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사장단’ 부활하고 임원들 유연근무 반납…경영 고삐 긴장감 속 최 부회장의 ‘권한’ 주목
SK그룹은 지난해 12월 임원 인사에서 최창원 부회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의 최고 협의 기구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 차원의 전략 수립 및 실행을 지원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며 투자 협력 및 실행 방안도 논의한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사실상 SK그룹 경영 전반을 이끄는 자리인 셈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최창원 부회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한 것에 대해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항상 밀려가고, 언젠가 저도 앞 물결이 된다”며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혼자 결정해 진행한 것이 아니라 각 회사의 추대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최창원 부회장이 최태원 회장에 이은 SK그룹 2인자로 올라섰다고 평가한다. 특히 실무적인 부분에서 최창원 부회장의 존재감이 클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은 다른 총수에 비해 경영 참여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지난 몇 년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면서 대외활동에 공을 들였다. SK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프로야구팀 SK와이번스(현 SSG랜더스) 매각도 최태원 회장 보고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전까지 SK그룹 경영의 중심은 전문경영인들이었다. 특히 조대식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현 SK(주) 이사), 장동현 전 SK(주) 부회장(현 SK에코플랜트 대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은 ‘부회장 4인방’이라고 불리면서 SK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이들 부회장 4인방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거나 계열사를 옮기는 등 2선으로 물러났다.
SK그룹의 대대적인 인사를 놓고 최근 부진한 실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7조 730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뿐만 아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한 데 이어 2022년 키파운드리까지 인수하면서 재무 부담이 커졌다.
다른 주요 계열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SK(주)의 영업이익은 2022년 1~3분기 8조 4960억 원에서 2023년 1~3분기 4조 6317억 원으로 45.48% 감소했다.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4조 6822억 원에서 1조 8313억 원으로 60.89% 줄었다. SK(주)와 SK이노베이션은 아직 지난해 4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신호용 NICE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SK(주)의 2023년 9월 말 별도 기준 순차입금은 11조 10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채무 부담이 과거 대비 확대됐다”며 “지난 수년간 SK그룹 계열 전반적인 재무부담이 증가 추이를 기록한 가운데 SK이노베이션, SK E&S와 같은 주요 자회사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발생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최태원 회장과 SK그룹 입장에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올해도 우리의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모두가 해현경장의 자세로 우리의 경영 시스템을 점검하고 다듬어 나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해현경장이란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는 뜻으로 느슨한 마음을 긴장감을 갖도록 고친다는 뜻이다.
실제 SK그룹은 올해 들어 경영 고삐를 바짝 죄는 모양새다. SK그룹은 최근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시켰다. SK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단은 2월부터 2주에 한 번 토요일에 ‘전략글로벌위원회의’를 열고 경영 관련 사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SK그룹은 2000년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토요 사장단 회의를 폐지했다. 즉, 24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가 부활하는 것이다. 이번 토요 사장단 회의 부활은 최창원 부회장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임원은 유연근무제를 반납하기로 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임원은 이전까지 유연근무제의 일환으로 매월 2회 금요일 휴무가 부여됐다.
나아가 SK그룹이 사업을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창원 부회장은 2000년대 중반 SK케미칼 대표를 맡으면서 주력 사업이었던 섬유 사업을 과감하게 축소한 바 있다. 최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를 대상으로 중복 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사업 재편이나 확장하는 부분에서 인정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며 “SK그룹의 현 상황을 감안했을 때 중복 사업은 제거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사실 SK그룹은 최창원 부회장이 의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사업구조 재편 움직임을 보였다. SK그룹은 최근 11번가 경영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SK매직 일부 사업부를 경동그룹에 매각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SK그룹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추가 자산 매각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SK그룹에 대해 “보유 지분 매각을 통한 추가 현금 확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최창원 부회장이 어디까지 권한을 부여받았냐는 것이다. 소규모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은 최 부회장 뜻대로 진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 매각이나 대규모 사업 재편을 추진할 경우에는 최태원 회장의 의중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SK그룹 관계자는 “사업 재편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큰 움직임이 나온 것은 없다”며 “의사결정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급 임원들이 협의해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창원 부회장이 SK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또 다른 효과도 낳게 됐다. 최 부회장은 이전까지 SK디스커버리 경영에만 집중해 왔다. 최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 지분 40.1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최 부회장이 SK디스커버리를 들고 계열분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계열분리설도 잦아들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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