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차 자격증 따고 솔라팜·마이닝 도전해 목돈 모아…새로운 커리어 가능하다는 사실 알리고파”
호주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시급이다. 시급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당히 높아 근무 시간 대비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비자가 잘 나온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호주 워홀 비자는 받는 시기도 없고, 사실상 심사도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호주 워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존재한다고는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이닝(광산), 건설현장(태양열발전소 도로공사 철도공사 등) 등에 ‘워홀러’ 입성이 시작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농장, 축산업 등에서 일하던 호주 워홀러들은 비정규직 최저 시급인 29달러 정도를 벌었다. 반면 마이닝에서 일하면 40달러, 많게는 60달러 이상까지 시급을 받는다. 호주달러가 약 880원 정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급 60달러는 한국 돈으로 약 5만 2000원에 달한다.
2020년도 이전에는 이런 고소득 직종에 대한 정보가 없어 대개 평균 주급이 낮은 농장이나 공장, 레스토랑, 카페 등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19년 워홀에 도전한 정다이 씨가 솔라팜, 마이닝 등에서 취업 과정을 겪고 이를 전파하면서 급속도로 호주 워홀러들의 일자리가 변하고 있다고 한다.
정다이 씨는 '호주눈누 워홀공략집'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또 블로그와 함께 ‘호주워홀 돈목적 광산 마이닝 건설 FIFO(Flight In Flight Out, 비행기로 출근, 퇴근)’라는 카카오톡 채팅방도 운영하며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했고, 주변 이력서를 봐줬다고 한다. 정 씨는 이 같은 자신의 일화를 담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올렸고, 조회수 약 75만이 기록될 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채팅방에서 1200명 이상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의 경험을 담은 전자책 출간을 준비 중인 정다이 씨는 “내가 호주에 처음 왔을 땐 정보가 정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농장, 공장에 가서 호주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며 최저시급,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았다. 워홀러라고 착취를 당하는 게 당연하다 여겨지던 시절 제대로 대우 받고 일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정보 공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곧 간호학과에 입학할 예정이고, 이후 호주 영주권을 받을 생각이다. 다음은 정 씨와의 일문일답.
—호주로 떠나게 된 계기는.
“대학교 졸업 후 사립교사로 근무하게 됐다. 당시 우연히 10년 차 선배 교사의 월급이 나와 50만 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 걸 듣게 되었다. 어떤 선배 교사는 ‘래미안 사는 남자에게 시집가라’ 같은 얘기를 했다. 아무리 농담이었어도 그 말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한번 계산을 해봤는데 대기업 다니는 친구 월급이 약 300만 원이라 치면, 교사는 약 200만 원 정도였다. 여기에 100만 원씩 생활비를 쓰고 나머지를 모은다 치면 한 달에 모으는 돈은 2배씩 차이가 벌어졌고, 대기업은 임금이 오르는데, 사립교사는 월급 오르는 폭이 작으니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가 더 커졌다. 나는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사고 독립을 하나 마음이 갑갑했다. 그래서 퇴사 후 2019년 만 스물일곱 살에 6개월 정도 워홀을 가서 돈도 벌고, 여행도 다니다 공립 교사 시험을 준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호주로 떠났다. 그런데 막상 호주에 가니 돈이 너무 잘 벌려서 1년 있기로 했고, 또 다음 해 1년을 연장하게 됐고, 또 1년을 연장하게 됐다.”
—처음 호주에 도착해서는 어떤 일을 했나.
“목화를 수확해 공장으로 가져와서 씨를 제거하고, 세척 후 포장을 했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해본 공장 일이었는데, 당시 워홀러들 사이에서는 코튼진(목화), 그레인(곡물), 와이너리(와인 농장)를 ‘워홀 3대장’이라고 불렀고 워홀 상위 소득 1%라고 할 정도로 돈 많이 주는 직업 중 하나로 꼽혔다. 이때 월급이 500만 원 정도였다. 먼지가 정말 많고 일도 힘들었지만 단순 노동이기 때문에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일해서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코튼진에서 일하다 솔라팜, 마이닝 쪽으로는 어떻게 갔나.
