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을 받기까지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2011년 3월, 서울 광진경찰서는 A 씨의 구치소 동료로부터 여죄 가능성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A 씨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 명일동 살인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편지에는 당시 상황을 제법 상세히 설명하며 ‘걸리지 않은 사건’이라 쓰여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지만 A 씨는 쉽사리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씨름을 하다 겨우 자백을 받아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구체적인 진술을 듣기도 전에 갑작스레 A 씨가 세상을 떠나 또 다시 사건은 암초에 부딪치는 꼴이 된 것이다. 죽음 직전 A 씨는 “지인의 병든 어머니를 위해 과거 내가 살해했던 사람의 머리를 파내 끓여 먹인 적도 있다”는 엽기적인 사실도 털어놨지만 확인할 길이 막막했다.
경찰은 A 씨의 죽음 이후 자백을 토대로 공범 B 씨를 찾아갔으나 그 역시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마약중독 상태였던 B 씨는 1년이 넘도록 이를 핑계로 진술을 거부했던 것이다.
B 씨는 “당시 마약으로 인해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실제 저지른 일인지도 정확히 모르겠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끈질긴 경찰의 추궁 끝에 지난 5월 마침내 “내가 한 짓이 맞다”며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서울판 살인의 추억’ 6건 중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2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2008년 8월 복역 중이던 A 씨는 B 씨에게 “시간이 흐를수록 송파 일이 여러 형태로 기억나 괴롭다. 죗값을 치르고 있지만 사는 것도 지겹고 내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고 끝내고 싶다”며 심경을 고백한 편지를 썼는데 이 사실이 새어나가 추가 범죄가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두 사람의 편지에는 “우리가 죽인 사람이 알려지면 강호순이나 유영철 같은 애들은 게임이 안 된다”는 글귀도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잊힐 만하면 드러나는 여죄로 인해 시민들을 경악케 하는 두 사람의 ‘범죄일지’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 선후배 사이였던 두 사람은 마약을 접하면서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중독 증세가 심해지면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필로폰을 구입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에 나섰다. 환각상태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고 심지어 살인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먼저 피를 묻힌 쪽은 A 씨였다. 1995년 7월 전북 익산에서 환각상태로 차를 몰다 사망사고를 낸 것. A 씨는 신고는커녕 시신을 유기한 채 달아났고 이후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다. 결국 2001년에는 전북 익산의 한 서점에 들어가 점원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치는 사건을 저질렀고 그대로 서울로 달아났다.
한동안 얌전히 지내던 A 씨는 2004년 8월 16일 또 다시 마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이번엔 B 씨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첫 범행 대상은 이번 자백으로 드러난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살인 사건의 피해자 주부 김 아무개 씨(당시 49세)였다. 그들은 대낮에(오후 1시경) 김 씨의 아파트에 침입해 흉기로 김 씨를 살해한 뒤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대담함도 보였다.
김 씨를 살해한 3일 뒤인 19일, 이번엔 B 씨 혼자 범행에 나섰다. 이 역시 이번 자백으로 새롭게 드러난 사건으로 B 씨는 새벽 3시경 서울 강북구 미아동 주택 계단에서 귀가 중이던 채 아무개 씨(당시 21·여)를 뒤따라가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곧이어 B 씨는 600m 떨어진 주택가 골목에서 마주친 원 아무개 양(당시 19세)한테도 같은 수법으로 살해를 시도했다. 피해자 두 사람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채 씨는 1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으며 원 양 역시 3개월 동안 중태 상태였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두 사람의 살인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해 10월 A 씨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빌라에 가스검침원으로 위장해 침입, 주부 김 아무개 씨(당시 56세) 등 2명을 살해하고 달아난 것. 이 사건은 지난 2009년 경찰의 추가 수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범행은 계속됐다. 그해 12월에는 두 사람이 함께 송파구 석촌동의 한 전당포 건물에 침입해 주인 및 인근 비디오가게 점원 등 2명을 살해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경찰에 체포됐다.
공교롭게도 2004년에는 두 사람뿐 아니라 희대의 살인마로 꼽히는 정남규(2009년 교도소에서 자살) 역시 서울 서부권 일대에서 연쇄살인을 벌이고 다녔던 터라 시민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특히 비 오는 목요일마다 사건이 벌어져 ‘비 오는 목요 괴담’이 생겨났고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편 서울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두 사람이 교도소에서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B 씨를 대상으로 추가 범행 여부 수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현재 성동구치소에서 복역 중인 B 씨에 대해서는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추가 기소 의견을 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