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자들 직접 찍은 영상 올리고 성희롱성 대화…“10대들 쓰는 앱 깔아라” 미성년자 유인법까지 공개
#또 다른 불법 촬영물 공유방
3월 6일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A 씨는 VIP방 외에 ‘도촬방’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불법 촬영물 공유방도 운영 중이다. VIP방에서 온라인상에 떠돌던 성착취 영상이 판매됐다면 이곳에선 참여자가 공공장소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이 공유됐다.
참여자 간 대화가 불가능했던 VIP방과 달리 대화가 가능한 이 방에서는 왜곡된 성관념을 기반으로 한 여성혐오적 발언이 난무했다. 대상은 고작 11~14세의 어린이였다. 한 참여자가 “자신의 친구”라며 여성의 신체 사진을 올리자 “몇 살이냐”는 질문과 함께 피해자를 향한 품평 섞인 성희롱이 쏟아졌다. 사진을 올린 이가 “중1”이라고 답변하자 또 다른 참여자는 “친구를 어떻게 꼬셨냐”며 “개인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안 된다”고 아쉬워했다. 최초 유포자에게 더 많은 사진을 받거나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받으려 한 것으로 보였다.
성착취물만 유포된 것이 아니라 오픈채팅방을 이용해 미성년자를 유인하는 방법도 공유됐다. 실제로 오픈채팅방은 새로운 성범죄 유인 경로로 대체되고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진(김지선·최지선·성유리·홍영은)이 여성가족부 의뢰로 수행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성매수 범죄가 발생하는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감소한 반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전체의 12.1%로 증가했다. 2023년 9월 서울시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유인에 이용된 플랫폼 조사 결과 역시 카카오톡(40.6%)의 비중이 가장 컸고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37.5%)과 엑스(34.4%)가 그 뒤를 이었다.
취재가 진행되던 내내 방에 상주하며 성희롱성 발언을 이어가던 참여자 B 씨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OO 앱을 깔아라. (카카오톡의) 오픈채팅방 백날 해봐야 소용없다”며 “OO은 열두 살짜리도 한다. 다 10대다. 이걸로 꼬셔서 성관계를 하라. 7~10시가 피크타임”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형성되자 참여자들은 하나둘씩 해당 앱을 깔기 시작했다. 설치화면을 찍어 올리거나 말을 걸었다며 대화창을 인증하기도 했다. 접근은 쉬웠다. 처음부터 10대를 겨냥해 만들어진 앱이다 보니 성인인증 절차는 아예 없었다. 실제로 도촬방에서 언급된 앱에 가입해 본 결과, 휴대폰 번호만 인증하면 10대가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했다. 나이는 최대 19세까지 선택할 수 있었다. 성인이 성범죄를 목적으로 가입한다고 해도 가입 자체를 차단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B 씨는 이 점을 이용해 또래인 척 접근하라는 말과 함께 초등학생들이 오픈채팅방에 걸어두는 제목, 어떤 식으로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는지 등의 방법을 공유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다수 맡아온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도촬방의 대화를 본 뒤 “디지털 성범죄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위축된 사람일수록 온라인에서의 자기과시와 인정 욕구가 더욱 심하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여성이나 자신보다 약자인 어린 아동을 멸시하면서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 번의 전과가 있음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는데 부끄러워한다기보다는 다들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고 있다. 그가 하는 말의 사실 여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현실에서는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이 방에서만큼은 자신을 우월하게 해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소아성애자가 있냐”
참여자들은 대화방에 경찰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버젓이 범행을 이어갔다. 앞서의 B 씨는 “여기에 소아성애자가 있냐”고 물은 뒤 “11살”이라는 말과 함께 영상 하나를 올렸다가 삭제했다. 참여자들이 관심을 주자 신이 난 듯 “이번엔 12살”이라며 다른 영상을 게재했다가 빠르게 삭제했다. 자신이 올리는 것들은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미성년자를 성착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청물(아동청소년성착취물)은 빨리 삭제해야 한다. 여기 1500명 가운데 분명 매국노 새끼(경찰을 지칭)가 잠입수사 중일 수도 있다”며 영상 게재와 삭제를 반복하며 증거를 인멸했다. 자신의 전과 이력을 들먹이며 경찰에 잡히면 한 번 다녀오면 된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정말 검거될 것이라는 염려는 없어 보였다.
일요신문의 ‘[단독] 51번까지 증식한 ‘VIP n번방’…끝나지 않은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통 실태’ 보도 이후 자취를 감췄던 A 씨 역시 이틀 만에 돌아왔다. 그는 “유료방은 살아있고 무료방만 삭제됐다. 내일 아이디를 다시 만들겠다”며 활동을 재개할 것을 알렸다. 다른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사람이 많아서 굳이 안 잡는다”며 자신들은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부산경찰청은 VIP방에 대한 제보를 받고 수사를 검토 중이다.
최근 법원은 불법 성착취 영상물과 피해자 신상정보를 공유한 현역 군인 장 아무개 씨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장 씨가 유포한 영상은 VIP방에서 유포되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장 씨는 휴대전화에 망원렌즈를 달아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여성과 어린이를 불법 촬영하기도 했다. 현재 도촬방에서 행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형태의 범죄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흥미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화방을 운영했다”고 판시했다. 장 씨와 함께 영상을 올린 공범 역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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