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청장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책임 불명예 퇴임 불가피…‘백남기 사건’ 구은수 등 역대 청장 대부분 ‘새드 엔딩’
김 청장은 지난 10년여 동안 임명된 서울청장 가운데 가장 오래 재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명예 퇴임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일각에선 서울청장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는 설을 재확인했다는 말도 나온다. 역대 서울청장 대부분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마주해온 역사 때문이다.
#검찰이 시원섭섭한 까닭
김광호 서울청장을 기소한 검찰의 속내는 시원섭섭할 수밖에 없다. 2023년 1월 5일 경찰청 이태원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송치 결정 이후 1년가량 지체한 결정을 마침내 끝낸 점은 시원하다. 다만 불기소에 무게를 두고 처분을 미뤄온 배경을 돌이켜보면 영 개운하지 않을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김 청장의 운명은 롤러코스터에 올라 탄 듯했다. 초반에는 그도 경찰의 윗선이라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다 2023년 4월 서울서부지검은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하겠다고 대검찰청에 보고했다. 하지만 대검이 '보완수사'를 지시하며 반려했다. 그 뒤로는 서부지검 역시 불기소를 주로 검토했다고 알려졌다.
검찰이 김 청장을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회부한 자체도 불기소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많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은 진즉에 기소해 놓고 왜 김 청장만 수심위에 넘기냐는 지적이었다. 무엇보다 경찰청 특수본마저 제 식구인 김 청장을 송치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머뭇거리는 모양새 역시 몹시 어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심위도 김 청장 기소를 권고했다. 수심위 위원 15명 가운데 9명은 기소, 6명은 불기소 의견을 냈다고 한다. 검찰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 검찰이 수심위의 불기소 의견에도 기소한 사례는 있어도, 기소 의견에 불기소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명예는 고사하고 퇴직금도…
김 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다. 참사 이전 이태원 인파 운집에 따른 사고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나 적정한 관리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이다. 예컨대 김 청장은 참사 약 2주일 전인 2022년 10월 14일 내부 문건인 '핼러윈 데이를 앞둔 분위기 및 부담요인' 등도 직접 보고 받았다고 전해졌다.
이태원 참사 직후 검·경은 김 청장을 비롯한 공직의 여러 피의자들에게 '직무유기' 적용도 검토했다. 그러나 법리 검토 결과 재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커 포기했다. 대법원 판례 등은 직무유기를 '고의로' 직무를 회피하고자 업무를 게을리 하거나 하지 않은 경우로 정의하고 있어서다.
김 청장은 2024년을 끝으로 명예로운 정년퇴임이 목표였다. 주변에도 '경찰로서 맡은 바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실제 서울청장은 대개 1년을 못 채우거나, 간신히 넘겨 물러나는 관행이 이어져 왔는데 김 청장은 피의자 신분임에도 1년 7개월여 직무를 수행하는 등 정부 신임이 두터웠다.
그렇지만 그 뜻을 이루기는 어렵게 됐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공직자는 직위해제나 3개월 이상 대기발령 조치가 된다. 따라서 김 청장도 조만간 자리를 떠나야 한다. 김 청장 재판이 항소심 이상 진행된다면, 그는 제복을 벗고도 민간인 신분으로 법정 공방을 벌여 무죄를 입증해야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
재판에서 실형이 나오면 명예 이전에 현실적 걱정도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법 등에 따라 퇴직금 등 연금 수령이 제한되는 탓이다. 퇴직 이후에 선고가 나와도 공직 재직 당시 혐의라면 연금을 온전히 받을 수 없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당장 재판에 넘겨진 이상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퇴직금 및 기타 공무원 연금도 절반만 지급된다.
#서울청장들의 징크스
경찰 안팎에선 '서울청장의 저주'라는 말도 나온다. 그동안 서울청장들은 유독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김 청장만 하더라도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오래 재임한 서울청장으로만 기록될 수도 있었다. 2013년 이후부터 김 청장 이전까지 서울청장을 지낸 총 9명의 인사 가운데 재임 기간을 1년 이상 채운 사람은 고작 3명이다.
