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석 라이브 피칭서 날카로운 커브 선보여…김하성 시범경기 첫 타석 안타 ‘굿 스타트’
#순조롭게 적응하는 이정후
이정후는 2월 20일(한국시간) 처음으로 등번호 51번이 새겨진 새 유니폼 상하의를 갖춰 입고 타석에 섰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의 훈련 장소인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투·포수조와 야수조 전원이 공식 훈련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정후는 이미 2월 16일부터 샌프란시스코 캠프지에 합류해 현지 적응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공식 훈련이 시작된 뒤에는 자율적인 스케줄 관리가 불가능하다. 선수단 전체가 팀이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왔다. 현지에서 만난 이정후는 "지금까지는 공식 훈련이 아니라서 도중에 잠깐씩 쉴 틈도 생기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시간 없이 빨리 이동하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며 "하루가 정신없이 흘렀다. 훈련 강도가 만만치 않다. 이제 시작이니까 차차 적응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날 이정후가 클럽하우스에 발을 들여놓은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였다. 그는 "예외적인 날이라 캠프에 합류한 뒤 가장 일찍 출근했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검사와 치료를 받은 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본격적인 훈련 준비를 시작했다. 오전 9시 선수단·스태프 미팅이 끝난 뒤엔 오전 11시 40분까지 스트레칭과 주루·송구·수비 훈련이 차례로 이어진다. 이후 야수 3~4명씩 8개 조로 나뉘어 라이브 배팅(실제 투수의 전력투구를 타석에서 때리는 훈련), 그라운드 타격 훈련, 플라이볼 포구 훈련, 배팅 케이지에서 하는 프리 배팅 등을 로테이션으로 소화한다. 땡볕 아래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던 첫날 일정은 오후 1시 30분이 다 돼서야 마무리됐다. 이 훈련들은 시범경기 기간에도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이정후는 "한국은 캠프 초반에는 천천히 몸을 만들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미국에선 첫날부터 (몸을 다 만들고 들어왔다는 전제 아래) 라이브 배팅을 바로 시작한다"며 "시범경기 수도 한국보다 훨씬 많다. 야구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나. 그래서 선수들에게 훈련이 아닌 경기를 통해 몸을 만들라는 의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정후는 마이클 콘포토, 루이스 마토스와 1그룹에 포함돼 후반부 훈련을 함께 돌았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라이브 배팅을 경험해 "빨리 MLB 투수들 공을 쳐보고 싶다"던 희망을 이뤘다. 이정후가 첫날 상대한 션 젤리와 닉 아빌라는 둘 다 오른손 투수다. 이 중 젤리는 키가 무려 2m11㎝로, 존 로치(은퇴)와 함께 MLB 역대 최장신 선수 타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정후는 "젤리도 그렇고, 이곳 투수들은 전체적으로 한국 투수들보다 키가 크다.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며 "아직은 (공을 보는)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았다. 라이브 배팅이 계속 있으니 차근차근 감을 잡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후가 라이브 배팅을 시작하자 야구장을 찾은 수십 명의 한국 팬이 연신 "파이팅!"을 외치고 환호를 보냈다. 정작 이정후는 "투수 공에 신경 쓰느라 잘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22일 왼쪽 발목을 다쳐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시즌 최종전인 10월 10일 고척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대타로 한 타석에 서긴 했지만, 키움 히어로즈 팬들을 향한 작별인사 성격이 짙었다. 그는 "마지막 대타 타석을 빼면, 실제 투수의 공을 친 게 거의 7개월 만이다. 집중력이 필요했다"며 "공을 많이 보지는 못했어도, 타구 2개(내야 땅볼, 외야 플라이)가 다 필드 안으로 들어간 데에 만족한다.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라이브 배팅 후 배팅 케이지에서 홈런 타구 3개를 만들어낸 것과 관련해서도 "어릴 때부터 늘 라인드라이브(직선타) 타구를 만드는 걸 목표로 훈련해왔다. 내가 설정한 목적과 방향성을 생각하고 쳤는데, 그 과정에서 홈런 타구가 나온 것뿐"이라고 했다.
