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판매를 연이어 중단했다. 홍콩H지수 급락으로 2021년 초 판매한 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잇따라 확정되면서다. 자발적 중단이라지만 시점이 절묘하다. 지난 1월 29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의 ELS 판매 중단 목소리에 “어떤 창구에서 (어떤 상품을) 파는 게 소비자 보호 실질에 맞는 건지 등을 잘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직후의 조치다.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거래질서 유지를 위해 금융회사에 영업정지 등 다양한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은행들이 영구적으로 ELS를 판매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다. 홍콩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의 불법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엄격히 따지면 일부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ELS는 일반에 판매된 지 이미 오래다.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 상당수가 이미 비슷한 투자 경험도 있다. ELS는 은행에서 팔지만 증권사가 만든다. 은행 입장에서 대출과 달리 원가는 거의 들지 않지만 수수료 수익 대부분이 이익으로 남는 ‘알짜’ 상품이다. 은행 일방의 중대한 책임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ELS 판매를 계속 막을 명분은 약해진다.
역대 최대 이익을 기록한 은행권이지만 이자 장사에 몰두했다는 비난이 일자 임금 상승률과 성과급 지급률을 낮췄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최근 올해 임금 인상률을 지난해 3.0%에서 1%포인트(p) 낮은 2.0%로 정했다. 성과급도 (월 기본급의) 300%대에서 200%대로 축소했다. 하지만 지난해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만큼 임금 상승률을 낮춰도 실질임금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은 성과급은 줄였지만 복리후생비를 더 주기로 했다. 복지포인트를 높이고 결혼지원금도 새로 만들었다.
은행들은 희망퇴직금도 월 평균 임금의 5개월가량을 줄였다. 2022년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총 퇴직금은 5억 4000만 원으로 희망퇴직금(특별퇴직금+복지지원)이 3억 6000만 원, 법정 기본퇴직금이 1억 8000만 원이었다. 5대 은행 평균연봉은 1억 원이 넘는다. 5개월로 치면 약 4000만 원이다. 줄어도 여전히 5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이뤄진 희망퇴직에는 신청자가 전년보다 15%가량 줄었다. 디지털화로 은행의 인력은 여전히 과잉 상태다. 여론의 관심이 낮아져 희망퇴직 조건이 더 좋아지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지난 1월 30일 메리츠증권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메리츠증권 임원이 회사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투자로 거액의 수익을 거두고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 직원까지 동원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금감원이 지난 1월 10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이 움직인 것이다. 메리츠증권 외에도 여러 증권사에서 부동산 PF를 악용한 임직원들의 사익추구 혐의가 금감원 조사에서 적발됐다. 하지만 범죄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관련자 처벌만 가능할 뿐 회사에 재발방지 대책을 강제하기는 어렵다.
현행법은 금융회사에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만 강제할 뿐 내부통제 실패로는 회사나 최고경영자(CEO)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내부통제 기준이 미흡해 사실상 마련 의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법적 판단이 이뤄져도 가능한 벌칙은 1억 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성과보수체계가 미흡한 증권사 17개사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해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운영 과정에서 최소 이연 기간·비율 등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를 다수 확인했다고 지난 1월 30일 밝혔다. 법을 준수하지 않았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금융당국의 행정 제재만 가능하다. 이미 부동산 PF와 관련된 임직원 상당수는 회사를 떠났다. 법을 위반해 받아간 성과급을 이들에게 반환하도록 할 수도 없다. 중징계를 받더라도 일정기간 금융회사의 임원만 될 수 없다. 등기임원만 아니면 취업은 가능하다.
증권업계 임직원은 저금리 시대 채권투자 이익과 부동산 PF로 가장 많은 성과급을 챙겼다. 하지만 부동산 PF 관련 부실로 막대한 충당금까지 쌓아야 할 처지가 되면서 주주들의 부담은 커졌다. 하지만 잇따라 드러난 사고에도 업계 차원의 자정 움직임은 없다.
한편 은행과 증권에 비해서는 부실과 사고가 적은 보험업계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성과급 잔치를 이어가고 있다. 보험업계는 지난해 새로운 회계제도(IFRS17)의 도입으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 국내 53개 보험사의 누적 당기 순이익은 11조 422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2% 급증했다. 회계기준만 바꿨을 뿐인데 이익이 크게 불어난 것이다. 임직원 성과로 보기 어렵다.
삼성화재는 연봉의 50%, 삼성생명은 연봉의 29% 수준을 지급했다. 메리츠화재도 지난해에 이어 연봉의 60% 수준을 검토하고 있다. 성과급은 늘어났지만 주주를 위한 배당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은 최근 보험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을 불러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큰 만큼 올해 성과급이나 배당을 작년 수준으로 유지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성과급을 지난해보다 더 지급하는데 배당까지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이익이 늘었음에도 주당배당금을 높이지 않으면 배당성향은 하락하게 된다.
훈풍 부는 지배구조 핵심 관련주, 관건은 실적 개선
정부가 시가총액이 순자산보다 적은 저평가주에 대한 특별관리 방침을 밝히면서 지배구조 핵심 관련주들이 주목받고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기업 가운데에는 해당 기업집단 내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곳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종목은 자회사 지분가치가 제대로 주가에 반영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위는 2월부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용한다. 주요 내용은 △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 비교공시 시행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다.
1월 말 이후 주가가 급등한 간판주는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삼성물산, LG 등 지배구조 상단에 있는 기업들과 만성적으로 PBR 1배 미만인 대형 금융주들이다. PBR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등으로 분모인 자본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PBR을 높이도록 독려한다면 주주 환원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로 주가가 오른 것이다.
PBR 관리는 일본의 증시 부양책 가운데 하나다. 투자나 주주 환원보다는 누적 이익의 내부 유보에 집중해왔던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대상이 돼왔다.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기부양이 절실한 일본 정부도 이에 호응해 기업들이 과잉 자본을 해소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미국의 긴축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됐고 이를 바탕으로 주주 환원을 늘리면서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것이 일본 증시 급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결국 국내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PBR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적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등 제조업의 경우 올해 실적 개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낙관하기는 이르다. 금융회사들은 지난 2년간 금리수준이 높아지면서 대출 연체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부동산 PF 관련 부실에 대한 충당금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익 성장을 장담하기 어렵다. 제조업체와 달리 금융회사는 일정비율 이상의 자본을 유지해야 한다. 주주 환원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른바 PBR 이슈가 지속되려면 실적 확인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