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법 위반 행정처분 120건, 최근 노동자 사망 중대재해…영풍 측 “재발 방지 철저…공장 폐쇄는 불가능”
직원들의 불안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사업장 폐쇄를 촉구하는 여론 속에서 크고 작은 행정처분이 반복되며 불안정한 상태로 일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회사의 주요 임원들이 중대재해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되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노동자도 지역주민도 환경과 건강, 경제와 일자리의 딜레마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세계 3위 아연공장 '빛과 그림자'
경북 봉화군 석포리 일대에는 약 18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카페 한 곳 찾기 힘든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이처럼 인구가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체 주민의 약 80%가 석포제련소 직원과 가족들이다.
재계 서열 20위권 대기업 (주)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는 생산량 세계 3위 규모의 아연공장이다. (주)영풍의 다른 계열사인 '영풍문고'보다 인지도는 덜하지만 한 해 매출액이 1조 원이 넘어 규모로는 비교 불가다.
하지만 10년째 존폐 기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중금속 과다 배출 등의 지적이 이어지다 2014년 한정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공론화하며 사태가 커졌다.
그 뒤로 영풍 석포제련소는 2023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정감사에 불려나와 같은 약속을 반복했다. "중금속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낙동강 오염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공언이었다.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대기환경보전법과 토양환경보전법 등 환경 관련법 위반으로 받은 행정처분만 약 120건에 달한다. 특히 2018년에는 폐수처리시설 부적정 운영으로 조업정지 20일 처분까지 받았다. 사측은 행정소송으로 맞섰으나 2021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10일 조업정지가 확정됐다.
조업정지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9년에도 환경부 특별점검에서 폐수 유출 등이 적발돼 조업정지 60일 처분을 받았다. 석포제련소는 이번에도 행정소송에 나섰지만 2022년 6월 대구지방법원은 환경부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석포제련소의 불복으로 항소심이 이뤄지고 있다.
#"낙동강 오염 막기 위해 공장 문 닫아야"
석포제련소의 악재는 끝이 없다. 2023년 12월 6일 탱크 모터 교체 작업 과정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났다. 이에 하청업체 직원 2명과 원청 소속 근로자 2명이 복통과 호흡곤란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고 사흘 뒤인 9일 하청업체 60대 근로자 1명이 끝내 숨졌다.
사망한 노동자의 몸에서는 1급 발암물질 비소가 치사량(0.3ppm)의 6배를 넘는 2ppm 검출됐다. 다른 근로자 3명도 비소 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박영민 (주)영풍 대표이사를 입건했다. 배상윤 석포제련소장과 숨진 근로자가 속한 하청업체의 대표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2024년 1월 4일에는 경북경찰청과 고용노동부가 서울 강남구 영풍 본사 사무실과 봉화군 석포제련소 현장 사무실, 하청 사무실 등 3곳의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어 1월 17일 대구지방검찰청도 석포제련소 압수수색에 나섰다.
공장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환경운동연합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각각 논평과 서울 광화문 집회 등을 통해 "석포제련소에서는 1997년 이후 8건의 사고와 1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며 "노동자 생명 보호와 인근 낙동강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조사 결과 '그때그때 달라요'
일련의 상황은 역대 정부가 진행한 석포제련소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힌다. 공장 일대 환경과 주민 건강 등이 좋지 않은 점만큼은 분명하지만, 그 원인을 놓고는 분명하고 일관된 결론을 내놓지 못해온 탓이다.
예컨대 석포제련소 문제가 처음 공론화되자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은 2015년 6월부터 약 1년 6개월 동안 석포제련소 반경 20km 대상 환경영향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석포제련소 일대 토양은 매우 오염된 상태였다. 단, 원인의 90%가 자연기원이라고 나왔다. 즉 석포제련소 때문이 아니라 원래 오염된 땅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22년 5월 환경부가 낙동강 상류(석포제련소~안동댐) 환경관리 개선대책 일환으로 내놓은 조사 결과는 달랐다. 안동댐 상류 퇴적물의 카드뮴 오염이 매우 심했고 원인의 최대 95%가 석포제련소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일대 지하수와 토양의 오염을 심화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이 밖에도 산학협력단과 환경 연구기관 등이 10년 동안 석포제련소 관련 조사에 나선 결과가 수십여 개 존재한다. 어느 정부에서 진행했는지 혹은 조사기관 성향이 어떤지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또 석포제련소에 불리한 결과가 나와도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환경 분야 특성상 원인과 현상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석포제련소 인근에는 거대한 폐광산도 있다. 일대에서 중금속 등이 검출돼도 발원지가 석포제련소인지 폐광산인지 따져보자는 이의제기가 늘 따라다녔다.