김 청장 외 1년 이상 재임한 인사는 구은수 전 서울청장이 2014년 9월부터 1년 3개월, 김정훈 전 서울청장이 2016년 9월부터 1년 3개월, 이용표 전 서울청장이 2019년 7월부터 1년 1개월 등이다. 서울청장은 늘 차기 경찰청장 후보 1순위로 거론돼 온 만큼 이들도 당시 경찰청장 하마평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실제 경찰청장이 된 인사는 2014년 강신명 청장 단 한 명에 그쳤다. 구은수 전 서울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재임 당시 IDS홀딩스에서 뇌물을 받고 특정 경찰관들을 승진 시켜준 혐의가 퇴임 후 뒤늦게 발각돼 구속 기소됐으며 유죄를 선고 받았다.
김정훈, 이용표 전 서울청장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승진하기에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김정훈 전 서울청장의 경우 임기 2년이 보장된 경찰청장과 하필 같은 시기에 취임해 기회를 엿볼 틈이 없었다. 당시 경찰청장은 검정고시 및 순경 출신으로 치안총감까지 오른 이철성 전 청장으로 여론의 커다란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용표 전 서울청장은 재임 꼭 1년을 맞은 2020년 8월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의 퇴임이 예정돼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실제 가장 유력한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러나 '족보가 꼬인다'는 등의 문제로 꿈에 그쳐야 했다. 그가 경찰대 3기라 4기 민갑룡 경찰청장보다 한 기수 선배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난 10년 동안의 서울청장 가운데 최단 기간 재임한 인사는 2018년 12월부터 약 7개월 일한 원경환 전 서울청장이다. 취임부터 퇴임까지 버닝썬 논란이 전부였다. 경찰과 강남 유흥업소 유착 의혹에도 골머리를 앓았다. 퇴직 후 대한석탄공사 사장에 올랐으나 2023년 12월 공기업 대표 최초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이 밖에 2015년 12월부터 약 9개월 재임한 이상원 전 서울청장도 퇴임 후 4년여가 지난 2019년 난데없이 빅뱅 승리가 말한 '경찰총장'으로 오해를 받아 해명을 반복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2017년 12월 취임한 이주민 전 서울청장이 1년을 채울 뻔했으나 '드루킹 부실수사' 논란이 줄곧 따라다니며 11개월 만에 제복을 벗었다.
경찰 한 관계자는 "정치와 재계 및 연예인 등 사회에서 주목 받는 수사를 주로 서울청이 하다 보니 말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통상 유능한 치안정감은 '경찰청장 승진'이나 '서울청장 전보' 기로에 놓이는데,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둘의 재임부터 퇴임 이후까지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말했다.
다음 서울청장이 될 수 있는 치안정감은 현재 총 6명이다. 조지호 경찰청 차장, 우철문 부산경찰청장, 홍기현 경기남부경찰청장, 김희중 인천경찰청장,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김수환 경찰대학장 등이다. 단, 김희중 인천청장과 김수환 경찰대학장은 현재 직을 수행한 지 불과 3개월밖에 안 돼 인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검찰은 김 청장 기소를 계기로 그동안 계류해 온 하위직 경찰관들도 줄줄이 재판에 넘겼다. 서울서부지검은 1월 22일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참사 당일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더해 112시스템에 하지도 않은 출동을 했다고 허위 입력하여 공전자기록등위작 등의 혐의를 받는다.
다만 이들 팀장들은 참사 당시 적극적으로 환자 이송과 피해자 심폐소생술(CPR) 등을 도운 모습이 CC(폐쇄회로)TV에 담겨 있다. 112시스템 허위 기록에 대해서는 "신고가 쏟아져 서버가 마비돼 놓친 부분들이 '출동'으로 자동 입력됐다"고 항변한다. 이런 이유로 전국의 일선 경찰관들이 구제 운동을 벌여온 온 만큼 재판 결과에 이목이 쏠린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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