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동산은 금세 가격이 오를 것 같은 착각에다 이번에 사지 않으면 좋은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하루이틀 지나고 나서야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한다. 때로는 결단력이 필요하지만 너무 성급히 결정하니 문제다. 고민 기간이 투자 결정 이전보다 그 이후가 더 길다. 계약하기 전에 보이지 않았던 내용이 이제야 눈에 하나둘 들어온다.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나니 자신이 부동산 투자를 잘한 것인지를 확인받고 싶다. 주식은 사더라도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별로 없다. 하지만 집은 산 뒤 친인척이나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잘 사지 않았느냐?”라고 확인하려고 한다. 이는 요즘 자주 사용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심리와 비슷한 맥락이다. 답정너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대답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부동산 잘 샀냐?”는 질문을 받으면 “잘했어. 역시 당신은 대단해”라고 무조건 칭찬을 해줘야 당신을 덜 귀찮게 할 것이다. 어차피 모범생 머리를 쓰다듬어 주듯 자신의 현명한 결정을 칭찬해달라는 어리광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맞장구를 쳐달라는 유도성 질문이다. 그런 만큼 자신이 기대한 칭찬성 답변은 접수하고 그 반대의 답변은 무시해 버린다. 이미 집을 사버린 상황이므로 엎질러진 물처럼 지금 와서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집을 성급하게 사니 혹시나 손해를 볼까 조마조마해진다. 작은 부동산 뉴스에도 일희일비한다. 매입한 아파트나 그 주변 지역에 혹시 호재가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예전에는 흘려들었던 지하철 개통 노선, 심지어 동네 도서관이나 쇼핑몰 신축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운다. 내 돈뿐 아니라 대출까지 내서 충동적으로 샀다면 더욱 심리적으로 불안할 것이다.
집을 판 사람도 평온한 마음은 아니다. 얼마 전 만난 한 고객은 집을 팔고 나니 손이 떨린다고 했다. 집 판 돈을 통장에 넣어두려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금세 집값이 다시 오를 것 같다. 다른 동네 집값이 꿈틀거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집을 잘못 판 것 같다. 물가가 오른다는데, 다시 부동산을 사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주식 투자라도 해서 수익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이어지며 걱정의 연쇄 고리가 형성된다. 어떻게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저질러야 하는 충동을 느낀다. 이런 현상을 ‘행동 편향(Action Bias)’이라고 한다. 골키퍼들은 가운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 곳으로 몸을 날린다. 나중에 방향이 틀렸어도 덜 괴롭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이든 주식시장이든 조급증이 실패를 부른다. 요즘처럼 집값이 떨어지는 하락장에서 실패로 가는 지름길은 쓸데없이 서두르는 일이다. 부동산이 어디로 달아나지 않는다. 겨울 찬바람에 날아가지도 않는다. 실수요자라도 바닥에 이를 때까지 매수 타이밍을 늦춰라. 가격 메리트가 두드러질 때까지 시장 추이를 냉정히 지켜보라.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