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부재에 체력 관리 실패…감독 본인 의사와 달리 경질론에 힘 실려
#충격적인 내용과 결과
4강전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한 차례 상대한 경험이 있는 요르단이었다. 대회 개막 이후 두 번째 일정이었던 당시 경기에서 대표팀은 막판 극적인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거뒀다.
4-4-2 포메이션에 가까운 전술을 들고 나왔던 당시와 달리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4강이라는 중요한 경기에서 미드필드를 3명으로 구성했다.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가동하는 포메이션이었다. 미드필드부터 주도권을 잡고 나가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요르단은 4강에 진출한 그간의 기세를 보여주듯 맹렬하게 공격에 임했다. 대표팀이 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전반 시작 이후 30분 가까이 주도권을 잡은 팀은 요르단이었다.
전반 막판 이재성의 헤더와 이강인의 발리슛 등으로 흐름을 가져오는가 했지만 후반전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1분과 34분 교체 카드를 사용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경기 내내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지 못하고 두 골을 허용, 0-2로 패배했다.
경기 후 기록지는 0-2라는 결과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볼점유율에서 67%-33%로 크게 앞섰으나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었다. 5개의 슈팅을 시도하면서 유효슈팅은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반면 요르단은 12개의 슈팅(유효슈팅 7개)을 대표팀 골문으로 퍼부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대표팀의 아시안컵 도전이 마무리됐다. 대회 시작부터, 그 이전 새 감독 부임 시점에도 부르짖던 '우승'은 공허한 말이 됐다.
#시작부터 어긋났다
이번 대회 실패 요인 중 하나로는 선수들의 체력 관리 실패가 꼽힌다. 클린스만 감독은 여러 차례 전술을 바꾸면서도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의 면면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특히 토너먼트부터는 연장 승부가 이어졌기에 체력 문제가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선수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손흥민, 이강인 등 공격수부터 황인범 등 미드필더까지 많이 뛰고 오래 뛰었다"며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요르단에 그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반면 대표팀과 조별리그에서 한 조에 편성됐던 요르단은 첫 두 경기 1승 1무를 기록하고도 세 번째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4명의 선수만 바레인을 상대로 선발로 나섰다. 특히 '에이스'로 불리는 무사 알 타마리는 온전히 한 경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단기 토너먼트 대회에서 상위권 성적을 노리는 팀에 체력관리는 필수로 여겨진다. 우승권 국가들은 조별리그 첫 두 경기에서 유리한 고지에 이른 이후 세 번째 경기에 백업 자원을 다수 투입한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황선홍호 역시 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지난 월드컵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 패배로 여유가 없었으나 대회 중 라인업 변화를 가져가며 선수단의 체력 관리가 가능했다. 리오넬 메시를 제외한 다수의 '우승공신'들은 대회 풀타임을 소화하지 않으면서 중요한 순간에 힘을 집중할 수 있었다.
조별리그에 이어 토너먼트 경기도 대표팀을 지치게 만들었다. 16강 사우디전, 8강 호주전 모두 연장전으로 승부가 흘러가며 120분씩 소화했다. 짧은 간격으로 경기가 이어지는 토너먼트 특성상 선수들에게 제 컨디션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호주전 막판에는 다수 선수가 체력 저하, 근육 통증을 호소했다. 스태미나가 장점인 김태환은 수비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였고 김민재는 틈만 나면 수축된 근육을 풀어주기에 바빴다.
토너먼트 두 경기에서 경기 막판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기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던 기적 같은 상황은 4강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결국 '좀비축구'라는 대표팀의 새로운 별명은 짧은 유통기한을 다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이미 지난 두 경기 240분을 넘게 소화한 이후였다. 대회 초반 부상을 당했던 황희찬도 제 몸상태가 아니었기에 후반 막판 벤치로 물러났다. 대표팀은 6경기 2승 3무(승부차기 포함) 1패 11득점 10실점이라는 공식 기록을 남기며 대회를 끝냈다.
#'교체는 잘한다?'
이번 대회에 나선 대표팀은 여러 차례 변화를 시도했다. 토너먼트에선 나서는 경기마다 다른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사우디를 상대로 백3 시스템을 가동하는가 하면 호주전에선 이전까지 가장 익숙했던 포메이션으로 돌아갔다. 요르단전에서는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처음으로 3명의 미드필더가 중원에 배치됐다.
이 같은 변화는 낙제점을 받았다. 대표팀은 3경기에서 모두 주도권을 내주는 경기를 펼쳤고 연속으로 선제 실점을 허용했다. 경기마다 들고 나온 전술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대표팀이 보여준 전술에 비판을 가했다.
"포메이션은 결국 전술을 담는 그릇이다. 어떤 축구를 보여주려 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우리 대표팀에서 어떤 전술을 쓰려 했는지 모르겠다. 부임과 동시에 '공격적인 축구를 하겠다'고 했는데, 공격적인 축구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의도도 파악하기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올드한 축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호주전에서는 조규성을, 요르단전에서는 손흥민을 앞에 세워두고 공을 때려놓는 장면이 반복됐다. 상대방에 대한 맞춤 전술을 구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어 그는 대표팀의 전술 부재가 '예견된 일'이라고도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당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이유가 이런 부분"이라며 "클린스만 감독은 이전 커리어에서도 전술적 부분이 약점으로 꼽히던 지도자다. 이번 대회는 우려하던 부분이 결과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대회 내내 경기력이 지지부진했으나 16강과 8강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 이를 두고 감독의 교체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문성 해설위원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는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며 "교체 카드가 다소 분위기를 환기 시켰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가까운 호주전을 보더라도 손흥민의 개인 기량으로 끝낸 경기 아닌가. 손흥민이 혼자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프리킥을 차서 넣어 이긴 것이다. 교체 카드가 딱 맞아 들어갔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감독 거취에 쏠린 눈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와 내용에 팬들의 시선은 클린스만 감독에게 쏠렸다. 부임 직후부터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목표로 '아시안컵 우승'을 외쳤다. 하지만 받아든 결과는 결승 진출 실패였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클린스만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책임'을 이야기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책임은 사퇴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이번 대회를 분석할 것이다. 남은 2년 반 동안 월드컵을 목표로 팀이 발전해야 한다. 예선도 치러야 한다. 쌓인 과제가 많다"며 미래를 말했다. 대표팀의 다음 일정은 3월 말로 예정된 태국과의 월드컵 지역 예선이다.
감독 본인의 의사와 달리 이번 대회 결과를 놓고 '경질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도전사에서 3경기 6실점은 조별리그 역대 최다 실점 신기록이다. 대회 전체 10실점은 이란전 한 경기에서 6실점을 했던 1996년 대회 이후 최다 실점 2위 기록이다. 대회 과정과 결과 모두 놓쳤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대표팀은 전임제 감독 체제가 도입된 이후 아시안컵 결과를 놓고 두 번의 감독 교체를 단행한 바 있다. 고(故) 박종환 감독과 핌 베어백 감독이다. 이들은 각각 1996 아시안컵 8강, 2007 아시안컵 3위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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