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는 1997년 내란·뇌물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이 확정됐다. 검찰과 법원은 지금까지 전 씨와 그 일가를 통해 1282억 2000만 원만 국고로 환수했다. 여기에 55억 원을 추가로 환수할 예정이다. 55억 원은 2023년 12월 30일 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전두환 씨 처남 이창석 씨가 소유했던 경기도 오산시 부동산을 추징한 것이다. 전 씨가 살아 있을 때 시작된 소송이어서 추징이 가능했다.
향후 소급입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55억 원이 '전두환의 마지막 추징금'이 된다. 전 씨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당사자가 사망해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전두환 추징 3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하지만 여야 공히 4월 총선 정국에 돌입하면서 전두환 추징 3법은 가시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선 빛을 보긴 힘들 듯하다.
그럼에도 전두환 일가의 은닉 재산 추적은 유의미하다. 향후 전두환 추징 3법이 제정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추징금은 살아 있는 전두환 일가의 족쇄와 굴레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전 씨가 불법으로 강압으로 축적했던 검은돈 실체와 흐름을 끝까지 밝혀내는 건 유의미하다.
그런 면에서 전두환 씨 장남인 전재국 씨의 사업 행보가 주목된다. '추징금 공포' 탓인지 전재국 씨는 '음지에서' 자신의 핵심측근들을 앞세워 왕성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전 씨의 핵심측근이자 사업 동반자인 이들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업 면에서 전 씨와 거의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재국 씨의 핵심측근들이 직·간접 관여한 사업체들엔 전 씨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일요신문은 전재국 씨의 핵심측근인 권명학 씨와 김경수 씨 등이 어떤 사업에 관여하고 있으며 현재 어떤 상황인지 추적했다. 권명학 씨와 전재국 씨는 도서 유통업체 (주)북플러스 공동 대표이사다. 전 씨가 북플러스 실소유자로 알려졌다. 전 씨는 2023년 5월 18일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로 대표이사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북플러스는 1998년 10월 9일 서적 도소매업 등을 주목적으로 설립됐다. 비상장법인인 북플러스는 한때 연간 매출이 700억 원에 달해 도서 유통업계 2~3위 자리를 지켰다.
전재국 씨는 2018년 말까지 북플러스 전체 발행주식 40만 주 가운데 25만 8000주(64.5%)를 소유한 최대주주였다. 하지만 전 씨 보유 주식 가운데 북플러스 전체 주식수의 51%에 해당하는 20만 4000주가 아버지 전두환 씨의 미납 추징금 일부로 검찰에 압류 당했다. 압류된 주식은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절차로 넘어갔다. 이를 유 아무개 씨가 2019년 5월 23일 낙찰 받았다. 최대주주가 전 씨에서 유 씨로 바뀐 것이다. 이후 전 씨는 유상증자를 통해 자신 지분을 늘리는 꼼수를 썼다. 그러면서 북플러스 지분 51%를 공매를 통해 취득했던 최대주주 유 씨 지분율은 떨어졌다. 과점주주에서 최대주주로 지위가 바뀐 유 씨는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북플러스 대표이사이자 도서판매 업체 (주)리브로 감사이기도 한 권명학 씨는 전재국 씨의 부동산 사업을 담당한 최측근으로 추정된다. 권 씨는 북플러스뿐 아니라 전재국 씨와 전 씨의 딸, 아들이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는 (주)음악세계의 전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또한 전 씨가 대주주로 있는 리브로 감사를 맡고 있다. ‘전재국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것도 이 같은 사실들 때문이다.
권 씨가 대표를 맡았던 (주)맥스코프는 2014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옛 서광백화점 부지를 310억 원에 매입해 오피스텔 건축 사업을 추진했다. 맥스코프는 북플러스가 지분 14.29%를 보유하는 등 전 씨 측 회사였다. 전 씨 측은 맥스코프 지분 대부분을 2018년 다른 회사에 매각하면서 일산 주엽동 오피스텔 건축 사업권을 넘겼다. 이후 주엽역 삼부르네상스 오피스텔이 2020년 10월 완공됐다. 그런데 권 씨가 2022년 말까지 맥스코프 지분 5%를 보유하고 있었던 까닭은 의문이다. 권 씨가 현재까지 이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9년 베트남에서 7500억 원 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티에이치디엔씨(TH D&C) 대표이사도 권 씨였다. 티에이치디엔씨는 베트남 부동산 개발사업권을 현지 부동산 개발회사에 넘긴 뒤 2019년 회사명을 음악세계로 바꿨다.
