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여전한데다 기업들 실적도 아쉬워 ‘부정적 시선’…하반기 경기 회복 국면 속 반전 가능성
조 원 단위의 기업가치가 예상되는 에이피알은 물론,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케이뱅크 등이 IPO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에이피알과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부터 IPO 절차에 돌입했고, 케이뱅크도 1월 18일 이사회에서 IPO 추진 안건을 의결했다. SSG닷컴, HD현대마린솔루션, LG CNS, CJ올리브영, 롯데글로벌로지스, SK에코플랜트, 컬리 등도 잠재적 IPO 후보군으로 언급된다.
소위 ‘IPO 대어’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IPO 추진 기업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잡음과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 에이피알은 당초 지난 1월 22~26일 수요예측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2월 2~8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일반투자자의 청약일도 2월 1일에서 2월 14일로 연기됐다. 이는 금융당국이 에이피알에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을 보냈기 때문이다. 에이피알이 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한 것이다. 에이피알은 일정이 늦어졌을 뿐 기업가치에는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비바리퍼블리카와 케이뱅크는 최근 수익성이 좋지 않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비바리퍼블리카는 2022년 1~3분기 영업손실 1672억 원을 거둔 데 이어 2023년 1~3분기에도 영업손실 1848억 원을 기록하는 등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같은 기간 케이뱅크의 영업이익은 787억 원에서 436억 원으로 44.58%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제4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이 현실화되면 은행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치권에서 시중은행의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잠재적 IPO 후보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SSG닷컴, CJ올리브영 등은 쿠팡 등 이커머스와 중국 업체들의 견제를 받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해외직구 인프라 확충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고, SK에코플랜트는 최근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외부 환경와 별개로 일부 기업은 IPO를 진행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올해 안에 IPO를 성공하지 못하면 2대주주인 메디치인베스트먼트가 롯데지주에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HD마린솔루션은 2021년 KKR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당시 ‘5년 내 IPO’를 약속했다. CJ올리브영의 경우 당장 IPO가 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다. CJ그룹 오너 일가의 CJ올리브영 지분율은 25.66%에 달한다. 향후 CJ그룹 지분 승계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기업으로 꼽힌다.
문제는 최근 국내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공모주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지속적으로 IPO 시장 전체를 데울 정도는 아니다. 우진엔텍은 IPO 첫날인 지난 1월 24일 공모가(5300원)의 4배에 달하는 2만 1200원으로 장을 마감했고, 다음날인 1월 25일에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진엔텍은 1월 29일 하한가로 장을 마쳤고, 이후로도 주가는 지속 하락 중이다. 지난 1월 25일 상장한 HB인베스트먼트나 1월 26일 상장한 현대힘스도 IPO 첫날에는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IPO 최대어로 꼽혔던 두산로보틱스와 에코프로머티리얼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산로보틱스와 에코프로머티리얼스의 공모가는 각각 2만 6000원, 3만 6200원이었다.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올 1월 한때 12만 4500원까지 상승했고, 에코프로머티리얼스 역시 24만 4000원까지 치솟았다. 두 회사 모두 공모가 대비 상당한 주가 상승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1월 중순 들어 두 회사의 주가는 하락세에 있다.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현재 6만 원대, 에코프로머티리얼스는 15만 원 전후에 머물고 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일부 종목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나타난 고평가 논란과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의 급격한 변화 등 여전히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공모주에 대한 과도한 관심 증가는 한정된 공모주 수량으로 인해 과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고평가된 일부 공모주가 등장해 공모주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던 경험을 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주가가 단기간 내 상승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3년 11월부터 2023년 12월 말까지 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던 코스피가 2024년 들어 3주 연속 급락세를 이어갔다”며 “추세 반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고금리 시대에서는 주식 투자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은이 공개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 1월 11일 금통위 회의에서 금통위 위원 6명 전원이 기준금리 동결을 주장했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주장도 나왔다. 금통위 회의에서 한 위원은 “고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부분 나라의 물가상승률은 고점 대비 상당 폭 낮아졌다”면서도 “양호한 고용 상황, 인플레이션 지속성 등으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하기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하반기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기업들은 IPO 시점을 올해 하반기에 맞추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경민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금리인하 시점과 경기모멘텀 회복 국면이 맞물릴 가능성 높다고 판단되며 증시에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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