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권력-미래권력 충돌에 현역들 눈치 보기…강남·영남 공천 두고 ‘2차전’ 불가피할 전망
#유례없는 권력 전이 현상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1월 26일 기준 고작 2명이다. 민주당에서 11명이 나온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3선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의 불출마 발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연이어 바통을 받을 것으로 점쳐졌었다. 하지만 초선 김웅 의원(서울 송파갑)만 추가로 불출마를 선언했을 뿐 그 이후로는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 나올 기미조차 없어 보인다. 심지어 현역 의원들이 잘 하지 않았던 예비후보 등록까지 앞 다퉈 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국민의힘 권력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예전엔 확실한 ‘원톱’이 여권에 존재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현직 대통령 임기 초반인데도 불구, 유례없이 권력 전이 현상에 따른 권력 분점이 일어났다. 이는 당내의 극심한 눈치 보기로 이어졌다. 임기가 2년도 지나지 않은 현직 대통령이 있는데도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힘이 급부상, 향후 공천 기상도를 도무지 점치기가 불가능해지면서 현역 의원들이 쉽게 용퇴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집과 비교해보면 국민의힘에서 왜 현역들의 불출마 선언이 일어나지 않는지 잘 알 수 있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현재권력이자 미래권력이다. 이 대표를 위협할 경쟁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곧 공천이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주당에서 현역 의원 용퇴가 많고, 국민의힘의 경우 눈치 보기 심화로 인해 불출마 선언을 하는 현역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그렇다. 2012년 총선 때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선 불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현재권력이 임기 후반을 맞아 급격하게 기울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미래권력이 등판, 권력지형이 확실했던 시기였다. 이 여파로 당시 여권에서는 ‘공천 받을 사람’과 ‘못 받을 사람’의 선 긋기가 쉬워졌고, 불출마 선언이 쏟아져 나왔다.
박 비대위원장 등판이 기정사실화됐던 2011년 12월 11일 이명박 대통령 친형이자 정권 최고 실세 이상득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여 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공식 출범한 이후 여당 내에서는 본격적으로 불출마 도미노가 일어났다. 5선의 김형오 의원, 초선 홍정욱 의원, 3선 박진 의원에다 초선 장제원 의원까지 줄을 이어 불출마 선언을 했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친박 현기환 의원도 당시 이 대열에 가세했다. 보수 텃밭 대구에서도 친박 중진 이해봉 의원이 2012년 1월이 시작되자마자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러한 불출마 러시 속에 자신이 4선을 했던 대구 달성에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한 뒤, 공천 그립을 강하게 쥐고 50%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치의 현역 의원 물갈이를 이뤄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최근 여권의 상황에 대해 몹시 우려했다.
“우리 헌정사를 통틀어볼 때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권에서 이렇게 권력 분점 사태가 일어난 사례는 없었다. 완전히 안갯속으로 빠지다 보니 불출마 선언이라는 당내 자생적 1차 교통정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면 본격 공천 국면에서 큰 다툼이 일어날 수 있고 무소속 출마도 잇따를 것이다. 양당 체제라면 혼돈의 여파가 덜하지만, 제3지대가 세를 만들고 있어 표의 분산이 이뤄지면 여당에 타격이 갈 수 있다.”
#현재·미래권력의 공천 싸움
역대 정부에서 그랬듯 이번 총선에서도 다수의 대통령실 출신들이 국회 문을 노크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원내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게 명분이고, 정치공학적으로는 현재권력인 대통령 힘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총선 출마 결심을 굳힌 대통령실 전직 참모들은 줄잡아 30명이 넘는다. 수석비서관급에서는 강승규 전 시민사회수석(충남 홍성·예산)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은혜 전 홍보수석은 경기 성남을에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안상훈 전 사회수석도 서울 강남 출마가 거론된다. 비서관급을 살펴보면 서승우 전 자치행정비서관이 충북 청주 청원, 전희경 전 정무1비서관도 험지로 꼽히는 경기 의정부갑 출마를 준비 중이다.
