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꼬박 걷는 등 치밀했던 도주 ‘걸음걸이’에 덜미…“우발 범행” 주장하지만 가능성 낮아, 엄벌 불가피할 듯
성범죄와 절도 등으로 20년 이상 수감생활을 했다고 알려진 이영복은 “강해보이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유족 측은 이에 대해 항의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영복의 검거 과정과 범행동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적 따돌리려 이틀 꼬박 걷기도
이영복은 2023년 12월 30일 오후 7시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한 지하 다방에서 60대 여주인 A 씨를 폭행한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 30만 원가량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영복은 당시 상황에 대해 “돈을 훔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A 씨가 ‘영업시간 다 됐다. 나가라’고 한 뒤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말다툼이 붙었고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다음 날인 12월 31일 A 씨 아들은 ‘어머니가 연락이 되지 않아 가게에 찾아왔는데 문이 잠겨 있다’며 112에 신고했고, 이후 출동한 경찰에 의해 A 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A 씨 유족은 “이 사건으로 우리 식구들이 다 쓰러져 있는 상태다. A 씨는 너무 착하고 열심히 일만 하던 사람이다. 점심마다 아들 밥을 해주는데 이튿날에 밥을 안 해주러 오니까 (아들이) 연락이 안 돼서 찾게 됐는데 가게 안에서 비참하게…”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A 씨를 살해한 이영복은 가게 안을 뒤져 30만 원 정도를 훔친 뒤 지하철을 타고 경기 파주로 이동했다. 이후 원래 주거지인 파주 한 고시원에서 옷을 갈아입고 인근에 사흘 동안 머물렀다. A 씨 살인 용의자로 특정된 다음 날인 1월 2일 오후 6시 30분쯤 이영복은 파주의 한 치킨집에서 무전취식한 뒤 3만~4만 원 정도가 든 금고를 훔쳐 달아난 것으로 나타났다. 3일에는 라면집 주인 지갑을 들고 나왔다는 제보도 전해진다.
이영복은 2일 밤 파주시에서 서울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이후 4일 밤 경기도 양주시로 이동할 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꼬박 이틀을 걸었다. 경찰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
1월 4일 밤에서 5일 새벽 사이 경기 양주시 광적면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다방에 도착한 이영복은 60대 여주인 B 씨에게 접근했다. 당시 함께 있던 여종업원이 퇴근하고 B 씨와 둘만 남게 되자 이영복은 B 씨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30만 원가량을 챙겨 택시를 타고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오전 8시 반쯤 출근한 종업원이 숨진 B 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영복의 범행 동기에 대해 “금전적인 성격이 강하다. 12월 30일 A 씨로부터 30만 원을 훔친 것에 이어, 도주 중이던 1월 2·3·4일 연속으로 돈과 관련된 범행을 했다”면서 “이영복의 주력 범죄는 절도다.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여성 혼자 있는 다방이나 카페에 들어가 끝까지 기다리다가 사람 없을 때 돈을 빼내는 것이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특한 걸음걸이’ 단서로 검거
이영복은 첫 사건 발생 6일 만이자 공개수배 약 14시간 만인 1월 5일 오후 10시 45분쯤 강원 강릉시 재래시장에서 붙잡혔다. 이영복은 양주시에서 B 씨를 살해한 뒤 동서울터미널로 이동해 버스를 타고 태백과 삼척을 거쳐 강릉으로 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영복은 도주 과정에서 대중교통만 이용하고 서너 차례 옷을 갈아입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출소 이후 동생이 개통해 준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범행 전부터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CC(폐쇄회로)TV가 미치지 않을 것 같은 개천이나 공원 위주로 걸어 다녔고, 현금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흘(1월 2일~4일) 동안의 동선을 추적했는데 인도가 있는 쪽이 아닌 개천 쪽으로 걸어가 추적에 난항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영복은 이처럼 치밀한 도주행각을 벌였지만 술에 취하면 나오는 독특한 걸음걸이 때문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CCTV로 파악한 결과 이영복은 술을 마시면 몸을 구부정하게 하면서 독특한 걸음걸이로 걸었다”며 “옷차림이 다르고 어두운 곳으로 이동해 긴가민가했지만, 걸음걸이 때문에 이영복이라는 걸 확신했다”고 말했다. 실제 강릉에서 검거될 당시 이영복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
#교도소에서 무시당해 “강해보이고 싶었다”
이영복은 성범죄, 절도 등 전과 8범으로 수형생활 기간만 총 20년 이상이며 2023년 1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두 달도 안 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과거에도 주로 경기 파주·일산 일대 여성이 운영하는 카페나 식당 등에서 금품을 훔치다가 수감과 출소를 반복했다.
이영복의 전과는 20세이던 1986년부터 시작된다. 강도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 절도를 해서 실형을 받았고, 1993년에는 강도강간을 저질러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09년 절도죄로 10년을 복역하다 가석방된 뒤엔 전자발찌를 끊고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전 마지막 범행은 2022년. 4차례에 걸친 절도와 무전취식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2023년 초, 이영복의 절도죄에 대해 ‘생계형 범죄’라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일산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이영복은 “교도소 생활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 약하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술만 먹으면 강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씨가 우발적인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경찰은 살인과 함께 현금도 훔친 점 등으로 미뤄 이영복에게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통상 강도살인죄는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는다. 법원은 “이 씨의 범죄 중대성이 크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1월 12일 이영복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오윤성 교수는 “20년 이상 수감생활을 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합리화되긴 어렵다. 이영복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만든 사람은 본인이다”라고 말했다.
#우발? 계획? “엄벌은 못 피할 것”
이영복은 1월 7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계획된 범죄는 아니었다”며 강릉까지 도주한 이유에 대해 “그냥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금품 탈취 목적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없었다”고 답했다. 왜 다방만 노렸냐는 질문에는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2명을 살해했는데 어떻게 우발적 범행으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앞서의 A 씨 유족은 “빨리 잡혔으면 그 사람(B 씨)도 안 죽었을 것”이라면서 “우발적인 범행이라면서 어떻게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하고, 살인하고 나서 그렇게 (금품을 훔치려고) 다 뒤집느냐. 우발적이라면서 왜 또 살인을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유족은 “A 씨는 평소 ‘내 아들 고생 안 시키겠다, 아들 세대는 이 가난을 벗어나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냥 사형 집행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윤성 교수는 “길 가다가 갑자기 누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가방을 확 뺏어가는 것을 우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계속 따라가면서 금품을 훔친다면 그것은 계획 범행이다. 이영복은 직접 다방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이영복이 말하는 ‘우발적’이라는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영복이 높은 형량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허주연 변호사는 MBN 뉴스파이터에 출연해 “이영복은 절도죄로는 굉장히 높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이전에 비슷한 범죄가 반복됐다는 것을 예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강도살인은 일반 살인과 달리 법정 최고형이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 규정돼 있다. 양형기준에 따르더라도 최소 20년 이상의 징역형, 가중 요소가 있다면 25년 이상 징역형 또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된다. 엄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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