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료기관평가인증원’과 이름만 비슷한 임의단체…대표 “정식 절차 거쳐 사업자 등록, 비영리 활동”
#무자격 단체가 '명의' 인증서 발급
2023년 10월 19일 국회에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로 '의료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KOIHA)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게 핵심이다. 김 의원은 개정안 발의 배경을 "최근 KOIHA와 유사한 명칭의 단체가 설립돼 의료인 인증과 의료관광 활성화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며 "무자격자의 인증원 사칭이나 유사단체 난립에 따른 폐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 같은 의료법 개정 추진의 발단이 된 유사단체는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이라는 곳이다. KOIHA가 2023년 초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의 각종 사업과 활동 사항 등을 접한 뒤 의료계의 각종 부작용이 우려돼 보건복지부 등과 논의를 거쳐 입법화까지 추진하게 됐다.
실제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은 사업자 등기조차 안 돼 법인의 실체가 없는 곳으로, 지역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번호만 부여 받은 '비영리 임의단체'다. 이런 곳이 전국 의료기관 및 한의원 등을 대상으로 '명의(Good Doctor)'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은 "의료 수준과 질, 소비자 안전 향상을 견인하는 전문성과 객관성·공정성·신뢰성을 갖춘 국제수준의 인증 프로그램이 되도록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 '중국검험인증그룹(CCIC)코리아'라는 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며 중국 등지 의료관광 사업도 벌인다.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의 대표자는 수도권의 한 대학 산학협력단 소속 A 교수로 의료 분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KOIHA 관계자는 "무자격자의 인증은 의료 소비자에게 근거 없는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데다, 자칫하면 각 병원들도 비슷한 명칭 때문에 유사단체를 공인단체로 착각해 돈까지 들여 인증을 받는 등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에 직접 연락도 시도했으나 전화 연결도 안 된다"며 "어느 날에는 해당 인증원의 한 직원이 부재중 기록을 확인했는지 저희에게 다시 전화를 주긴 했는데, 책임자를 연결해주겠다더니 결국 감감 무소식이었다"고 덧붙였다.
KOIHA는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에 대한 고발까지 계획했지만 잠깐 보류했다. 유사단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탓에 우선 법 제정부터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병원협회 등에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의 인증은 의료법을 따르는 KOIHA의 인증과 다르다'는 안내문을 전국 의료기관에 발송해달라는 등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유사단체 한 곳의 등장으로 법 개정, 공공기관의 대응, 의료계를 대표하는 협회들의 행정력 투입 등 전방위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운영하는 그 대표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 대표인 A 교수는 의료계 외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한 임의단체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 외에도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 '국제협력개발협회' '국제두피모발협회' 'K-ESG평가원' '한국NCS자격개발원' '아태교육문화연맹' 등 최소 8곳의 임의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전부 같은 사무실에 위치했다. 불과 약 10명이 상주하는 곳으로 직원과 단체의 숫자가 맞먹는다. 임의단체는 큰 자본력 없이도 세울 수 있으며, 정식 법인보다 설립 절차가 간소하고 회계규정 역시 느슨한 편이다.
A 교수 단체는 대부분 비영리를 내세우되 법인등기는 하지 않은 상태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인증, 개인에 민간자격증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벌인다는 공통점이 있다(관련기사 [단독] 13년째 현직 의원이 대회장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 둘러싼 미스터리).
또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 사례처럼 각 단체들이 마치 특정 직역을 대표하는 공식협회 혹은 법인임을 연상케 하는 명칭을 사용하는 특징 역시 두드러진다. 이러다 보니 해당 단체들과 각종 업무협력(MOU)을 맺은 기업 혹은 지방자치단체 등마저도 단체의 성격을 잘못 인지한 경우가 흔하다.
일요신문이 A 교수 단체들과 MOU를 맺은 일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공식법인인 줄 알았다"면서도 "서울시 등 주요 지자체들하고도 행사를 진행한 이력들을 확인해 공신력 있는 단체로 판단하고 업무협력을 맺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기업들의 신뢰 바탕이 된 서울시조차 A 교수 단체들을 공식법인으로 착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서울시는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이 13년째 열어온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 시상식을 최근까지 후원하면서도 주최 측을 재단법인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은 들러리? 표창 나눠 갖기
A 교수 단체들이 민간 인증·자격증 등의 사업만 벌어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은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은 '대한민국 ESG대상' 시상식을 매년 개최한다. 여당 소속 현직 국회의원이 빠짐없이 대회장을 맡아 정부표창이 수여되는 행사지만, 공교롭게도 수상자의 상당수는 A 교수 측근이나 단체 사업에 협조한 기업들이다.
2023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 수상자 일부는 A 교수의 또 다른 단체인 두피모발협회나 주최 측인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관계자 등이었다. 아울러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의 '명의(Good Doctor)' 인증을 받은 병원들도 해당 행사에서 정부표창을 받은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당시 행사에서 상을 받은 기업들은 '홍보분담금' 명목으로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에 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이 같은 해 6월 국회에서 연 '대한민국 ESG대상'도 다르지 않다. A 교수 단체와 MOU를 맺는 등 직간접적 인연이 있는 곳들이 수상자에 포함됐다. 이들 역시 주최 측에 금전을 지급했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도 있다. 최근 열린 해당 두 행사의 대회장은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대한민국 ESG대상에서 상을 받은 한 기업의 관계자는 "당연히 공신력 있는 단체가 연 행사에서 받은 표창인 줄 알았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선 정부 표창이 매우 중요하므로 돈을 내긴 했는데, 이런 관행은 개선됐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털어놓았다.
A 교수는 "KOIHA 측의 문제 제기는 아는 바가 없고, 유사한 단체명을 쓴다는 데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한국보건의료평가인증원에는 여러 의료 전문가가 소속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법인 등기는 안했어도 정식 절차를 거쳐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면서 "아무런 법적 하자 없이 여러 비영리 활동을 펴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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