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정신 드높인 호탕하고 당당한 집단놀이
‘양반의 고장’ 안동에서 차전놀이가 대대로 이어져온 까닭은 무엇일까. 정확한 연원은 확인되지 않으나, 후삼국 시대에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펼쳐진 양군의 대결에서 왕건이 견훤을 물리쳤으며 이로 인해 집단 모의전투 놀이인 차전놀이가 유래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임만휘가 남긴 ‘만문유고’에는 동채싸움 장면을 묘사한 한시가 수록돼 있다. ‘벼락치듯 빠른 놀림 이길 틈 엿보며 / 엎치락뒤치락 좋은 날 좋은 시비’라는 구절로 시가 시작되는데, 이는 당시 안동차전놀이가 좋은 볼거리요 즐거운 축제놀이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차전놀이의 준비 작업은 동채를 만들 나무를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고을 어른들이 결전의 날을 정하면, 주민들은 동부, 서부로 패를 나눠 안동은 물론 멀리 영양 청송 봉화까지 가서 좋은 목재를 구해왔다. 길이 10m쯤 되는 곧고 튼튼한 참나무를 으뜸으로 쳤다. 산신에게 고사를 지낸 뒤 나무를 베어 안동으로 운반해 보관하고, 이 과정에서 부정한 사람이 근처에 오는 것을 막았다.
동채를 만들 때는 특히 보안에 신경을 써서 다른 사람들이 엿보지 못하도록 대문을 잠그고 작업을 한다. 동채의 크기, 견고성 등에 따라 맞대결 때 작전이 달라질 수 있고,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동채는 두 개의 굵고 긴 나무를 X자형 사다리꼴로 서로 묶어 연결시키고, 아래쪽은 2m쯤 사이가 벌어지도록 만든다. 그 중간에 몽둥이 두 개를 가로로 대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설 수 있도록 널판때기를 대어 튼튼하게 묶어 완성한다.
동부 서부, 두 패의 대장은 동채의 널판때기에 올라타 왼손으로는 동채 앞부분과 연결된 줄을 잡아 균형을 유지하고 오른손으로는 동채꾼들을 지휘한다. 동채꾼이란 동채를 어깨에 메고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연희자를 말한다.
등채 앞에는 돌격대이자 전위대 격인 머리꾼들이 포진해 선두에서 맹렬한 어깨싸움을 벌인다. 머리꾼은 기운이 센 장정들로 구성되는데,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팔짱을 끼고 어깨로 미는 이른바 ‘밀백이’로만 상대 진영을 흩어놓고 격퇴시켜야 한다. 특히 수백 명의 동채꾼, 머리꾼들이 사람의 물결을 이루어 동채 앞머리를 높이 쳐들고 전진하는 모습은 진취적 기상이 있어서 관중들을 감동시킨다.
안동 고을 사람들을 두 패, 동부 서부로 나누는 방법도 이채롭다. 일반적으로 집단놀이에서는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패를 가르지만, 안동차전놀이에서는 태어난 곳을 위주로 편을 나눈다. 때로는 부부간에도 편이 다를 수 있어 남편은 동부에서 동채를 메고 아내는 서부 쪽에서 응원하는 일도 빚어진다. 마을 청년과 장년들은 놀이에 직접 참여하고 부녀자들은 응원으로 힘을 보태는데, 고을 양반들은 가담하지 않고 관전만 하였다고 한다.
안동차전놀이는 주로 강가의 너른 백사장이나 보리밭에서 펼쳐진다. 동부 서부 양편이 대치한 가운데 풍물놀이로 흥을 돋우고 동채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서로 기세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마침내 동채 위에 있는 양편의 대장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격돌이 시작된다.
승리하는 지역에 풍년이 든다는 민간의 믿음 때문에 양측의 대결은 한 치 양보 없이 팽팽하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싸움 도중에 아무리 자기편이 유리한 순간이라도 꼭 지켜지는 불변의 규칙이 있다. 상대편의 머리꾼이 쓰러져 위기에 처하면 즉시 동채를 후퇴시켜 먼저 구출을 하고 다시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그야말로 호탕하고 당당한 대결이다. 승리보다 사람을 앞에 뒀기에 안동차전놀이는 민속놀이이자 고을 축제로 이어져 올 수 있었다. 민속학자들은 안동차전놀이를 안동 지방 특유의 상무정신(무를 중히 여기고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세련된 집단놀이로 평하기도 한다.
안동차전놀이는 일제강점기 때 연행이 엄금되었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전승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1966년 안동중학교 개교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던 교사들이 김명한(차전 초대 예능보유자)의 도움을 받아 약식 동채싸움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후 안동차전놀이(동채싸움)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연이어 수상하였고 이를 계기로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차전 예능보유자인 이재춘 선생과 (사)안동차전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 및 공연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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