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고발지침에 허점…분할·합병 과정 자회사 이중상장 시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기도
먼저 우리나라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의 대표적인 단면으로 기업 이사회가 꼽힌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사회는 오너 총수 일가에 보탬이 되는 안건에 대해 대부분 ‘찬성’을 던져왔다. 경영을 견제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오너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돕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특히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감시하는 감사위원회 위원의 의무 분리선임 숫자가 적었다. 현행 상법은 감사위원 중 1명을 주주총회 결의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정관으로 분리선임 감사위원을 2명 이상 선임할 수 있다. 하지만 정관상 감사위원 분리선임 의무 인원이 1명인 기업이 다수다. 최소한의 의무 분리선임 숫자만 채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분리선임된 1명의 감사위원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수 있다. 나머지 감사위원들은 분리선임된 것이 아니라 오너 총수 일가와 가깝거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선임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2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해 오너 총수 일가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다. 상법과 정관 등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감사위원회는 CEO 등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지배주주로부터 독립해 선임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선임 방식으로는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확보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단한 경영능력을 보이지 못하지만 오너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면서 고액의 보수를 챙겨가는 것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에서 비롯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오너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등기 임원에 비해 책임에서 자유로우면서도 고액 보수를 챙겨가는 사례가 많아 문제로 지적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주주총회 보수심의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주주총회 보수심의제는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보수정책과 대표이사 등 임원진의 보수 산정에 대해 심의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마저도 표결 결과는 강제력이 없고 권고적 성격을 갖는 ‘권고적 주주제안’의 한 형태다. 김우찬 교수는 “주주총회 보수심의제는 현재 주요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며 “효과적으로 제도가 작동할 경우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으며 기업의 성과와 경영진 보상 간 연계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오너 총수 일가에 보탬이 되는 계열사 분할·합병 등이 비교적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도 후진적 지배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따금 상장사를 물적분할하고 분할한 자회사를 또 다시 주식시장에 상장(이중상장)한다. 이 경우 원래 기업가치가 나눠지고 자회사를 떼어낸 원래 모기업 주가는 극심한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기업에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은 큰 손실을 피할 수 없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 회장(변호사) “기업이 물적분할 뒤 이중상장하려면 자회사의 주식 50%를 모회사 주주에게 현물 배분하는 등 일반주주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룹 내 계열사 간 합병시 일반 주주들의 권리 침해가 의심되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오너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와 상대적으로 낮은 회사가 합병하는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총수 일가에 이익을 몰아주는 것이다. 특히 상장사의 경우 주가 흐름에 따라 합병 회사 간 합병 비율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
김규식 회장은 “현재 상장사가 합병을 진행하는 경우 기업가치를 시가 개념인 주가로만 평가하고 있는데 이 경우 지배주주(총수 일가)가 개입해 의도적으로 주가의 흐름을 조작할 수 있는 유인이 발생한다”며 “상장사가 합병을 위한 기업평가를 진행할 때 주가, 장부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 가치를 반영하면 기업가치를 왜곡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 같은 후진적 행태와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 같은 요구에 힘입어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기업들의 반발에 번번이 물러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그동안 기업이 지배주주 일가(총수 일가)에 사익편취를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을 경우 총수 일가가 관여한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않으면 기업만 고발 조치를 취하는 일이 많았다. 사실상 이익을 본 총수 일가는 고발 조치에서 제외된 셈이다.
공정위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공정위 지침’(고발지침)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총수 일가의 간접·정황 증거에도 고발이 가능하도록 고발지침 개정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재계 반발이 거세자 이 같은 내용을 고발지침에서 제외했다.
개정안은 오히려 오너 총수 일가를 더욱 자유롭게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정안에는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한 법인의 사익편취행위에 지시·관여한 특수관계인(총수 일가)을 고발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공정위의 판단에 따라 고발하지 않을 수 있다. 공정위가 일반주주가 아닌 총수 일가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난이 일었다.
전문가들은 후진적 지배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개선하려면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준석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주식시장이 선진 주식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며 “법제도적 개선뿐 아니라 기업의 인식과 관행의 개선, 그리고 투자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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