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동의율’ 요건도 함께 제시해 혼란 가중 가능성…“초고속 심의 제대로 될지 의문” 지적도
재임 4년 차를 맞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관내 재개발 사업에 ‘물길’을 터주기 위해 각종 규제 완화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비 활성화’ 기조 덕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오 시장은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직후 전임 시장이 재개발 억제를 위해 박아두었던 각종 ‘대못’을 뽑아치웠다. 재개발 허용 기준을 엄격히 높여둔 ‘주거정비지수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이후 오 시장은 재개발 초기 단계인 ‘정비구역 지정’의 절차와 요건을 대폭 간소화한 ‘패스트트랙’ 성격으로, 이른바 ‘신속통합기획’ 모델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서울시는 이후 재정비 사업의 세부 단계마다 크고 작은 장애물을 드러내고, 넘기 힘든 문턱은 대폭 낮추는 방향의 시책을 계속 ‘업데이트’해나가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정비사업에서 ‘몸통’으로 인식되는 조합설립~사업시행인가 구간의 소요 시간을 통상 ‘2년’에서 ‘6개월’로 대폭 줄이겠다며 관련 시책을 내놨다.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기 위해 차례로 거쳐야 하는 △교통영향평가 △건축·경관심의 △환경·교육영향평가 △정비계획심의 등 각종 심의를 하나의 기구에서 ‘통합’ 심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각 심의 단계를 넘다가 중간에 가로막혀 다음 심의까지 줄줄이 밀릴 수 있는 소지를 제거한 것으로 상당한 ‘파격’ 조치에 속한다.
이 같은 시책들이 서울시내 재개발 추진 구역들의 ‘초기 작업’ 속도를 전반적으로 높여줄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이전 보다 ‘쉬워진 출항’이 오히려 ‘독’이 돼 본 항해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나 내부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주요 추진 단계에서 요구되는 주민 동의율 요건이 점차 낮아지면서 각 구역 사업에 실리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권위가 약화되고, 이는 구성원 간 찬반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현행 신속통합기획 모델은 ‘주민 30%’ 동의를 확보하면 서울시에 사업 신청을 접수할 수 있고, ‘추진위원회’ 구성 요건도 ‘주민 50% 이상 동의’로 비교적 문턱이 낮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보통 재정비 사업이 70~80%의 동의를 받고 시작하더라도 나중에 소수가 제기한 소송에 걸려 중지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반대론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는 사업장도 어려운 상황을 맞는데 그런 기반이 아예 깨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업장은 추진 과정이 굉장히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합설립 이후 밟아야 할 각종 심의 절차를 6개월에 통합 처리하기로 한 최근 방침도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권일 팀장은 “6개월이란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든 심의를 마쳐 결론을 내줘야 하는 것인데 과연 그 6개월 안에 모든 심의가 완성도 있게 진행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면 좀 불안하고 리스크가 있어 보인다”며 “신축 아파트 공급 계획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몰라도 서울시의 마음이 좀 급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가 정비계획 주민 동의율 요건을 낮추면서 동시에 재검토나 취소 신청이 가능한 ‘반대 동의율’ 요건을 함께 제시한 조치도 현장에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시는 구역 내 정비계획에 대해 ‘재검토’ 신청을 낼 수 있는 요건으로 ‘토지등소유자 20% 이상 반대’, ‘취소’ 신청을 낼 수 있는 요건으로 ‘25% 이상 반대(최종 결정은 구청장)’ 기준을 새로 마련한 상태다.
보다 명확한 수치 기준을 둬 현장의 갈등 소지를 최소화한다는 서울시의 행정 의도가 읽히지만, ‘20~25%’ 기준선 자체가 너무 낮아 구역마다 취소 신청이 쉽게 나오고, 결국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비사업컨설팅업체 ‘엠아이하우징’ 유창호 이사는 “25% 요건은 비교적 쉽게 맞출 수 있는 수준이지 않나”라며 “이렇게 되면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이 결코 ‘쉽게’ 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사실상 ‘반대 동의율’로 기능할 정비계획 취소 신청 요건이 모든 사업 구역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부터 문제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개별 구역마다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판단 성향이 다르고, 특히 다세대·다가구·상가 구성 비율이 사업 선호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러한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한 가지 요건이 적용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내 정비사업에 정통한 임종욱 프라임부동산자산관리 대표(도시계획부동산학 박사)는 ‘일요신문i’에 “보통 임대 수익 유지를 중요시하는 다가구나 상가 건물이 많을수록 재개발 반대 목소리가 높고, 다세대(빌라·연립주택) 비율이 높을수록 반대 목소리가 적은 편인데 개별 구역의 이런 특수성을 무시한 채 무조건 20~25%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형평성에 맞지 않다”면서 “구역에 따라 정비 계획 취소 신청 요건을 달리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 추진위원장인 B 씨는 “재개발 추진이 아무리 순조롭게 진행되는 현장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꼭 포함돼 있는데, 이 같은 기준이 설정되면 평소 반대했던 사람들은 더욱 목소리가 커질 수 있어 취소 신청 요건은 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개인 의견을 전했다. 이어 “서울시나 자치구가 시민이 낸 세금 예산을 써가며 각 구역의 정비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사업이 다시 쉽게 취소되도록 한다면 이는 곧 예산 낭비 행정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 서울시 주택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근본적으로 각 구역 재개발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지원하기 위한 목적의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며 더 구체적인 답변은 아꼈다.
현재 서울에선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총 32개 구역에서 공공재개발, 52개 구역에서 신속통합기획(민간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중소규모 재개발로 별도 관리 중인 ‘모아타운 재개발’은 지금까지 총 82곳의 대상지가 선정된 상태로 시는 총 100곳까지 선정할 방침을 예고한 상태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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