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자유형 200m, 김우민 자유형 400m 우승…7월 파리올림픽 정조준
황선우는 2월 1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어스파이어돔에서 열린 2024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 경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분44초75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2022년 부다페스트 대회 은메달, 지난해 후쿠오카 대회 동메달에 이어 세 번째 세계선수권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3회 연속 세계선수권 시상대에 오른 한국 선수는 황선우가 유일하다. 이에 앞서 2월 12일엔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 김우민이 3분42초71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깜짝 우승했다. 2011년 상하이 대회의 박태환(3분42초04) 이후 13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200m 첫 금메달리스트 황선우
과거 한국 수영은 특출난 에이스 한 명의 활약에 의존했다. 앞서 한국이 세계선수권에서 따낸 금메달 두 개는 모두 박태환이 자유형 400m(2007년 멜버른·2011년 상하이 대회)에서 수확했다. 올해는 다르다. 사상 최초로 2개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왔고, 금메달리스트도 두 명이다. '박태환 키즈' 황선우와 김우민이 무럭무럭 성장해 한국 수영의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황선우는 서양 선수들이 점령해오던 자유형 단거리(200m)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이전까지는 2007년 박태환의 동메달이 이 종목 최고 성적이었다. 아시아 선수로 범위를 넓혀도 중국의 쑨양(2017·2019년)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쾌거다. 황선우는 경기 후 "굉장히 뿌듯한 레이스였다. 세계선수권 메달은 은메달과 동메달만 갖고 있어서 내게 없던 금메달을 꼭 따고 싶었다"며 "그 꿈을 이루게 돼 행복하다"고 감격했다.
준결선을 2위로 통과한 황선우는 결선 5번 레인에서 가장 빠른 출발 반응 속도(0.62초)로 스타트를 끊었다. 초반부터 앞으로 치고 나가 레이스를 주도했고, 50m 지점과 100m 지점을 여유 있게 1위로 통과했다. 150m 지점에서 6번 레인의 루크 홉슨(미국)에게 잠시 선두를 내줬지만, 마지막 20m를 남기고 다시 추월해 금빛 마침표를 찍었다. 4번 레인의 다나스 랍시스(리투아니아·1분45초05)가 은메달, 홉슨(1분45초26)이 동메달로 뒤를 이었다.
황선우는 "100m까지 레이스가 괜찮아서 150m 지점까지 내 페이스를 유지했다. 홉슨 선수가 옆에서 속도를 올리기에 나도 같이 올리고 싶었지만, 괜히 (홉슨을) 따라가다 내 페이스가 망가질 것 같아 자제했다"며 "내 레이스에만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 50m 구간에서 승부를 봤는데, 다행히 잘 통해서 1위로 마무리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400m 금맥 이은 김우민
황선우가 지난 2년간 세계선수권에서 연속 입상하면서 금메달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면, 김우민은 첫 메달을 단숨에 금빛으로 장식하면서 기분 좋은 충격을 안겼다. 김우민은 경기 후 "레이스를 잘 마친 것 같아서 후련하다. 나도 우승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금메달로 첫 메달을 따게 돼 뜻깊고 뿌듯하다"고 했다.
김우민은 2022년 6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400m 결선에 진출해 6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이어 지난해 7월 후쿠오카 대회 결선에선 개인 최고 기록(3분43초92)을 세우면서 5위로 레이스를 끝냈다. 3회 연속 결선 스타트라인에 선 이번 대회에선 예선 레이스를 역대 가장 좋은 성적(3위)으로 마쳐 첫 메달 획득을 기대하게 했다.
김우민은 3번 레인에서 결선을 시작했다. 첫 50m 지점을 2위(25초32)로 통과한 뒤 100m 지점부터 1위로 치고 나갔다. 이후 단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여섯 번의 반환점을 가장 먼저 돌았다. 300m 지점까지는 세계신기록 페이스를 유지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질주였다. 경쟁자들이 마지막 50m 지점에서 무섭게 스퍼트를 올리며 추격했지만, 앞선 350m에서 벌어진 간격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우민의 최종 기록은 2위 일라이자 위닝턴(호주·3분42초86)보다 0.15초 빨랐다. 우승 후보 중 한 명이던 루카스 마르텐스(독일·3분42초96)가 3위였다.
이번 도하 세계선수권은 세계 정상권 선수들이 올림픽 전 체력 안배를 위해 출전을 포기하거나 출전 종목을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김우민의 주 종목인 남자 자유형 400m는 상황이 달랐다. 지난해 우승자 사뮤엘 쇼트(호주)가 불참했을 뿐, 이 종목 강자들이 대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 이번 대회 최대 각축장으로 꼽혔다. 그래도 김우민은 개막 전 "어려운 경쟁이 되겠지만, 이럴 때 좋은 결과를 낸다면 올림픽 메달 도전에 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이날 허를 찌르는 기선제압 레이스로 그 다짐을 현실로 옮겼다.
