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바람으로 온다. 바람은 잠들었던 생명을 깨운다. 여기저기서 생명의 모습이 나타난다. 지천으로 볼거리가 많아진다. 많은 볼거리는 마음을 두드린다. 두드려서 열린 마음으로부터 바람이 일어난다. 봄바람이다. 마음을 싣고 오는 바람이다. 어떤 마음일까. 사랑을 담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시적 정취로 풀어내는 작가가 정회윤이다. 바람을 화폭에 담기 위해 그가 선택한 소재는 버드나무다. 강변에 흐드러진 버드나무 가지에서 바람을 만났다.
정회윤이 표현하는 바람은 살집이 두둑한 데다가 나무의 향기까지 진하게 묻어난다. 농도 짙은 바람이다. 수많은 버드나무 가지는 저마다의 바람을 담고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몸집이 굵은 나무가 보인다.
그러면 그의 그림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기서 바람은 부드럽게 불고 있다. 순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거대한 역사를 시작하는 바람이다. 세상 만물의 생명을 깨우기 때문이다.
움찔거리는 생명의 기운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농부는 땅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축축한 기운에서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다. 물질하는 이들은 바다의 색깔에서. 도시인들은 자신의 직업에서.
이처럼 다양한 바람의 모습을 추측하게 되는 이유는 작가가 표현한 버드나무 가지의 유려한 선들이 오묘한 빛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회윤은 버드나무를 그리지 않는다. 전통 옻칠과 나전 공예 기법으로 만들어낸다. 부드럽게 춤추는 나뭇가지가 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갯빛을 보여주는 것은 전통 나전칠기 공예 기법 때문이다. 그래서 나뭇가지는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보여준다. 마치 바람에 출렁이는 것처럼.
작가는 캔버스나 나무 패널에 고려 때부터 전승돼온 옻칠 기법 그대로 색칠을 해서 바탕을 만든다. 전통 채색 안료를 옻과 혼합해 원하는 색을 만들어 강변이나 하늘과 같은 배경 이미지를 구성한다. 옻으로 만든 색채는 미묘한 변화와 함께 침잠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데, 이 때문에 추상성을 띤 배경이 한없이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나전을 원하는 크기로 자르고 붙여 나뭇가지를 만든다. 이런 독특한 방법으로 바람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때문에 그의 작업이 주목 받는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동양의 찬란한 문화유산에 대한 긍지에서 전통 나전칠기 기법을 배우게 됐다”는 정회윤은 “전통 기법을 계승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를 현대 회화 기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작가로 살아가는 나의 목표”라고 말한다.
전통 옻칠과 나전 기법에 관심을 갖고 이를 자신의 작업에 접목하려는 작가들이 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자신만의 회화 언어로 발현해낸 작가는 드물다. 이 지점에서 만나는 정회윤의 회화가 더욱 소중해 보인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