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업 중인 쌍용자동차 노조원들, 아래는 지난 6월 출시된 뉴체어맨 신차발표회. 연합뉴스 | ||
왜 이런 주장이 제기된 것일까.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上海氣車)의 장기적인 기술이전 플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공장을 폐쇄하고 내부에서 옥쇄파업을 벌인 노조는 554명에 대한 정리해고와 L프로젝트를 통한 기술유출 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노조가 본격적인 파업을 벌이게 된 것은 지난 8월 11일 새로운 공동대표 필립 머터프(51)의 취임과 동시에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과 기술이전 시도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신임 머터프 사장은 GM, 이스즈자동차 제품기획 총감, IBC자동차 총재, GM차이나 지사장과 이사회 의장 등을 지냈으며 취임 직전 상하이자동차 수석 부총재였다. 노조는 머터프 사장을 ‘구조조정 전문가’로 부르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2002년 16만 대였던 생산규모가 점점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13만 5900대의 생산에 그치고 있다. 내수 판매는 2002년 14만 8000대에서 2분의 1 규모인 7만 5000대(2005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직원 수(조합원 수)는 5533명(2002년)에서 5692명(2005년)으로 비슷한 규모다. 이 때문에 사측은 인력조정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2005년 쌍용자동차 인수 당시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로부터 장기투자와 고용보장을 약속받았다며 반대하고 있다. “투자를 하지도 않고 기술만 빼가고 장기적으로 쌍용자동차를 껍데기만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에 정리해고보다 투자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머터프 사장은 부총재이던 지난 6월 19일 중국에서 상하이자동차 장쯔웨이 대표와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머터프 사장은 “2010년까지 5개 플랫폼과 30개의 상하이차 자체 모델을 개발, 연간 60만 대를 자체 브랜드로 생산”할 계획을 밝혔다.
특히 연구개발(R&D) 부문에선 영국(MG로버)은 중형차, 쌍용차는 대형차, 상하이차는 소형차의 R&D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 발언을 놓고 “상하이자동차와 쌍용자동차의 기술연구소를 통합하겠다는 뜻”이라며 “기술유출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노사합의를 통해 신차개발 및 생산을 위해 4000억 원 투자를 약속했으나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점을 봐도 투자보다는 기술 이전이 더 큰 목표임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4000억 투자 약속에 대해 사측은 ‘공식 문서로 약속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체어맨 후속의 대형 신차 개발을 완료해 놓고도 출시를 미루고 있는 것도 추후 중국에서 신차개발에 집중할 때 한국에선 신차개발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이미 개발이 완료된 신차를 발표하면서 한국에도 투자하고 있다고 생색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
그러나 사측은 이에 대해 “기술연구소가 여러 곳이기 때문에 중복 개발을 피하기 위해 각 연구소별로 특화시키겠다는 의미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SUV, RV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기술연구소 통합이 마치 기술유출을 위한 것으로 노조가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쌍용자동차는 기술유출 문제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른바 ‘S-100 프로젝트’는 신차인 카이런을 중국 현지에서 생산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이전한다는 프로젝트였다. 올해 6월에는 S-100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L-프로젝트에 대한 계약이 이루어졌다.
민주노총 투기자본감시센터는 8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L-프로젝트가 외견상으로는 중국 현지에서 엔진생산공장을 준공하고 카이런을 생산하는 것이지만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체결된 라이센스 계약금액은 240억 원에 불과해 카이런 개발비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라며 “이는 통상적인 자동차업계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이에 대해 “기술유출이라는 것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정당한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다. 로열티 금액은 비밀사항으로 노조가 얘기하는 액수는 확인이 되지 않은 금액이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쌍용자동차 매각 당시 실사를 맡은 곳이 김재록 씨의 아더앤더슨이었다는 것 때문에 김재록 게이트와 쌍용차 매각과의 연관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술유출과 관련해 유독 카이런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 차종이 쌍용차의 최신 모델로 핵심 기술이 적용된 모델이기 때문이다. 카이런 기술을 이전할 경우 같은 플랫폼을 쓰는 액티언 등도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의 소진관 사장을 갑작스럽게 경질하고 최형택 기술연구소장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소 전 사장의 경질은 상하이자동차 측의 입장과 달라 싼 가격의 기술이전에 반대했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최형택 사장이 취임한 뒤에도 기술연구소장을 계속 맡고 있어 실질적으로 대표이사 업무보다는 연구소장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공동대표인 장하이타오와 장쯔웨이에게 실질적인 쌍용자동차의 경영이 맡겨졌다는 얘기다.
한편 일각에선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재매각할 것이라는 시각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그렇지만 노조도 당분간 재매각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상하이자동차가 자체 기술개발 및 생산능력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체 기술개발이 이루어질 때까지 재매각은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 노조의 시각이다. 재매각이 없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노조와 사측이 제시하는 이유는 정반대인 셈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