권 씨는 티에이치디앤씨와 비슷한 케이엔에스디엔씨(KNS D&C)를 2020년 3월 대구광역시에 설립했다. 케이엔에스디엔씨는 티에이치디엔씨와 사명과 이사진 구성, 설립목적 등이 비슷했다.
케이엔에스디엔씨 이사진도 전재국 측근들로 채워졌다. 권명학 씨를 비롯해 리브로 대표 겸 북플러스 분할 신설회사 '더 북센터' 대표인 김 아무개 씨, 북플러스 기타비상무이사 겸 지엘코리아 감사인 배 아무개 씨 등이 이사로 등재됐다. 설립 목적도 주택건설사업, 부동산임대 및 분양, 주택신축판매 등이었다.
자본금은 케이엔에스디엔씨가 10억 원으로 티에이치디엔씨 1억 원과 비교하면 10배 규모에 달했다. 케이엔에스디엔씨는 설립 7개월 만인 2020년 10월 주주총회 결의로 해산했다. 티에이치디앤씨와 케이엔에스디엔씨는 ‘전재국 사단’이 같은 사업을 하려 했던 두 개의 회사였던 셈이다.
권명학 씨는 주택건설사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모든리츠컨설팅을 2015년 1월 설립하기도 했다. 대표이사는 권 씨, 사내이사는 권 씨 아내인 정 아무개 씨, 감사는 권 씨 자녀로 추정된다. 모든리츠컨설팅 소재지였던 인천 동구 금곡동 33-XX는 권 씨 소유 건물이었다. 모든리츠컨설팅은 2018년 11월 사무실을 서울 강서구 마곡동 78X-X로 이전했다. 같은 달 권 씨는 모든리츠컨설팅과 3km 거리에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권 씨의 북플러스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모든리츠컨설팅 마곡동 사무실 근처 김밥집 등에서 결제내역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모든리츠컨설팅은 2023년 7월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오피스텔로 사무실을 다시 이전했다. 일요신문은 2023년 12월 강서구 마곡동과 종로구 숭인동 사무실 모두 찾아가봤다. 하지만 모든리츠컨설팅 사무실 간판은 없었다.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북플러스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권 씨는 2019년 1~6월 여러 차례 대치대우아이빌4차입주자대표회의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그는 대치대우아이빌4차에 거주하진 않았다. 2018년 11월부터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다가 2019년 12월부터 51억 2000만 원에 매입한 서울 용산구 나인원한남에 살았다. 이에 대치대우아이빌4차에 입주한 회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2019년 하반기엔 대치대우아이빌4차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제한 내역은 없었다.
권 씨는 한국출판협동조합 파주 물류센터에 있는 (주)북허브 사내이사도 맡고 있다. 북플러스는 북허브 보유 주식 전량(9만 주, 지분율 15%)을 2022년 매각했다.
전재국 씨 또 다른 핵심측근인 김경수 씨. 그는 전 씨와 성균관대 경영학과 동기로 ‘전재국 오른팔’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북플러스 주식 2만 3000주(3.628%)를 보유하고 있다. 북플러스 설립 때부터 2019년 11월까지 감사, 사내이사, 대표이사 등을 두루 거쳤다. 2021년 3월부터 현재까지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김 씨는 북플러스 외에도 전재국 씨가 만든 7개 회사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를 비롯해 주주 형태로 관여했다. 권명학 씨와 함께 전 씨의 재산관리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경기도 파주시에 도서 물류센터를 소유한 (주)지엘코리아 대표이사다. 지엘코리아 최대주주는 북플러스(지분율 14.72%)다.
그는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북플러스 사옥 3층에 있는 (주)케이엘개발 대표이사도 맡았다. 주택건설사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케이엘개발은 2018년 7월 설립됐다가 2023년 12월 4일 해산했다.
김 씨는 전자제품 판매 및 설치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D 업체 사내이사를 2017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맡았다. D 업체 대표 이 아무개 씨는 케이엘개발 사내이사를 맡은 바 있다.
