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21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 출마 뜻을 밝힌 임 전 실장은 종로구 평창동의 한 고급 단독주택에 전세로 이사하며 오랜 벗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우연히 이웃사촌이 됐는데, 임 전 실장이 거주하는 단독주택의 주인마저 고향 선배의 건설사가 때마침 사들여 전면 리모델링까지 마친 곳이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해당 건설사 대표는 "임 전 실장에 편의를 제공하려고 매입한 집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낡은 가정집 매입한 기업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골목. 화정박물관이 있는 대로변에서 5분 정도 걷다보면 눈에 띄는 집이 한 채 나온다. 꽤 오래돼 보이는 주변 집들과 달리 새로 지어진 듯한 2층집으로, 높은 외벽 위로는 나무 조경까지 꾸며져 있어 바깥에선 집의 구조조차 눈에 담기 힘든 고급 주택이다.
원래 이곳은 1969년도에 지어진 연면적 226.87㎡(69평) 규모의 낡은 집이었다. 그러다 2018년 7월 건설 및 신재생에너지 기업 '태려홀딩스'가 9억 9500만 원에 사들이며 완전한 '새집'으로 변모했다. 태려홀딩스는 매입과 동시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다. 외벽 소재를 고급화하고 높이도 올린 채 마당잔디와 조경까지 전부 새로 꾸몄다.
기업이 한 세대짜리 낡은 가정집을 구입하는 일은 드물다. 실제 태려홀딩스도 가정집 구입은 이때가 유일했다. 2020년 평창동 타운하우스 한 채를 매입한 사례는 있으나 이곳은 원래 기업들이 주로 소유해온 수십억 원 규모로, 이마저 특수관계자인 '태려금융대부'의 한 사내이사와 지분을 절반씩 나눈 곳이다.
태려홀딩스가 이 집을 사들인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6월. 사실상 신축 저택으로 탈바꿈한 이곳의 첫 세입자는 다름 아닌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6월 7일 계약을 맺고 사흘 뒤인 10일 입주를 끝내는 등 속도도 매우 빨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등에 따르면 전세가는 7억 원으로 파악된다.
임 전 실장은 보유해오던 은평구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으나 거래가 성사되지 않자 전세로 전환한 뒤 본인도 평창동 세입자로 들어왔다. 그는 2019년 1월 비서실장을 관두며 5억 800만 원인 은평구 아파트를 포함한 전 재산을 6억 4945만 원으로 신고했다. 이와 별도로 은평구 아파트 구입 때 빌린 9000만 원의 은행 빚이 남은 상태였다.
#기막힌 우연?
당시 임 전 실장의 평창동 이사 소식은 커다란 관심을 모았었다. 청와대를 나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하려는 행보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임 전 실장이 산책 도중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우연히 만나 '평창동 이웃사촌'이 됐다는 뉴스가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임 전 실장과 집 주인 태려홀딩스 사이의 인연에 더욱 주목한다. 임 전 실장과 태려홀딩스의 김동석 회장이 매우 친한 사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전남 장흥군 같은 고향 출신이다. 김 회장(1959년생)이 임 전 실장(1966년생)보다 7년 선배로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임 전 실장이 공식석상 등에서 김 회장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은 쉽게 확인된다. 임 전 실장이 서울시 부시장직 사임 후 2016년 총선에서 서울 은평구 출마를 선언하며 개소한 선거사무소 개소식, 2023년 열린 전남 장흥 출신이 모인 '장생탐진포럼' 총회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 언론 '장흥신문'의 2020년 9월 25일 보도에는 김 회장이 골프 홀인원 소감으로 "우리 임종석 실장님만 잘 되면 돼요"라는 소감을 남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밖에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임 전 실장과 김 회장은 자주 어울려 다니는 편이었다"며 "두 사람 친분은 많이들 알고 있다"고 전했다.
2019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임 전 실장은 아내가 마당 있는 집을 원했기에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임 전 실장으로서는 형편상 마당 딸린 집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때마침 가까운 지인이 본인의 총선 출마 희망지역에 꼭 맞는 가격과 환경까지 모두 갖춘 집을 만나는 행운을 맞이한 셈이다.
