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 유지 속 정부 가계부채 관리 강화…거래량 증가 주춤, 상반기 중 반등 어렵단 전망 우세
#꺾여버린 금리 인하 기대감
지난 2월 13일 미국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됐다.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한 수치로 예측치인 2.9%를 넘어섰다. 근원CPI(변동성이 높아 물가 파악에 혼동을 주는 식품과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지수)도 3.9%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웃돌았다. 미국의 높은 기준금리가 기대만큼 물가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3대 경제지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향방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수치다. 그중 2월 5일에 나온 공급관리협회(ISM) 서비스업 구매관리지수(PMI)와 2월 2일에 발표된 고용보고서상의 비농업고용지수도 예측치보다 높게 나왔다. ISM서비스업 PMI지수는 미국 경제의 80%가량을 지탱하는 서비스업 경기를 전망하는 지수로 13개월 연속 확장세다. 비농업고용지수 또한 1월에만 35만 3000명의 고용 증가를 기록하면서 예상치를 대폭 상회했다. 여기에 13일에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가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다소 충격적인 물가 지표가 발표되면서 연준의 금리 조기 인하 결정과 관련된 기대감도 꺾였다. CME(시카고거래소그룹)에서 연방기금 선물계약 가격에 근거해 금리를 예측하는 사이트 페드와치(FedWatch)에 따르면 70~80%에 달했던 3월 중 금리 인하 기대감은 거의 0%로 줄었다. 지금은 6월 이후나 돼야 금리가 조금씩 인하되리라는 쪽으로 예측치가 바뀌었다.
전 세계 시장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 국채금리도 곧바로 반응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순차적으로 시중의 대출 금리도 상승하며 국내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받는다. 금리가 4.17%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월 13일 4.29%로 치솟았다. 국내도 영향을 받았다.
변동형 대출상품 금리에 영향을 주는 금융채(AAA) 1년물 금리는 2월 1일 3.6187%에서 2월 20일 3.6800%로, 고정금리의 준거금리인 금융채(AAA) 5년물 금리도 2월 1일 3.8442%에서 3.9333%로 일제히 상승세를 나타냈다. 게다가 정부가 가계대출 안정화를 위해 압박을 가하면서 국내 시중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조정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향후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금리 인하 기대 자체가 다소 이른 감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수년간 시장에 유동성이 엄청나게 풀리며 물가 상승을 견인한 만큼 금리 몇 번 올려 1년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게다가 미국과 국내 기준금리가 2%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미국이 3번은 내려야 한국은행이 한번 내릴까 말까다. 미국 첫 금리 인하도 상반기에 물 건너가는 분위기라 올해 국내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국내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1월 중순 이후 가격 움직임을 멈췄다. 강남 4구 재건축 단지는 지난해 12월 22일 이후 두 달째 가격이 정체됐고 일반 아파트도 여전히 시세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2000건 이상을 기록하면서 10~12월보다 거래량이 다소 늘어 매수심리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낙관적인 전망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지난해 연말 아파트 거래량이 1000건대로 워낙 적어 1월의 아파트 거래량이 기저효과를 본 데다 그나마도 시장이 좋아진 게 아니라 정부의 1·10 대책 발표 이후에 소폭 거래량이 늘었다는 것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으로 1기 신도시에 한해 일부 규제를 풀어줬고 3기 신도시 주택 공급과 총선 앞두고 나온 메가시티 공약까지 포함하면 모두 장기 이슈들이다”라며 “단기적으로 잠깐 호가가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른 추격매수가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여전히 가격 상승의 동력을 얻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거래량이 증가했을 때 가격이 따라 올라야 하는데 거래량이 늘었는데도 아파트 값이 멈춰있다는 것은 결국 질적으로 좋은 시장은 아니라는 뜻”이라며 “전혀 낙관적인 시그널이 없다. 부동산 정책 레퍼토리도 떨어져서 정부 주도 하의 그린벨트 해제 얘기 정도나 나오고 있을 정도로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2월 들어 거래량 증가 속도도 주춤하다. 다시 하향안정국면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2월 26일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적용되면서 대출 한도 축소가 본격화된다. 은행권 신규 주담대뿐만 아니라 대환(갈아타기), 재약정(연장)에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면서 대출 한도 산정 시 과거 5년 중 가장 높았던 대출금리에서 현재의 대출금리를 뺀 값인 ‘스트레스 금리’가 더해진다.
여경희 연구원은 “지금은 이자 부담도 크고 가계부채 완화 정책들이 계속 나오면서 대출도 굉장히 제한하고 있어서 가격이 오를 요인이 없다”며 “규제완화 정책들도 여럿 나왔지만 단기적이거나 아니면 일부 수혜를 입는 지역에 한해서 잠시 반응이 오는 정도고 전체적인 매수 심리가 살아나려면 금리 인하나 경기 회복이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 상반기도 부동산 시장 한파는 계속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세가율(주택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평년의 10% 수준으로 줄어들고 집값 상승에 제동이 걸리면서 전세가격 지수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2.45%를 기록하며 7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인만 소장은 “전세가율이 쭉 올라서 70% 수준이 되면 이제 매매가율을 밀어 올리게 된다. 그때쯤이 되면 지난 몇 년간 끼었던 부동산 버블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공급도 좀 부족하고, 금리도 좀 내려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정황들이 맞물렸을 때 다시 집값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라며 “그런 흐름을 타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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