“코튼진은 시즌잡이라고 몇 개월 반짝하는 직업이라 4개월 일하고 끝났다. 그때 주변에서는 ‘코튼진이 호주에서 제일 돈 많이 주는 곳인데, 다른 데 가서 어떻게 일하냐’는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게 한국인 사이에서 마이닝은커녕 솔라팜이란 정보가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유튜브를 시작하고 솔라팜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내가 올린 영상 하나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가 ‘건설 장비 자격증 같은 걸 따보면 어떨까요’라고 주변에 묻자, ‘응, 한 번 해봐’라며 코웃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코튼진 일이 끝나고 시드니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자격증 3개를 더 따고 구직을 하기로 했다. 그때 두 군데 회사와 연결됐는데 주급이 1000달러 정도였다. 그곳에서 일을 했어도 됐지만 그런 비아냥을 듣고 나니 더 적게 버는 곳으로 가기 싫었다. 그래서 건설 쪽을 찾다 우연히 유럽인 워홀러 한 명이 솔라팜으로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글을 봤다. 그 밑에 솔라팜은 아시안은 안 뽑는다는 댓글도 있었지만, 나는 솔라팜을 무조건 갈 것이라고 결심했다.”
—정보가 아예 없는데 어떻게 갈 수 있었나.
“구글에 호주 전국에 있는 솔라팜을 검색해서 프로젝트를 알아내고 지도를 만들었다. 직컨(직접 접촉)을 하기 위해서 800km를 12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시골 솔라팜에 갔다. 새벽 5시쯤 솔라팜 현장 노동자들이 모이는 호텔 앞에 가서 매니저를 만나 ‘나 좀 뽑아 달라. 여기 오기 위해 800km를 달려왔다’며 건설 자격증을 보여주며 간절함을 보여줬다. 아침마다 호텔 앞에 2주 정도 매일 나갔고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잡부로 일하면서 지게차 자격증을 실제로 쓰면서 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솔라팜에서는 월급 500만~6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첫 솔라팜을 시작으로 다음 프로젝트 솔라팜이 광산사이트 안에 있는 곳이어서 광산 관련 정보를 많이 알 수 있었다.”
—현재 워홀러들이 광산 일을 희망한다고 들었다. 광산 특징은 뭔가.
“광산은 FIFO(Flight In Flight Out)라고 해서 비행기로 출퇴근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2~3주 동안 광산에서 일하고 일주일 동안 쉬는데 3주 동안 일할 때는 11~12시간씩 일한다. 이때 시급이 40달러에서 경력이 쌓이면 60달러 혹은 그 이상에 달한다. 광산 캠프에는 1인실 숙소 제공부터 헬스장, 수영장까지 잘 갖춰져 있고, 방 청소도 해준다. 밥도 뷔페식으로 나오고 요리사가 구워주는 스테이크도 제공된다. 호주 사람 입장에서는 가족과 집을 두고 FIFO로 일하는 것이 출장이고 단점이지만, 거주지에 제약이 없는 워홀러들은 3주 동안 집값도 아끼고 식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간 출장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광산에서 일하면서 3주 근무, 1주 휴식 스케줄로 한 달에 800만 원 정도를 벌기 시작했다. 이후 광산철도프로젝트, 광산물류센터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마지막 프로젝트인 광산 주변 파이프라인을 까는 프로젝트에서 1년 2개월 동안 지게차(포크리프트) 오퍼레이터로 일하게 되면서 주급이 약 5000달러를 넘어섰다. 이때 총 수입이 1년 2개월 동안 18만 달러가 넘었고 포크리프트, 살수차(워터카트), 스키드트럭, 텔레핸들러 등 장비들을 몰았다.”
—3주 근무 1주 휴식인 데다, 호주 광산에서 지게차 운전 같은 일이면 힘들지 않나.
“그동안 쉽다고 하면 ‘일종의 하이리스크 자격증인데 왜 쉽다고 하냐. 사고 나면 책임질 거냐’는 얘기를 듣고, 어렵다 하면 ‘이게 뭐가 어렵냐. 엔트리급(최하급) 기계인데’ 하는 말을 들어서 참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구나 느낀다. 다만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처음엔 힘들어도 나중엔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게차 운전 말고도 광산에는 200개가 넘는 많은 직업이 있다 보니 편의점 일과 비슷한 툴스토어맨(장비창고 관리업무) 같은 정말 쉬운 직무부터, 힘쓸 일은 없지만 고도의 안전센스를 요하는 대형 장비를 모는 오퍼레이터, 신체적인 능력치를 많이 요하는 오프사이더 등 모든 직업의 고충이 다르다. 다양하게 알아보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골라 커리어를 개발하는 걸 추천한다. 공통적으론 나는 다른 것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정다이 씨처럼 최근 호주 워홀러들이 과거 농장, 공장, 접시 닦이 등에서 마이닝, 솔라팜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유가 뭔가.
