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실망한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웠고 자책감과 패배감에 한없이 우울해 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오랜만에 ‘알포인트’라는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게 됐다.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영화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이선균 배우를 만나게 됐다.
당시 조연으로 출연했던 이선균 배우가 나에겐 새롭고 신선했다. 그전까지 미안하게도 이선균 배우를 잘 알지 못했다.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이선균 배우에게 연기도 참 안정됐고 특히 목소리가 아주 특이해서 인상적이었다고 말을 건네자 이선균 배우는 “제 목소리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제 목소리가 아주 어색합니다”라며 쑥스러워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신선하고 새로운 배우를 만났다는 생각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당시 이선균 배우는 대중에게 알려지려고 하는 단계에 있었고 막 성장하려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을 것인데 이선균 배우는 참 얌전하고 겸손하고 진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1기로 연기 공부를 한 그는 자신이 나중에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는 영화 주인공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아마 꿈에서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현재 자신의 위치와 위상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행복하다”면서 “연기는 자신이 써내려가는 일기”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처음 만난 지 15년 정도 지난 2019년경 이선균 배우가 사는 평창동의 빌라를 보러갔었다. 10년여 기러기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딸들이 캐나다에서 귀국하게 되어 집을 보러 다니던 중 우연히 가게 된 평창동 빌라에 이선균 배우도 살고 있었다.
어떤 영화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 시사회 뒤풀이에서 만난 이선균 배우는 나에게 자기 동네로 이사 오실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만약 오시게 되면 자기랑 아주 좋은 술친구가 될 것 같다며 꼭 이사 오라는 당부를 했다. 나는 이선균 배우에게 우리 술친구만 할 게 아니라 꼭 작품을 같이 하자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결국 나는 그 빌라로 이사하지 못했고 아쉽게도 그와 작품도 같이 못했다.
2년 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같이 만든 추창민 감독의 새로운 영화 ‘행복의 나라’의 촬영장에 응원을 가게 됐다. 제작자는 아주 친한 후배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추창민 감독이었기에 당연히 응원을 가게 됐다. 그 영화의 주연배우가 이선균 배우였다.
촬영하는 짬짬이 이선균 배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미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선균 배우는 겸손하고 친근하고 다정했다. 우리는 서로 감독과 제작자의 뒷담화를 하면서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선균 배우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는 여러 번 경찰서 앞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기자들에게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뎌냈다. 자신의 사생활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현실에도 직면해야 했다.
어린 두 아들과 같은 일을 하는 아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동료들이 겪는 고통을 그는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정말 그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인식해야만 할 것 같다. 그를 하늘나라로 보낸 결정이 한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나 가혹했고 너무나 매정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 남기고 간 의미를 이대로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 영화 대사가 생각이 난다.
“선배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고 이선균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