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 샘 올트먼 대표가 만든 ‘홍채 코인’으로 다른 접점 없어…수익 모델·사용처 부재 탓 ‘밈코인’ 전락 우려
월드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탄 건 한국시간으로 지난 2월 13일부터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13일 3400원에 시작했던 월드코인 가격은 지난 25일 1만 2960원까지 올랐다. 월드코인 정식 출시 당시인 지난해 7월 빗썸 기준 전고점인 1만 4440원에 근접한 것이다. 월드코인 가격 상승 요인으로는 오픈AI의 소라 출시가 꼽힌다. 소라의 공개 시점은 지난 15일(현지시간)인데, 이 시점에 맞물려 월드코인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월드코인과 소라 간 연계성은 없다. 월드코인은 ‘오브(Orb)’라는 홍채 인식 기구를 통해 개인의 홍채를 데이터화해 온라인 정보가 실제 인간이 제공한 정보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소라는 인공지능(AI) 서비스로, 간단한 명령어만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의 동영상을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오픈AI의 발표에서도 소라 출시 발표만 있었을 뿐 월드코인 활용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드코인은 오픈AI에서 개발된 게 아니다. 월드코인은 TFH(Tools for Humanity)가 개발하고, 월드코인 재단이라는 비영리법인에서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오픈소스 프로토콜 프로젝트다. 베타 서비스를 진행한 이후 지난해 7월 24일 공식 런칭했다. 샘 올트먼 공동대표는 월드코인 개발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샘 올트먼 공동대표가 오픈AI와 월드코인 간 유일한 접점이다. 샘 올트먼 공동대표가 몸 담고 있는 오픈AI의 호재로 월드코인의 가격이 폭등한 셈이다.
이 같은 가격 변동에 일각에서는 월드코인이 샘 올트먼 공동대표의 밈코인(Meme Coin)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밈코인은 특별한 목표나 기술력 없이 인기 캐릭터를 앞세운 재미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암호화폐를 의미한다. 대표적 밈코인은 도지코인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언급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암호화폐가 돼 버렸다.
월드코인 역시 샘 올트먼 공동대표나 그가 몸담고 있는 오픈AI 행보에 따라 가격에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11월 17일 샘 올트먼 공동대표를 해임한 바 있다. 이때 월드코인의 가격은 17~18일 이틀 동안 27% 하락했다. 그러나 샘 올트먼 공동대표 해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셌고, 바로 다음 날인 19일 오픈AI 이사진 일부가 샘 올트먼 공동대표 복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월드코인 가격은 상승 전환했다. 결국 샘 올트먼 공동대표는 해임 닷새 만인 지난해 11월 22일 오픈AI에 복귀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월드코인 가격은 26일까지 상승했다. 18일 저가 기준으로는 56% 상승한 수치였다.
월드코인의 사용처가 현재로서는 없는 것도 밈코인 전락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월드코인은 홍채 수집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뿐 홍채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향후 인공지능 시대의 보편적 기본 소득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거시적인 목표만 있을 뿐이다. 특별한 사용처가 없다 보니 월드코인은 상장된 거래소에서만 거래되고 있다.
수익 모델도 없다. 월드코인 이용자는 자기 홍채를 등록하면 디지털 신원 증명인 월드 ID와 월드코인을 지급받을 수 있다. 월드코인은 세 차례 투자 유치로 받아낸 약 235만 달러(약 31억 원)로 이용자들에게 암호화폐를 지급하고 있다. 월드코인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가입자에게 매주 2달러의 보편적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수익 모델을 마련하는 게 필수인데, 월드코인이 이용자에게 암호화폐를 지급할 재원 마련 방법은 현재로서는 투자 유치뿐이다.
문제는 월드코인을 향한 비판 시각이 거세지고 있어 사업 운영에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코인은 암호화폐 지급을 미끼로 개인 데이터를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월드코인이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던 시기에 저소득층이 많은 개발도상국을 위주로 데이터를 수집했던 것.
미국 MIT의 기술 분석 잡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월드코인은 2022년 3월까지 24개국에서 45만 개의 홍채를 인식했다. 이 중 14개 국가가 개발도상국이었으며, 8개 국가는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 이에 대해 월드코인 측은 “개발도상국은 금융거래가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코인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전략적으로 기회를 본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또 홍채는 매우 민감한 개인 정보임에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해 유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월드코인 측은 홍채를 암호화해 보관하기 때문에 유출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월드코인 정식 출시 당시 “홍채 인식은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며 “홍채 인식 기구에 인증되지 않은 사용자가 기구의 기능을 무단으로 사용하도록 몰래 백도어(Backdoor)라도 설치하면 가짜 신원도 생성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이유로 복수 국가에서는 월드코인 규제를 시작했다. 케냐는 월드코인 프로젝트의 활동이 케냐 국민에게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활동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사업 운영을 규제하고 있다.
각국의 규제로 이들의 가입자 수는 당초 목표에 한없이 부족한 상태다. 월드코인의 가입자 수 목표는 지난해까지 10억 명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월드코인 홈페이지에 따르면 2월 29일 오전 10시 기준 가입자 수는 약 383만 명으로 나타났다. 가입자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사용처를 찾아 이를 수익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가상자산 정보 플랫폼 ‘쟁글’ 리서치 ‘월드코인과 프렌즈테크: 진일보한 DApp이란 이런 것!’에서는 “월드코인은 비즈니스 모델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고, 신규 유저 유입과 유동성에 의존도가 높아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가시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 외에도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된 가상자산이 투기와 폰지 사기의 수단으로 악용될 리스크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수익모델이나 사용처가 없기 때문에 월드코인 프로젝트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월드코인의 밈코인 전락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고 틀린 주장은 아니다”면서도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가입자 수만 어느 정도 확보하면 유의미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훗날 AI가 활성화한다면 사람과 AI를 구분해야 하는 시기가 분명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월드코인 프로젝트는 둘을 구분하는 주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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