“아무래도 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농장 일을 안 해봐서 모르지만 3년 전 한국인 유튜브에서 ‘딸기 농장에서 일했을 때 주급으로 430달러 정도 번다’는 영상을 본 적 있다. 여기에 집 월세, 생활비를 쓰면 저축할 수 있는 게 없다. 반면 마이닝은 시급이 세고, 집 월세나 생활비도 훨씬 절약된다. 한 동생은 한국에서 대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 80만 원을 벌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여기서 3일이면 번다고 했다. 여기서 돈을 벌어 한국에 돌아가 대학교를 복학하면 알바하던 시간에 대외 활동도 하고 자기계발도 더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처음엔 돈에 혹해서 왔겠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목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시간을 벌고,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호주 워홀을 떠나는 이유 중 돈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 저축을 위해 호주 워홀러를 떠나는 사람에게 충고를 해주고 싶다면.
“영어를 무조건 공부해서 와야 한다. 영어가 안 된 상태로 오면 워킹홀리데이는 할 수 있지만 고소득 직종에 들어가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광산 입성을 할 때 우리가 경쟁하는 사람들은 워홀러가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영국 사람들 같은 영어권 국가 사람들이다. 한국은 호주 워홀 비자가 너무 잘 나와서 그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 다른 나라는 조건이 있어 이렇게까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호주에 와서 자격증만 딴다고 취업이 되지 않는다. 광산 입성을 위해 건설 경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에 최초 취업할 때부터 광산으로 가기 위해 어떤 경력이 필요한지, 어떤 일자리에서 일하는 게 유리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경력을 채우고 고시급으로 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이 벌 수 없지만 광산에 가서 경력이 쌓이면 그때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기에 돈을 목적으로 호주 워홀을 생각한다면 호주 워홀은 최소 2년이나 최대치인 3년 모두 채우는 걸 권장한다.”
—광산에서 얼마 정도 벌 수 있나.
“워킹홀리데이 총 기간은 2019년부터 2022년 총 4년이었고, 이 가운데 2년 7개월을 일했고 1년 5개월은 휴가 기간으로 보냈다. 가장 많이 벌었던 기간이 마지막 프로젝트 1년 2개월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세전 18만 달러를 벌었다. 세후로 치면 한국 돈 약 1억 2000만 원 정도다.”
—큰돈을 버는 호주 워홀러가 늘어나면서 가장 달라진 건 뭔가.
“전에는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단발성 경험이고 최대 3년 이후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다 보니 경력 단절이 크나큰 단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1억 원 이상 되는 학비만큼의 돈을 벌 수 있게 되면서 호주 대학에 진학해 자기가 원하는 커리어 개발을 하는 게 가능해졌다. 나는 앞으로 호주에서 많이 필요한 직업으로 꼽히는 간호대학을 가게 됐는데, 이곳을 졸업하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워킹홀리데이 때 일해본 광산 FIFO 간호사로 일하면서 미래를 설계할 예정이다.”
—주변에 호주 워홀을 추천하는 편인가.
“한국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에게 ‘호주가 최고니 다 버리고 호주 오세요’ 하려는 게 아니다. 얼마 전 ‘집에서 그냥 놀아요’ 하는 2030 청년들이 많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이 진짜 그냥 노는 게 아닌 걸 나는 안다. 한 고등학생이 아픈 아버지를 부양하며 2개, 3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뉴스도 보았다. 진짜 간절한 사람들, 과거의 나처럼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호주 워홀이란 건 그저 비자 이름일 뿐이다. 워홀러가 외국인 노동자라는 틀은 사실 호주에 오면 자신의 마음에만 존재하는 편견일 뿐이다. 이 비자로 자신의 학위나 커리어를 갖고 호주에서 엔지니어로 취업을 하거나 간호사로 취업을 한 사람도 있다. 나처럼 바닥부터 건설 일을 시작해 고소득 직종인 광산에 취업을 할 수도 있다. 워홀 비자는 합법적으로 호주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에 불과하다. 워홀은 20대라면 너무나 쉽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다. 이 비자의 제약과 권리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면 수백 가지 다채로운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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