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이문2동 치안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아현동 우체국 앞 버스정류장. 인근에 방석집들이 자리하고 있어 하굣길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문제는 해가 떨어지고 하나 둘 빨간 조명이 켜지면서부터다.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는 오후 10시를 넘어서면 반라 차림의 여성들이 가게에 나타나는데 그 시간이 중·고등학생들의 귀가시간과 맞물리는 것. 이 때문에 매일 밤 홍등가 정류장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홍등가 여종업원이 뒤엉키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된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치안센터 바로 맞은편에 세워진 버스정류장. 주택가로 향하는 골목과 가까워 이용객이 적지 않은 편이다. 버스로 20여 분 떨어진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 아무개 양(18)도 이곳 정류장을 이용해 등하교를 한다. 하지만 야간자율학습을 하거나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오는 날에는 습관적으로 꼭 한 정거장 미리 내린다.
김 양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두고 10분이나 더 걸어야 하는 정류장에서 내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방석집이라 불리는 유흥업소 바로 앞에 정류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 어려움 없이 이용하지만 밤에는 사정이 다르다. 어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 앞을 지나치는데 가게 안팎으로 비치는 빨간 불빛과 그 안에 보이는 여종업원의 모습은 아직 고등학생인 김 양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김 양은 “사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첫날 버스를 타고 여기서 내렸는데 가게 안이 훤히 다보였다.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와도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뒤로는 저녁 늦게 버스를 타면 꼭 한 정거장 전에 내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양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한 정거장만 미리 내리면 방석집 행렬을 피해갈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다. 방석집이 문제의 정류장 앞뿐 아니라 그 다음 정류장(한국외대 방향)까지 양쪽으로 쭉 이어져 있어 그 사이에 집이 있는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난 13일 직접 버스정류장을 찾아보니 불편함을 호소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2~3년씩 이곳을 이용한 학생들은 방석집 때문에 겪은 아찔한 경험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들에게 코를 찌르는 술 냄새나 아침마다 보는 구토의 흔적은 애교 수준일 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다만 술 취한 사람들로 인해 자칫하다 범죄의 표적이 될까 버스에서 내릴 때면 늘 긴장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을 기다리고 있던 정 아무개 씨(48)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이미 술을 마시고 2차, 3차로 찾는 것 같았다. 때문에 가게를 나설 때면 이미 만취 상태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난봄 딸이 하교하는데 술 취한 남자가 집까지 따라와 기겁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중을 나온다. 조금만 아래에 버스정류장이 설치돼 있다면 이런 불편함은 겪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우체국 앞 버스정류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은 주택가가 밀집해있을 뿐 아니라 인근에 중고등학교도 위치하고 있어 늦은 시간까지 청소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방석집 20여 개가 나란히 붙어 있어 매일 밤 빨간 불빛 아래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14일 밤에도 교복을 입은 채 재빨리 방석집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수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말을 걸기 위해 기자가 다가가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여학생도 있었다. 남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방석집 반대편으로 뛰는 김 아무개 군(18)을 겨우 붙잡고서야 그 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김 군은 “친구들과 함께 다닐 때는 그러지 않는데 가끔 사복을 입고 혼자 버스에서 내릴 때면 날 잡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 싸게 잘해준다며 무작정 술집으로 질질 끌고 간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술집 종업원이더라. 5년째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홍등가 정류장을 이용해야 하는 학생들이 전국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과거 성매매까지 이뤄지던 유흥업소나 집창촌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겉모습만 방석집이나 일반 술집으로 바꿨을 뿐 그 속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부산 사상로 181번 길(왼쪽)과 창원 마산합포구 신포동의 한 버스정류장도 성매매 업소 인근에 설치돼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
지난 12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대학생 이 아무개 군(22)은 “버스를 기다리려고 서있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이 접근을 한다. 이곳에서는 ‘저 고등학생인데요’라는 말이 거절의 의미로 사용될 정도로 나이를 가리지 않고 호객 행위를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은 청소년통행금지지역으로 지정된 집창촌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설치돼 있다. 다른 곳에 비해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10m 남짓에 불과해 집창촌 골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볼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횡단보도를 이용하려면 집창촌을 반드시 거치게 돼 원치 않게 인근을 지나다녀야 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또 집창촌과 담벼락 하나를 두고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 학생들은 청소년통행금지지역 일부를 거쳐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밤 11시에 귀가하는 딸을 기다렸다가 같이 집으로 돌아오던 박 아무개 씨(46)는 “보다시피 이곳은 애들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단체로 항의를 해봤지만 한 번도 대책을 마련해 준 적이 없어 스스로 내 새끼들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박 씨의 말처럼 다른 지역 역시 이렇다 할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버스정류장 설치 기준으로 봤을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버스관리과 관계자는 “정류장 설치 및 이전 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 시민의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류장 간 간격이 너무 멀거나 가깝지 않게 조정한다. 또한 버스 승하차 시 교통 흐름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는 장소에 정류장를 설치하는데 유해시설과 관련한 규정은 없다. 선정된 지역에 유해시설이 있다고 정류장를 옮기는 일은 없다. 유해시설 허가 시에도 버스정류장의 유무는 고려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홍등가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을 이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앞서의 관계자는 “유해시설이 있다고 해서 정류장를 옮길 수는 없다. 그곳에도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있지 않은가. 정류장 이전은 승객의 수요가 변동됐다든지 공사로 인해 폐쇄되는 경우 등 극히 드물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대구 중구 도원동의 한 초등학교와 근접해 있는 집창촌(왼쪽)과 부산 구포역 인근 홍등가. |
초등학교와 1분 거리…“여긴 뭐하는 데에요?”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인해 한때 폐쇄까지 운운됐던 대구 중구 도원동의 집창촌의 불빛은 여전히 밝았다. 일명 자갈마당이라 불리는 이곳은 지난 1999년부터 청소년통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문제는 자갈마당이 초등학교와 인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 걸음으로도 불과 1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두고 집창촌과 초등학교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청소년통행금지구역 골목과 어린이보호구역이 맞닿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펼쳐진다.
