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희가 6촌 외할아버지 임관호 씨와 만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제공=우먼센스 |
‘부모가 비참하게 죽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나는 위로의 말도 못한 채 그냥 있었고 그녀는 읽던 책을 덮고 그대로 앉아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며칠 전 김현희가 해준 꿈 얘기가 기억났다. 그녀가 꿈에 엄마를 봤는데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고 한국 전통 혼례복 같은 것을 입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른들이 말하는 꿈 해몽에 의하면 그런 옷은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죽을 때 꾸는 꿈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언니, 이게 무슨 꿈일까요?”
김현희가 나에게 물었다.
“글쎄 좋은 일이 있으려나?”
나는 김현희에게 불길한 꿈이라는 말을 못하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어쩌면 김현희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딸에게 나타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현희가 남한에 와서 받은 혜택 중 가장 좋아한 것 중의 하나가 치과치료이다. 그녀의 건강검진을 해보니 치아가 매우 안 좋았다. 충치도 많았고 무엇보다 앞니가 약간 어긋나게 튀어나왔고 그 사이에 약간 검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 본인도 그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 보안이 될 만한 치과가 없을까?”
김현희의 치과 치료를 고뇌하고 있을 때 안기부 간부가 여의도에 소재한 치과를 소개해 주었다. 의사는 과거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치의로 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치과에서 김현희를 치료하게 했다.
“아파서 어떻게 치료를 해요?”
치과 치료는 누구나 불편해 한다. 김현희도 처음에는 아플까봐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치료도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이 걸린다.
“괜찮아. 아이들도 다 치료를 하는데 무서워할 것 없어.”
나는 김현희를 달래서 치과 치료를 받게 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충치 치료를 마치고 앞니를 깨끗하게 다듬어서 검은 부분도 없애고 똑바로 교정이 되자 그녀는 안가에 와서도 신기하다며 몇 번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좋아했다.
“북한은 의술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어깨에 흉터가 있는데 수술을 잘 못해서 흉터가 더 커진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지.”
“남한에서는 어깨 흉터를 깨끗하게 고칠 수 있지 않아요?”
김현희는 슬며시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안기부가 김현희의 어깨 흉터까지 치료해 줄 수는 없었다.
김현희가 여자이기 때문에 미용실도 정기적으로 다녀야 했다. 김현희는 보호와 감시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일반 미용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보안이 지켜져야 해서 안기부 직원의 부인이 마포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곳을 이용했다. 김현희의 이미지가 있어서 머리 스타일을 크게 고치지는 못하고 늘 하는 스타일로 정리만 하거나 가끔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는 정도였다.
“머리를 다르게 하면 안돼요?”
김현희는 늘 자신의 머리 스타일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남한 여자들처럼 웨이브 파마를 하고 싶어요.”
김현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한국 여자들의 머리를 살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러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싶어했다. 김현희가 아무리 안기부의 보호와 감시를 받는다고 해도 머리까지 제약을 받는 것은 잔인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웨이브 파마를 하게 했다. 그러나 막상 파마를 하고 나자 워낙 머리숱이 많고 앞이마가 좁아 그야말로 머리만 한 소쿠리가 되어 무척 답답해 보였다.
“이게 뭐야? 당장 바꿔.”
김현희의 변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과장에게 보이니 당장 바꾸라고 지시가 내려와 웨이브를 펴는 파마를 다시 해야 했다. 또 이미 김현희가 대중적인 인물이 된 이상 관리 차원에서 이곳에서 피부 마사지도 받았는데 그녀도 마사지 받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은 한 남자수사관이 부항에 대한 책을 가져다주며 읽어보라고 하자 며칠 동안 그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언니 부항이 몸에 좋다고 하는데 우리 부항 사자요.”
김현희가 나를 졸랐다. 나는 김현희가 원하는 대로 동대문 근처의 의료기 상점에서 부항기를 사가지고 왔다. 우리는 책과 열심히 대조해 가며 등에 커다란 부항자국을 내며 서로 부항을 떠 주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하다 보니 비위생적이라고 느꼈는지 어느 날은 플라스틱 부항을 깨끗이 씻어 식기건조대에 넣고 말렸다.
“언니, 빨리 와보시라요.”
몇 시간이 지난 뒤 김현희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왜 그래?”
내가 놀라서 주방으로 달려가자 김현희가 녹아 쪼그라든 부항을 보여주었다.
“이게 왜 이래요?”
나는 김현희가 들고 있는 부항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김현희도 한바탕 웃고 말았다.
▲ 신상옥 감독의 영화 <마유미>. 신 감독은 촬영 전 김현희를 직접 만났다. |
그 사실이 알려지자 김현희가 놀라서 말했다.
“그들을 어떻게 알아?”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서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불가사리> 같은 영화를 만들었어요.”
“만나지는 못했어?”
“그 사람들을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누군데?”
김현희의 말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공작원으로 선발되었을 당시 ‘당에서 시키는 일을 목숨 바쳐 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고 담당부부장이 물었어요.”
김현희는 자신을 담당했던 부부장이었던 강해룡을 두 달에 한 번씩 만났는데 최은희와 신상옥 납치를 자신이 직접 지휘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신상옥 감독은 <마유미>를 촬영하기 전에 김현희를 만나고 싶어했다. 안기부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만나게 해주었다. 신상옥 감독은 자신의 영화 주인공인 김현희가 어떤 여인인지 직접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김현희를 만난 신상옥 감독은 빠르게 영화를 촬영했고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다.
김현희는 종교인이 되었다. 김현희가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며 KAL기를 폭파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자백하고 기자회견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기부장이 안무혁 씨에서 박세직 씨로 바뀌었다. 박세직 씨는 여의도의 한 침례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 신앙심이 독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북한의 꼭두각시로 살아온 김현희를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김현희에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를 소개시켜 주면서 성경 공부를 해보라고 했다. 종교를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처음에는 그저 안기부에서 시키니까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김현희에게 종교 얘기를 하니 북한에는 종교가 없다고 탐탁지 않아 했다.
“기독교에서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주라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부르주아 반동들이 인민들을 착취하기 위한 것으로 인민들이 착취를 당하면서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한 아편 같은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요즘 세상에 신이 어디 있습니까? 기독교는 타락했습니다.”
“그럼 불교는?”
“불교는 옛날부터 타락하여 중놈들이 아래 세상에서 자식을 낳아 놓고 자기 자식을 구별하기 위해 색동옷을 입힌 것이 색동옷의 유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것들을 왜 믿으라고 합니까?”
김현희는 처음에 종교를 거부했다.
성경공부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찾아가서 했는데 한 번 두 번 회를 거듭하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김현희는 그 구절에 솔깃했던 것 같다. 게다가 목사님이 자상하여 김현희에게 늘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써 주자 더욱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찬송가가 그녀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했다. 그녀는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신앙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
김현희의 간증 내용은 어머니가 여학교 시절 기독교 학교인 호수돈 여고를 나왔고, 자기가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릴 것을 마침 옆집에 놀러온 의사 친척이 고쳐주어 어머니가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기독교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