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확산’ 식품 업종은 과열 경쟁 등으로 줄폐업…공간 임대업 등 새 업종으로 활력 지속
충남 천안의 한 무인 운영 카페에 붙은 안내문이다. 해당 카페 주인은 매출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운영상 어려움이 많아지자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최근 2~3년 사이 전국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무인 점포 업계가 요동치며 ‘세대교체’ 움직임이 감지된다. 무인 매장의 초기 확산세를 이끈 아이스크림 할인점과 밀키트, 카페 등 업종에서 폐업이 속출하는 반면 키즈카페와 골프장, 스튜디오, 옷가게 등 새로운 업종의 진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무인매장의 확산은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소비 수요의 확산과 소규모 창업 재테크 열기, 키오스크(무인결제기)와 CCTV 장비기술의 발달, 높아지는 인건비 부담 등 각종 시장 요인이 뭉쳐져 만들어진 ‘사회 현상’이다. 전국의 무인점포 수는 어림잡아 10만 개로 추산된다. 카페와 아이스크림, 밀키트 등 각 업종에서 수천 개 무인매장이 운영 중이다.
무인점포 분야 초창기를 아이스크림 할인점과 편의점, 밀키트, 카페, 도시락 가게 등 식품 업종이 주로 채운 것은 다른 업종에 비해 고난도 기술이나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고, 초기 투자금과 인건비 등 운영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연스레 작은 지역 안에 여러 개 무인 아이스크림점과 무인 편의점이 입점해 있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 됐다.
현재 4만 명 이상의 무인점포운영 자영업자가 가입해 있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과 무인 카페, 무인 밀키트, 무인 샐러드 가게 등 매물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급속도로 늘어난 매장 가운데 상당수가 매물로 바뀌어 시장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의 경우 프랜차이즈 가맹점 형태가 아니어서 운영이 상대적으로 쉽고, 무엇보다 초기 자본이 2000만 원 안팎으로 적게 드는 점이 많은 자영업자의 구미를 당겼다. ‘투잡’이나 노후수익 수단으로의 인식도 빠른 확산을 자극했다. 하지만 금세 포화 상태에 이르러 경쟁이 과열되고 점포당 매출이 하락하면서 폐업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소 1000개 이상의 무인 아이스크림점이 폐점하거나 업종을 전환한 것으로 추정한다.
무인 카페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 확산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서비스에 큰 차이가 있는 반면 가격 차별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이 발목을 잡았다. 무인 밀키트 매장의 경우 온라인 구매의 증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외식 수요의 부활 등 요인으로 고객의 발길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김종백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정책홍보팀장은 “무인카페는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가 늘면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분위기고 무인 밀키트 매장은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은 데다 수요가 줄어들며 매장 수도 줄어드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이어 “무인매장을 개업할 때 자영업자들은 인건비를 아껴 수익을 더 많이 내고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는데 몇몇 매장 운영자들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매출이 안 나온다는 고민을 많이 토로한다”고 전했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도 무인 가게 점주들이 폐업이나 매출 변화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무인 매장 업종의 무게중심은 각종 ‘생활밀착 업종’과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대여업’ 등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무인 문구점 ‘문구방구’, 무인 키즈카페 ‘꿀잼키즈룸’ 등을 운영하며 무인점포코치로 활동 중인 용선영 대표는 “식품 판매 업종은 이미 포화상태로 최근 무인 워터룸, 무인 키즈카페 같은 공간 임대업이 늘고 있으며 탁구장‧골프장‧테니스 연습장 등 무인 실내 스포츠 매장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과 달리 변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더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반려동물 관련 무인 매장도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가와 지하철 역사 내 상가 등에선 최근 ‘무인 프린트(인쇄) 매장’ 증가세가 눈에 띈다. ‘일요신문i’가 서울교통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서울 지하철 1~8호선 역사 내에 운영 중인 무인점포는 총 28개소로, 이 가운데 무인 프린트 매장이 23곳으로 82%를 차지한다. 서울 지하철 역사 안에 2020년까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3년 사이 빠르게 증가한 결과다.
무인 매장 업종이 더욱 다양해지는 현상은 업계의 생명력이 한동안 지속될 것을 시사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초기 과열 경쟁에서 밀려나 폐업에 이른 업주 사례도 많지만 무인점포 모델 자체는 자영업계의 대세로 분명히 자리를 잡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용선영 대표는 “프라이빗(개인적)한 것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의 성향 때문에 무인매장에 대한 수요는 계속 유지될 것이고 대기업들도 무인점포를 늘리는 추세”라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MZ세대나 투잡을 원하는 직장인, 노후 대비를 원하는 중장년층, 경단녀 등 다양한 계층을 중심으로 무인 창업이 계속 인기를 끌되 소비자의 주목을 받는 종목은 계속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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