이정후는 키움에서 그랬듯 순조롭게 팀에 적응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동료들은 이정후의 소셜 미디어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된 조카의 사진을 발견한 뒤 "혹시 결혼했냐", "너의 아기냐"라고 물으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일본인 타자 쓰쓰고 요시토모가 한국 취재진에 먼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것도 이정후의 친화력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이정후는 "쓰쓰고가 예전에 최지만(뉴욕 메츠) 형과 같은 팀에서 뛰면서 그 말을 배웠다고 한다. 같은 동양 출신 선수라 동질감이 느껴져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귀띔했다. 올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파블로 산도발과도 이날 처음 만나 반갑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그는 "산도발은 팀의 월드시리즈 3회 우승 때 좋은 기억을 안겨준 선수다.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선수랑 같이 뛰게 돼 기분 좋다"고 웃어 보였다.
빅리그 첫 시즌을 준비하는 이정후는 이제 본격적인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팀 내 입지는 탄탄하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이정후는 개막전 1번 타자"라고 일찌감치 예고했다. 또 "그는 매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편안해 보인다.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흐뭇해했다. 절친한 빅리그 선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이정후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페이스 조절만 잘하라"고 격려한 이유다. 이정후는 "시범경기에 맞춰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아직 많은 게 낯설고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앞으로 계속 신인 같은 자세로 해나가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다르빗슈에게 인정받은 고우석
지난해 KBO리그 우승팀 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고우석은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37)를 좋아했다. 첫 빅리그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다르빗슈는 학창 시절 내가 지켜보면서 꿈을 키우던 투수 중 한 명이다. 같은 팀에서 뛰게 돼 설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며 기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 캠프에 합류한 지 열흘이 흐른 2월 21일(한국시간)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만난 고우석은 "다르빗슈 선수와 그사이 대화를 많이 나눴다"며 배시시 웃었다. 아시아에서 온 열두 살 차 투수들의 대화 주제는 주로 서로가 던지는 구종이나 투구 그립과 연관돼 있다. 고우석은 "나는 다르빗슈에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그립을 알려달라고 했고, 다르빗슈는 내 커브 그립을 궁금해 했다. 첫 라이브 피칭을 마친 뒤엔 다르빗슈에게 내 투구가 어땠는지 의견도 물어봤다"고 귀띔했다.
고우석은 지난 18일 첫 라이브 피칭 때 샌디에이고 간판스타 매니 마차도에게 초구 커브를 던지다 홈런을 얻어맞았다. 스프링캠프에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고우석에게는 간담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르빗슈는 고우석에게 "MLB 캠프에서 처음 던진 공이다. 당연히 제구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며 "커브의 움직임은 무척 좋았다. 다음번엔 더 좋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힘을 불어넣었다. 다르빗슈가 인정한 고우석의 커브는 사흘 뒤 결국 빛을 발했다. 고우석은 이날 두 번째 라이브 피칭에서 칼 미첼, 브라이스 존슨, 매슈 바튼, 네이선 마토렐라 등 네 타자를 무탈하게 상대했다. 직구 구속은 첫날과 비슷한 시속 140㎞대 후반이었지만, 결과는 이전과 달랐다. 처음으로 고우석의 공을 받은 샌디에이고 주전 포수 카일 히가시오카는 직구,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중 커브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히가시오카는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미국 대표팀 멤버로 출전했던 베테랑 포수다. 지난해까지 7년간 뉴욕 양키스에서 뛰다 올해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그는 "고우석의 공이 꽤 좋았다. 초반 투구가 좀 더 공격적이었고, 던질수록 점점 움직임이 좋아졌다"며 "아직 캠프 초반이라 자신의 존을 찾아가는 단계일 텐데, (빅리그 레벨에서 통할 만한) 충분한 가능성을 봤다. 커브가 특히 날카로웠고, 슬라이더가 조금 더 휘어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가면 더 좋아질 것 같다"고 총평했다. 고우석은 이와 관련해 "포수가 '커브를 던질 때 공이 손에서 위쪽으로 떠오르면 좋지 않은데, (내 커브는) 그렇지 않고 직선으로 날아오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얘기를 해줬다"면서도 "타자를 잡는 데 그 공을 잘 활용해야 진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제구를 더 가다듬겠다"고 다짐했다.