법인등기부에 기재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D 업체를 1월 3일 오후 방문했다. D 업체는 폐업한 상태였다. D 업체 사무실은 다른 업체가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D 업체 전 직원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기자가 ‘D 업체가 전재국 씨와 관련 있는 회사냐’고 묻자, D 업체 전 직원은 “전혀 관계없다”며 “(김경수 씨는) 옛날에 사내이사로 계셨던 분이고 (전재국 씨와 D 업체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전재국 씨를 만난 적 없느냐’는 물음에도 “만난 적 없다”고만 답했다.
D 업체 대표였던 이 아무개 씨는 1월 9일 통화했다. 그는 “내가 아는 선배가 (김경수 씨를) 자신의 친구라며 소개시켜줘서 나와 같이 에어컨 판매업을 하려고 했다. (김 씨가) 나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에어컨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 씨를 강하게 비난했다. ‘전재국 씨를 아느냐’는 물음엔 “만난 적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라고만 했다.
김 씨는 경기도 평택역사에 있는 대신문고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평택역사는 AK플라자(옛 애경백화점) 소유다. 전재국 씨가 대주주로 있는 리브로는 평택점을 2009년부터 직접 운영하다가 2018년 대신문고에 넘겼다. 대신문고는 이후 2022년 말까지 리브로 평택점을 운영하다가 2023년 1월부턴 같은 자리에서 종로서적 평택점을 운영 중이다. 대신문고의 유일한 사업장으로 보이는 곳이다.
일요신문이 2023년 12월 방문했을 때 대신문고 서가 곳곳엔 리브로 로고가 남아 있었다. 직원 데스크엔 리브로와 북플러스 등 직원 연락망이 기재된 문서가 여전히 붙어 있었다. 북플러스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김경수 씨는 북플러스 법인카드를 대신문고 주변에서 여러 차례 사용했다. 대신문고에서 결제한 내역도 있다.
2016년 12월 설립된 종로서적은 리브로가 지분 10%를 보유해 전재국 씨와의 연관성을 의심받았다. 리브로는 현재 종로서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문고엔 현재도 리브로 흔적이 남아 있다.
리브로는 애경백화점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역시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전재국 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전재국 오른팔’ 김경수 “전재국 많이 어려워…5년 전 인연 끊겼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의 장남 전재국 씨의 오른팔로 불리는 김경수 씨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B 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가전제품 판매업체인 B 사는 2018년 12월 설립됐다. 일요신문은 1월 10일 오후 B 사 사무실에서 김 씨를 만났다. 김 씨와 사전 약속은 없었다. 정식 인터뷰는 아니었다. 다음은 그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 일부다.
―전재국 씨와 사업을 같이 하는 것 같은데.
“5년 전 헤어졌다.”
―(전재국 관련 회사들) 법인등기부들엔 (김경수 대표 이름이) 아직 남아 있는데.
“(나는) 2019년 (북플러스) 대표이사를 그만뒀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북플러스 주식은) 비상장주식이니까 누가 사주질 않는다. 그냥 그것만 있는 거다.”
―전재국 씨와 연락하며 왕래하고 있나.
“끝났다. 1년에 한 번, 모임에서나 볼까.”
―두 사람 간 비즈니스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인가.
“그렇다.”
―안 좋은 일로 끝났나.
“아니다. 그 친구(전재국)도 너무 힘들고, 나도 너무 힘들고. 각자 먹고살자고 해가지고.”
―동문이기도 하고 계속 사업도 같이 한 걸로 아는데.
“(전재국) 회사가 너무 어려우니까 한 입이라도 덜어야 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나온 거다.”
―전재국 씨가 이런저런 사업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안 좋나.
“많이 어렵다. (전재국) 집의 등기부등본 떼보면 알 거 아닌가. 본인(전재국) 사업하느라 은행에 다 담보로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그 집 보면 짠하다.”
―(김경수) 대표님은 B 사만 운영하는가. 다른 건 하지 않고.
“그렇다. 그 사람(전재국)하곤 인연이 끝난 사람이다."
기자는 더 질문하려 했으나 김 씨는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김 씨는 전재국 씨와 인연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전 씨와 관련된 회사들에서 아직도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9년 9월 북플러스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뒤인 2021년 3월부턴 이 회사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돼 있다. 또한 지엘코리아에선 2018년 7월부터, 대신문고에선 2023년 7월부터 각각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전재국 그늘 안에 있는 모양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