초등학생들의 하교 후 해가 질 무렵에서야 집창촌의 영업이 시작된다지만 자갈마당의 붉은 빛을 본 학생은 한둘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인근에서 만난 초등학생 이 아무개 양(11)은 “입학하기 전부터 부모님께서 그쪽(자갈마당)으로는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다행히 집이 반대편이라 갈 일이 없는데 몇몇 친구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앞을 지나다녀야 해서 무섭다고 한다. 일찍 등교하거나 오후에 특별수업이 있는 날에는 불이 켜져 있을 때도 있어서 일부러 빙빙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 양의 친구도 “지난 겨울 등굣길에 1학년 동생이 길이 헷갈렸는지 그 골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어른들이 나가라며 소리를 질러 동생이 울면서 뛰어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후로는 근처만 지나가도 겁이 난다”고 전했다.
전남 순천시 동외동에도 난감한 곳에 대규모 유흥가가 자리하고 있다. 시립중앙도서관 바로 뒤편에 순천의 대표적 유흥가로 손꼽히는 가요주점 거리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말이 가요주점이지 호객행위뿐 아니라 성매매 알선도 이뤄지는 곳으로 여느 윤락가나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도 반라의 여성들이 찻길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평일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남성들을 붙잡고 적극적으로 가격흥정에 나서는 모습도 수차례 목격했다. 또한 도서관을 중심으로 현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러브모텔이 둘러싸여 있어 어른들마저도 그 앞을 지나다니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처럼 유해시설이 지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보호를 위한 시설은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을 알리는 안내판이 전부였다. 지역이 워낙 넓은 데다 업소 영업시간과 도서관을 찾는 청소년들의 통행시간이 겹쳐 제대로 보호가 이뤄질 수 없는 환경인 것. 도서관 앞에는 낯 뜨거운 호객 전단지가 널려있었으며 술 취한 남성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부둥켜 앉은 채 지나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사복 입은 고등학생이 종종 빨리 지름길로 유흥가 골목에 들어서도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만난 인근 중학교 남학생은 “학교와 가깝기 때문에 친구들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도서관 뒤편에 가요주점 거리가 있는 줄 알지만 워낙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별 다른 느낌은 없다. 가요주점이나 모텔이나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곳이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인 줄은 알지만 학교에서도 별다른 통제나 경고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부산 구포역 인근의 홍등가는 앞서 대구나 순천처럼 직접적으로 청소년시설과 마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하철역과 주택가를 연결하는 도로가 홍등가와 이어져 있어 늦은 저녁에도 그 길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우회하는 도로가 있긴 하지만 길이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 차라리 홍등가를 택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직접 현장을 찾았을 때도 고등학생 커플이 홍등가를 막 빠져나오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는 길이라던 최 아무개 군(18)은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늘 하교를 같이 한다. 이곳은 청소년통행금지지역이라는 안내판도 보이지 않아 자정이 넘은 시간이 아니면 중고생들도 거리낌 없이 다닌다. 가끔 낯 뜨거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술 취한 아저씨들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나마 사람이 있는 이 길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용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순찰을 위해 홍등가를 찾은 경찰은 “청소년들이 보이면 바로바로 다른 길로 안내하지만 그때뿐이다. 게다가 이곳은 통행금지지역도 아니라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위험에 노출된 것은 사실이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집창촌과 청소년시설이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딱히 규제 방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털어놨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