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줄이고 ‘지역’ 늘리겠다는 접근…국민 부담 확대 ‘건보료 지옥’ 열릴 수도
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주로 조성된다. 보험요율 법정 상한은 8%다. 해당연도 보험료 수입액의 14%까지 정부가 지원할 수 있고, 담배판매 의존이 높은 국민건강진흥기금에서도 6%를 낼 수 있다. 정부지원 규정은 2027년까지만 적용된다. 법을 고치지 않으면 이후부터는 정부의 지원 의무는 사라진다.
허술하게 만들어진 보험사들의 실손보험으로 의료 쇼핑이 급증하고 비급여항목을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이미 만연한 실손보험의 부작용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의료비 절대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막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올해 100조 원을 넘어선 건보 지출이 2032년까지 연평균 8.7%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추세라면 2033년에는 200조 원을 돌파하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며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험요율은 점차 높아져 2023년 7%를 넘었다. 법에서 정한 보험요율을 상한인 8%까지 올려도 2030년에는 그동안 쌓였던 누적준비금이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급여 재원이 부족하면 차입(1년 이상은 정부 승인)을 해서 충당해야 한다.
건보 재정이 벼랑 끝에 서면서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다. 과잉 의료비 해소와 보험요율 상한의 인상이다.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부분은 역시 후자 쪽이다. 보건복지부는 ‘적정’한 부담 수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면서 2023년 기준 일본(10~11.82%), 프랑스(13.25%), 독일(16.2%)의 보험요율이 우리나라보다 높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국고지원 해외 사례는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진국의 보험요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의 내용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
우리 건강보험제도의 모델인 일본의 공적 건강보험은 직장인이 가입하는 의료보험과 그 밖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건강보험으로 나뉜다. 의료보험은 우리 직장건강보험과 닮은꼴이지만 소득이 없는 노인 등이 주로 가입하는 국민건강보험은 그 면모가 사뭇 다르다. 의료보험처럼 회사와 직원이 절반씩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는 만큼 보험료 수준이 5~6%으로 낮다. 이 때문에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비중은 재정의 20% 수준(도도부현 기준)에 불과하다. 부족한 부분은 재정이나 공공자금, 또는 교부금 등으로 채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험료를 회사와 절반씩 나눠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와 가입자가 전액 부담하는 지역가입자의 요율이 같다. 특히 지역가입자는 소득뿐 아니라 보유 재산까지 보험료 산정기준에 포함시키고 있다. 정부가 재산보험료는 기본공제를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높이기로 했지만 이 제도 자체는 유지했다.
동시에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인정 범위는 더욱 엄격하게 하는 방침은 분명히 했다. 이른바 무임승차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부담이 적은 직장가입자는 줄이고 부담이 큰 지역가입자를 늘리겠다는 접근이다. 지역가입자가 되면 공적연금(50%)이나 개인연금에도 건보료가 부과된다. 소득이 적어도 보유한 집값이 높다는 이유 만으로 직장가입자 대비 훨씬 높은 건보료를 부담할 수도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각종 공제를 제외하면 소득세보다 건보 부담이 더 큰 ‘건보료 폭탄’ 우려가 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의료서비스 수요가 많지 않은 젊은 직장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병원 이용이 잦은 노령층에 보험금을 지출하는 구조다. 고령화로 직장 가입자 숫자가 줄어들면 이 같은 재분배 기능도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국민 부담을 더 늘리는 제도 변화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정부는 건보료 요율 상향과 함께 보험료 부과 소득 범위를 확대를 추진하려는 모습이다. 아예 사회보장분담금 형태의 ‘준조세’를 신설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담배 가격 인상을 통해 건강기금의 건보 재정에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증세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해진 상황을 감안하면 국민의 준조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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