결국 공장 폐쇄를 주장하는 여론과 이를 방어하는 석포제련소가 저마다 유리한 수치나 결과만 인용해 각자의 입장을 피력하는 양상을 되풀이해 왔다.
그나마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떠올랐던 석포제련소 인근 안동댐의 '왜가리 떼죽음' 원인은 천적인 중대백로와의 생존경쟁 때문으로 밝혀졌다. 환경부 의뢰로 조사에 나선 경북대 수의대 이영주 교수팀이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실태조사를 벌여 2020년 내놓은 결론이다.
#"주민으로서 삶의 터전 떠날 수는 없다"
물론 석포제련소 외 여러 산업단지에서도 환경오염을 둘러싼 갈등은 자주 발생한다. 그렇지만 석포제련소의 경우 영남 식수원인 낙동강에 위치해 있어 특히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이에 몇 년 전 석포제련소를 찾은 한 정부 각료는 회사 측에 ‘통 큰 결단’을 당부했었다고 한다. 공장 안팎에선 '알아서 떠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자연히 석포제련소 노동자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도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공장이 지역에 남아 주길 바란다. 지역 인구 80%가 석포제련소 관계자들이라 공장 폐쇄는 지역소멸과 다름없어서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발생한 노동자 사망과 석포제련소 대표이사 등의 입건은 지역 주민들에게 여느 때보다 큰 충격을 안겼다. 곧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올 가족에게 걱정거리를 또 더한 점도 여간 부담스럽다.
석포리 주민 박 아무개 씨(50대)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마을에 직접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괜찮은데, 멀리 있는 가족과 지인들이 오히려 더 걱정을 한다"며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중금속이며 화학물질이며 흉흉한 뉴스들이 수년째 나오다 보니 했던 말 또 하기를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비록 근로자가 숨진 일은 매우 안타깝지만 주민으로서 삶의 터전을 떠날 수는 없다"면서 "아무쪼록 공장이나 마을이나 부디 평온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임 아무개 씨(60대)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봉화군청이 진행한 마을별 정기 간담회에서 군 차원에서 석포제련소 문제를 돌봐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임 씨는 "다른 마을들은 군청에 '다리를 놔달라' 등의 민원을 제기하지만 석포리는 공장 덕분에 기반시설이 비교적 잘 돼 있는 편"이라며 "가족들이 석포제련소 문제로 걱정이야 하지만, 그래도 시골치고 잘 갖춰진 동네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면에서는 낫다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민으로서는 잊을 만하면 서울 등지에서 시민단체들이 몰려와 공장 없애라고 소리 지르는 게 더 고역"이라며 "앞으로는 군청은 물론 정부에서도 부디 제대로 된 조치를 마련해 환경과 공장과 주민을 함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주민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필요해 보인다. 2015년 환경부 의뢰로 동국대 경주캠퍼스 산학협력단이 3년 동안 조사한 주민들의 건강영향평가 결과, 이곳 주민들은 국민 평균보다 카드뮴과 납 농도가 각각 3.47배와 2.08배 높았다.
(주)영풍 관계자는 "최근 안전사고 관련해서는 피해자 및 유족 분들께 필요한 모든 부분을 지원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당국의 사고 원인 조사 등에 대해서도 최대한 협조하며 재발 방지 대책도 철저히 이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10년여 동안 이뤄진 각종 조사에서 저희 잘못으로 나온 부분은 무방류 시스템을 비롯한 7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공장 폐쇄 요구' 등에 대해서는 "단 하루만 조업을 멈춰도 가동을 정상화할 때까지 6개월 가까이 걸리는데, 공장 이전까지 하면 사실상 회복 불능 상태에 놓인다"며 "공장 폐쇄는 지역소멸 문제와도 직결돼 여러 방면에서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봉화=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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