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거부권 정치적 부담, 여론 곱지 않아 당내 우려…한동훈 마이웨이 여부 주목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은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참사의 정쟁화”라며 표결에 불참했다.
정가에선 윤 대통령이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하여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 건의를 당론으로 모으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월 18일 의원총회 이후 “민주당이 이 법(이태원 특별법)을 여야 간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유도했다”며 “(정부여당에)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총선에서 계속 정쟁화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해 재의요구권 건의하기로 의총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원내대표는 “동시에 민주당에 특조위 구성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안을 가지고 재협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의총에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비정한 정부여당’이라고 비판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 후 첫 의원총회 결론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라고 하니 참 안타깝다”며 “국민을 위한 정치,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오직 대통령과 그 가족을 위한 정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의 이태원 특별법 재협상 제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특조위 자체를 받는 척하면서 특조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며 “재협상 요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이태원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통령 취임 후 거부권 행사한 법안이 양곡관리법·간호법·노란봉투법·방송3법·김건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을 포함해 7개로 늘어난다.
여권에서는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따른 후폭풍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거부권 행사에 따른 여론이 곱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응답자 52.7%가 ‘행사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행사해야 한다’는 찬성의견은 38.2%였다. 연령별로 보면 60대와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반대 입장이 높았다.
한국갤럽이 지난 1월 9일부터 11일 진행한 자체 여론조사에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를 보면 ‘잘하고 있다’는 33%, ‘잘못하고 있다’는 59%를 기록했는데, 부정평가 이유에 ‘거부권 행사’가 10%로 2위에 올랐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은 1월 1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특별법이 정부로 이송되는 즉시 법을 공포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족 10여 명은 눈물을 흘리며 삭발에 나섰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여권 관계자는 “정부여당은 특조위 구성과 권한 등 독소조항을 거부권 행사의 명분으로 들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를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거부했다는 이미지만 남는다”며 “‘배우자 방탄’이라는 김건희 특검법과는 성격이 또 다르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태원 특별법이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다시 넘어오면, 2월부터 4월 사이 국회에서 쌍특검법과 이태원 특별법을 동시에 재의결해야 한다. 민주당에서는 계속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 재의결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고 할 것이다. 이들 법안이 있으면 총선 기간 내내 이슈 선점에서 민주당에 계속 끌려 다닐 텐데 선거를 어떻게 치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김건희 특검법을 지난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서둘러 재표결하자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해충돌 소지가 있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추진하는 검토 중이라며 합의해주지 않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총선용 악법’이라 말하며 “(총선 직전) 4월 8·9·10일에도 계속 생중계한다는 거 아닌가. 총선을 그렇게 치르겠다는 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고, 국민 선택권 침해라고 생각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지난 1월 10일 기자들과 문답에서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 원내에서 여러 가지로 신중하게 논의해볼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주도하는 특조위가 사실상 검찰 수준을 갖는 조사를 1년 6개월 동안 하면, 그 과정에서 대상자들은 승복하지 못하고 국론은 분열될 것”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관련기사 [단독] 검찰은 옳고 특조위는 틀리다? 한동훈 ‘이태원 특별법’ 발언 뜯어보니…). 이후 한 위원장은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고 있다.
정가 일각에선 이태원 특별법을 두고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과 차별화에 나설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을 경우 한 위원장이 마이웨이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에선 대통령실이 한동훈 위원장의 돌발적인 ‘김경률 비대위원 서울 마포을 출마’ 발언과 관련해 우려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 발언을 보고받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한 위원장은 최근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려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은 1월 18일 김 여사의 디올백 명품수수 의혹에 대해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한 위원장이 김 여사 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이름도 언급하지 못하던 한 위원장이 우려를 표명했으니 발전이라고 봐야 하느냐”며 “4월 총선에서 수도권 선거가 어렵다고 하니 겨우 내놓은 답변이다. 대선 때부터 지난 2년 넘게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이를 위해 민주당에서 국정조사 특검법 등을 내놓았다. 국민의 걱정이 신경 쓰인다면 한 위원장이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밝힐 민주당이 내놓은 법안에 협조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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