고우석은 이렇게 매일 빅리거로 살아남기 위한 적응기를 거치고 있다. 틈틈이 영어를 공부하면서 동료들과 소통을 준비하고, 다가오는 실전 테스트를 대비해 컨디셔닝에 더 힘을 쏟는다. 첫 시즌을 앞둔 그의 당면 과제는 샌디에이고 불펜진의 일원으로 개막 로스터에 합류하는 것이다. 그는 2월 23일 한 차례 불펜 피칭을 하고 28일이나 29일쯤 처음으로 시범경기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다. 고우석은 "너무 빨리 시범경기에 나가는 것보다 첫 등판까지 여유가 생긴 게 더 나은 것 같다"며 "나는 불펜 투수라 구위가 중요하다. 직구 구위에 초점을 맞춰 꾸준히 훈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시범경기 출발이 좋은 김하성
김하성은 세 명 중 가장 먼저 시범경기 스타트를 끊었다. 2월 23일(한국시간) 피오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홈 경기에 5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두 타석을 소화했다. 성적은 1안타 1볼넷. 100% 출루다. 그는 2회 시범경기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려냈다. 다저스 강속구 투수 마이클 그로브의 초구 한가운데 직구를 받아쳐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깨끗한 안타를 만들어냈다. 1회 초 8점을 내주고 0-8로 뒤져 있던 샌디에이고 타선이 처음으로 때려낸 안타였다.
김하성은 이어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다저스 왼손 투수 알렉스 베시아를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골랐다. 베시아가 던진 공 4개가 모두 스트라이크존을 확연히 벗어나자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1루로 걸어나갔다. 두 번 모두 후속타 불발로 득점은 하지 못했고, 김하성은 5회 초 수비를 앞두고 교체됐다. 경기 후 만난 김하성은 "연습 기간이니까 첫 타석은 공격적으로 치려고 했고, 두 번째 타석은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으니 공을 좀 보자'고 생각했다"며 "계획대로 잘 됐다. 지난해 좋았던 부분을 유지하는 데 포커스를 맞춰서 시범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와 다저스는 오는 3월 20~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에 참가한다. 30일 미국에서 개막을 맞는 다른 팀들보다 열흘가량 먼저 정규시즌 개막전을 치러야 한다. 이 때문에 시범경기도 다른 팀들보다 먼저 시작했다. 김하성은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서 (서울시리즈 전까지) 컨디션 조율을 잘하면 될 것 같다"며 "서울로 가느라 캠프 기간이 짧아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새벽부터 나와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좀 힘든데, 그 기간이 줄어든 게 오히려 긍정적이다"라고 털어놨다.
김하성은 올 시즌부터 샌디에이고의 주전 유격수를 맡는다. 지난해까지는 잰더 보가츠가 유격수, 김하성이 2루수였다. 보가츠는 지난해 샌디에이고와 11년 2억8000만 달러에 계약한 대형 유격수다. 김하성이 그런 보가츠를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마이크 실트 감독은 포지션 변경 문제를 설득하기 위해 카리브해 인근에 있는 보가츠의 고향까지 직접 찾아갔다는 후문이다. 보가츠도 "구단의 결정을 이해하고, 김하성의 수비력을 인정한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하성의 팀 내 존재감이 그 정도로 커졌다.
김하성은 지난해 한국인 선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을 수상하면서 리그 정상급 내야 수비를 인정받았다.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될 가능성이 큰 그에게 유격수로의 포지션 변경은 분명한 호재다. 키움 히어로즈 시절 KBO리그 최고 유격수로 활약했던 터라 낯선 변화도 아니다. 그는 "익숙한 포지션이라 (시범경기 첫 경기부터) 오랜만에 소화해도 어색함 없이 편했다"며 "다만 송구 거리가 (2루보다) 다시 멀어져서 그 부분은 잘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김하성은 또 "시범경기라 해도 경기의 긴장감은 있어서 몸이 평소보다 확실히 피곤하다"면서도 "팬분들이 항상 많이 응원해주시고 이름도 크게 불러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치지 않고 컨디션을 잘 조절하면서 시범경기를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 애리조나=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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