#고강도 체력훈련의 성과
황선우와 김우민에게 이번 대회는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5일부터 이달 3일까지 호주 골드코스트 선샤인코스트대 수영장에서 자유형 대표팀 동료 이호준(22·제주시청) 이유연(23·고양시청) 양재훈(25·강원도청)과 함께 '지옥 훈련'을 소화하고 돌아왔다. 호주 수영 국가대표를 여러 명 배출한 마이클 펄페리 코치는 황선우를 비롯한 한국 대표선수들이 매일 12시간씩 주 6일에 걸쳐 일주일에 총 60㎞를 헤엄쳐야 하는 극한의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그간 황선우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체력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훈련 강도를 최고치까지 끌어올렸다.
황선우는 귀국하면서 "수영 인생에서 가장 힘든 4주였다. 3년 연속 호주에서 훈련을 했는데, 그중 가장 강도가 높았다"며 "내 한계에 부딪힐 정도의 훈련량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확실히 지구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체력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히던 김우민도 "운동량이 정말 많았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모두 잘 이겨내서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2022년 1차 전지훈련에선 기본기를 강조했고, 지난해 2차 전지훈련에선 체력적으로 몰아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이번 3차 훈련은 고강도를 유지하면서도 1·2차 훈련의 중간 지점을 잘 찾았다. 선수들이 무척 만족했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그 후 테이퍼링(경기일에 맞춰 훈련량을 서서히 줄이며 컨디션을 올리는 과정) 기간도 없이 곧바로 도하로 출국해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실제로 황선우는 첫 경기였던 자유형 200m 예선을 11위로 통과한 뒤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당황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준결선부터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제 궤도에 올랐고, 결선에선 이번 대회 자유형 200m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1분44초대 기록을 냈다. 무엇보다 마지막 50m 구간을 26초89로 스퍼트해 2위 랍시스를 0.30초 차로 따돌렸다. 지난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세운 자신의 최고 기록(1분44초40)에는 못 미치지만, 고무적인 레이스였다. 황선우는 "테이퍼링 없이 출전한 대회라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서 더 좋다"며 웃었다.
#선택과 집중이 통했다
김우민은 심지어 지난해 7월 후쿠오카 대회에서 남긴 종전 개인 최고 기록(3분43초92)을 7개월 만에 1초21이나 단축했다. 처음으로 3분42초대에 진입하면서 멀게만 보였던 박태환의 한국 기록(3분41초53)에 1초13 차로 다가섰다. 초반 300m에서 독주에 가까운 레이스를 펼쳤고, 마지막 100m 구간에서도 힘을 유지해 선두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정상적인 대회 준비 과정을 거쳤다면, 더 좋은 기록이 나왔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 자신도 결과를 확인한 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우민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는데도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얼떨떨하다"고 했다.
가장 잘하는 종목에 힘을 쏟는 '올인' 전략도 주효했다. 김우민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자유형 1500m 은메달리스트지만, 이 종목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자유형 400m와 계영 800m에 집중하기 위해 장거리 출전을 포기했다. 그는 "계영(선수 4명이 자유형 200m를 릴레이로 헤엄치는 종목)에 출전하려면 단거리인 200m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체력 소모가 큰 1500m까지 준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다"며 "파리올림픽까지 마치고 다시 (1500m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김우민은 자유형 200m 국가대표 선발전 2위에 올라 황선우와 함께 출전권을 따냈지만, 대회 일정을 고려해 3위 이호준에게 양보했다. 그 선택의 결과가 400m 금메달로 돌아왔다.
#이제 올림픽이다
이제 이들은 7월 열리는 파리올림픽을 향해 고삐를 조인다. 파리에선 도하에서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황선우가 금메달을 노리는 자유형 200m는 '춘추 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 아예 불참한 '수영 단거리 천재' 다비드 포포비치(루마니아), 자유형 200m 출전을 포기한 후쿠오카 대회 금·은메달리스트 매슈 리처즈와 톰 딘(이상 영국)이 모두 올림픽에는 정상 출격한다. 그러나 황선우도 기량과 자신감이 한껏 고조된 상태다. 100%에 오르지 못한 몸 상태로도 큰 대회에서 순조롭게 원하던 결과를 얻어냈다. 황선우는 "이번 금메달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올림픽에 좋은 발판이 될 것 같다. 남은 기간 잘 준비하면 파리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탄 김우민도 세계선수권 금메달의 기운을 파리에서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박태환(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자유형 400m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장면도 기대해볼 수 있다. 김우민이 금메달까지 따게 된다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의 업적이 된다. 김우민은 "이렇게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올렸으니, 앞으로 더 큰 무대인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남은 기간 열심히 훈련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계속 훈련하고 또 하다 보면, 좋은 기록과 성적은 따라올 거라 믿는다"고 각오를 다졌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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