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 위원장도 힘을 실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발언을 두고 야권에선 한 위원장이 검찰의 과잉 수사 행태를 자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은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참사의 정쟁화”라며 표결에 불참했다.
정가에선 윤 대통령이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하여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1월 10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남 창원에서 열린 경남도당 신년인사회 후 기자들과 만나 문답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태원 특별법 재의요구권 행사를 대통령실에 건의할 건가’ 질문에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 입장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계속 협상에 응했다. 공정하고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진짜로 피해자를 추모하고 남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보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의 특별법을 원했다. 지금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특별법은 그렇지 않다”며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 원내에서 여러 가지로 신중하게 논의해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동훈 위원장은 이태원 특별법의 문제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국민의힘)는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진심으로 추모하고 그리고 피해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원내에서 윤재옥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안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예를 들어서 이게(특별조사위원회) 1년 6개월을 하잖아요. 1년 6개월을 뭘 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조사위 자체도 사실상 야당이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있잖아요. 조사위의 권한 자체가 압수수색·출금(출국금지)·동행명령까지 할 수 있게 돼 있죠. 그럼 그랬을 때 실제로 누가 보더라도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런 권한을 가진, 야당이 주도하는 조사위원회가 사실상 검찰의 수준에 갖는, 그런 식의 조사를 1년 반 동안 한다면 그 과정에서 대상자들은 승복하지 못할 거고요. 그 과정에서 국론은 분열될 겁니다.”이태원 특별법은 이태원 참사 진상 재조사를 위한 특조위 구성이 핵심이다. 특조위는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해 11명으로 구성된다. 특조위 직원 정원은 60명이며, 필요 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공무원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 특히 활동기간은 1년 이내이지만, 필요시 3개월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어 최대 1년 6개월간 활동이 가능하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선 한 위원장이 검찰의 수사 행태를 자인했다고 비판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반대로 해석하면 검찰은 수사 대상자들이 승복하지도 않고 국론은 분열될 걸 알면서도 자신들이 가진 권한으로 특정인에 대한 수사를 2~3년씩 해온 것이냐”며 “그러한 행태가 한 위원장이 말하는 ‘동료시민’을 위한 길이냐”고 꼬집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수사의 문제점도 다시 언급됐다. 조상호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1년 6개월이 아니라 3년 넘게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대표 수사가 국론을 분열시키기 위한 수사라는 것을 한 위원장이 인정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재명 대표 변호사비 대납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신성식 검사장 역시 “이 대표는 3년 넘게 수사하면서, 이태원 특조위의 1년 6개월 조사가 길다고 하면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1년 6개월 조사로 국론이 분열되면, 3년 넘게 수사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오히려 권한은 검찰이 특조위보다 더 막강하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수사팀장으로 임명됐을 때 ‘보복 수사’ 우려에 대해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 위원장 발언 중 일부가 사실관계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한 위원장은 ‘야당이 주도하는 특조위’라고 했다. 하지만 이태원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원은 국회의장이 유가족 등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고 여당(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이 4명, 야당이 4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상임위원은 국회의장과 여당·야당이 각각 1명씩 추천하고, 위원장은 상임위원 중 특조위 의결로 선출한다. 국민의힘도 민주당과 동등하게 특조위 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셈이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수정안에는 이태원 유가족 추천 몫 등 원안에서 여당이 문제 제기한 부분을 다 반영했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과거 원안을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한 위원장은 특조위가 압수수색·출국금지·동행명령까지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가 자료 및 물건 제출명령, 동행명령, 고발 및 수사요청, 감사원 감사요구, 청문회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출국금지나 압수수색은 특조위가 정부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요청할 수 있을 뿐 직접 강제할 권한이 없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국회의장 몫이 3명이면 결국 7 대 4 구조 아니냐”며 “(출국금지 압수수색 관련은) 한 위원장이 이태원 특별법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걸 강조한 거다. 하나씩 따지고 들어갈 일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