#"서로 니즈가 부합했다"
이러다보니 임 전 실장이 평창동에 거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 김 회장과의 친분이 작용했을지에도 궁금증이 따른다. 태려홀딩스의 집 매입 시기와 가격 등에 비춰, 김 회장이 임 전 실장에 편의를 제공하고자 회사를 통해 주택을 매입했을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다.
태려홀딩스가 가정집으로는 이곳만 보유한 데다, 이 구입으로 어떤 실익을 기대할 수 있었는지 불분명한 점도 의문을 키운다. 또 태려홀딩스는 이자 수익이 대부분으로, 자체 사업은 거의 없어 평창동 집 매입 당시 한 해 매출이 1840만 원에 불과했다. 당기순손실만 12억 원이었으며, 집 구입 후 2019∼2022년 내내 매출은 '0원'이었다.
김 회장은 일요신문 통화에서 "임 전 실장과 아주 친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평창동 집은 투자가치를 보고 샀을 뿐 임 전 실장과는 전혀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평창동이라고 부촌만 있지는 않다"며 "임 전 실장은 시세에 따라 매입가 절반인 5억 원가량만 보증금으로 줘도 됐을 텐데, 오히려 비싸게 들어온 편"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애초 집이 싸게 나와서 리모델링 후 임대를 내 회사 경비라도 보태려 했다"며 "하지만 코로나가 터져 걱정하던 상황 속, 마침 임 전 실장이 종로에서 집을 구한다기에 서로 니즈가 부합했다"고 강조했다. 단, 임 전 실장은 2019년 6월 이사했다. 코로나19는 그해 11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다. 국내 첫 확진자는 2020년 1월 나왔다.
김 회장은 '임 전 실장의 정확한 전세가격과 계약 기간' 등을 묻는 질문에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가정집을 매입한 사례가 평창동 집이 유일하다'는 질의에는 "태려홀딩스 외에도 태려건설이든 기타 회사를 통해서든 시기와 상황에 맞춰 곳곳에서 많이 매입한다"고 설명했다.
임 전 실장은 관련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나흘 동안 전화는 받지 않았고 메시지로 보낸 질의는 읽었지만 돌아온 답이 없었다. 그는 2020년 총선에 결국 불출마했다. 그해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으로 하마평에 올랐으나, 돌연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자취를 감추다 최근 윤석열 정부와 날을 세우며 다시 총선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김동석 회장은? 달동네 기적 일군 '디벨로퍼'
태려홀딩스와 태려건설산업 등을 이끄는 김동석 회장은 '상도역 롯데캐슬'이 위치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159번지 일대 개발의 주역으로 유명하다. '밤골'로 불리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이곳을 신축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태려건설산업은 2001년부터 이곳의 개발을 추진해 왔다. 무허가 건물주 등의 반발로 오랜 기간 사업이 표류했지만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냈다. 무허가 건물주여도 일정 자격만 갖추면 조합을 구성해 땅을 공동 매입하고 집을 짓는 방식이다.
무허가 건물주들이 내지 않은 토지 사용료도 탕감해주고, 평균 1억 5000만 원의 현금보상을 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업계 눈길을 사기도 했다. 결국 2020년 분양에 성공하며 도시정비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17년부터는 태려홀딩스와 태려건설산업 등의 사업목적에 전부 '신재생에너지'를 추가하며 새 도전에 나섰다. 특히 태려건설산업이 주주인 '그린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가 2018년 설립한 '이지스프라이빗에쿼티'(이지스PE)의 활약이 컸다.
이지스PE는 설립 3년 만인 2020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투자를 받았다. 블랙록이 국내 '해상 풍력' 부문에 실시한 첫 투자였다. 그해 이지스PE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 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신안해상풍력 개발사업에도 참여했다.
김 회장은 '아이티에너지'도 이끈다. 2019년 3월 설립 후 불과 3개월 만에 전남 장흥군 및 한국서부발전과 협약을 맺고, 장흥군에 국내 최대 규모인 200MW급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설을 세우는 사업에 시행사로 참여해 주목받은 회사다.
다만 이 사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총 사업비 1조 2000억 원 가운데 아이티에너지가 약 9000억 원 펀딩으로 투자자도 모으려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작업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