비서관급에서는 국민의힘 당선 가능성이 높은 텃밭 영남 출마자가 다수 있다. 전광삼 전 시민소통비서관은 대구 북구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경북 구미을을 두고는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과 윤석열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이 나란히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은 부산 해운대갑에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손자이기도 한 김인규 전 정무1비서관실 행정관은 부산 서구·동구에, 배철순 전 정무2비서관실 행정관은 경남 창원 의창구에, 조지연 전 국정메시지비서관실 행정관은 경북 경산에 나간다. 용산 참모뿐 아니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포함하면 이른바 ‘윤심’을 업은 출마자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친윤’을 넘어 ‘찐윤’으로까지 표현되는 이철규 의원이 당 인재영입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을 겸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번 총선 공천에 대한 현재권력의 지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 의원이 용산의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다.
정치 신인이자 당내에 지분이 전혀 없는 한동훈 위원장도 미래 권력으로서 자신의 세력을 늘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용산과의 갈등 사태가 표면화, 사퇴 압력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던 한 위원장은 1월 2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거듭 천명하면서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당의 간판으로서의 위치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 위원장 ‘권력 의지’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당내에 친 ‘한동훈 세력’을 다수 심어 원내에 진입시켜야 한다. 한 위원장은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민주당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의 지역구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히면서 당 안팎의 낙하산 공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 잠룡들 대다수가 원외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내내력 조기 규합은 대권 후보로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는 길일 수 있다.
#전략공천 확대 뇌관 떠올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1월 24일 전략공천 지역구 선정 기준을 공개했다. 이 기준을 볼 때 서울 강남권과 영남권 등 국민의힘 텃밭에서 전략공천이 대거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때문에 이 기준이 나오자 현역 의원들은 물론, 다수의 후보자들은 “당내 세력 구도에 편승한 내리꽂기가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일제히 쏟아내고 있다.
공관위가 발표한 우선추천(전략공천) 대상 지역 선정 기준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현역 의원 또는 직전 당협위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지역구는 전략공천이 가능하다는 대목이다. 공관위가 발표한 기준은 대부분 당헌·당규에 포함돼 있던 내용이었지만, 현역 의원이나 직전 당협위원장이 불출마한 지역구에 전략공천이 가능하게 한 부분은 새롭게 포함된 것이다. 이는 결국 텃밭에 전략공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걸로 의원들은 받아들인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현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이 해당 지역구 또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서울 송파갑(김웅 의원) △부산 중·영도(황보승희 의원) △부산 사상(장제원 의원) △부산 해운대갑(하태경 의원) 등에 전략공천이 가능하다. 실제로 부산 해운대갑은 용산 출신인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예비후보로 나와 있는 등 벌써부터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공관위가 발표한 전략공천 가능한 지역구 기준에는 최근 총선(재보궐 선거 포함)에서 3연속 패한 지역구,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지역구도 포함돼 있다. 이들 지역구에는 한동훈 지도부가 데려오는 ‘새 인재’로 대거 충원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전략공천 기준에 맞춰보면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출마 사실을 직접 공개했던 서울 마포을,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맞대결을 예고한 인천 계양을도 전략공천이 가능하다.
현역 국회의원 공천배제 기준(심사평가 하위 10%)과 경선관리 지침(가감점제도) 등 정량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던 1월 16일 첫 발표와 달리 1월 24일 두 번째 공천 기준 발표부터는 공관위 재량에 대한 내용이 대거 포함되는 등 공천규칙이 더욱 모호해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전략공천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대 100곳 이상이 포함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여러 차례 출마했던 한 총선 후보자는 “역대 공천심사가 모두 그랬지만 이번에도 정성적 평가항목이 또다시 너무 많아지고 있다”며 “여권 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 양상까지 겹치면서 공천을 둘러싼 대혼란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아까운 인재들이 탈락하고, 이에 뒤따라 무소속 출마까지 이어질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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