수들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조시 헤이더가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자 일본 프로야구 최연소 200세이브 기록을 세운 왼손 투수 마쓰이 유키를 영입했다. 이어 KBO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 고우석까지 데려가 불펜을 강화했다.
MLB닷컴은 "고우석은 최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 달러에 계약한 중견수 이정후의 매제다. 샌디에이고도 그 계약 전에 이정후 영입을 추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고우석은 앞서 계약한 마쓰이와 함께 샌디에이고 불펜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이들과 로버트 수아레스가 마무리 투수 3파전을 벌일 것"이라며 "고우석이 합류하면서 샌디에이고 불펜은 거의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MLB 통계 전문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고우석이 올 시즌 62경기에서 62이닝을 던져 3승 3패 3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3.83을 기록할 것 같다"고 상세히 예측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는 3월 20일과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LA 다저스와 MLB 개막을 알리는 서울 시리즈를 벌인다. 낯선 환경에서 새출발하는 고우석은 익숙한 마운드에서 MLB 데뷔전을 치를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고우석은 고척돔에서 통산 18경기에 등판했다. 또 샌디에이고의 다르빗슈 유와 마쓰이,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일본인 선수들도 대거 고척돔 그라운드에 나선다. MLB는 물론 한국과 일본 양국의 관심이 집중될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규시즌에는 처남 이정후와 수차례 빅리그 투타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도 크다. 같은 지구(내셔널리그 서부)에 속한 샌디에이고와 샌프란시스코는 올해 13차례 맞붙는다. 고우석이 마운드, 이정후가 타석에서 '집안 싸움'을 펼치는 명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고우석은 1월 6일 귀국해 개인 훈련을 소화한 뒤 다음달 중순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서 열리는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본격적인 빅리그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새 홈구장 펫코파크에서 찍은 입단 인사 영상에서 "헬로 파드리스, 마이 네임 이즈 고(Go). 나이스 투 미트 유"라고 영어로 인사한 뒤 "샌디에이고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스프링캠프까지) 남은 기간 동안 몸을 잘 만들어 오겠다"고 다짐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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