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2년 동안 탈탈 털었지만 혐의점을 밝혀내지 못했다며 특검법 반대 입장을 내세웠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김건희 특검법 국회 재표결을 앞두고 윤 대통령 재의요구 이유를 설명하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은 지난 (문재인) 정부 검찰이 이미 2년 넘게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강도 높게 수사하고도 김건희 여사에 대하여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하지 못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검찰이 부실 수사를 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에 대해 2년이 넘도록 소환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진행 중인 권오수 전 회장 등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을 보면 검찰이 김건희 여사에 대해 계좌추적 등 기본적인 수사도 진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권오수 전 회장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들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1심 재판은 2021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에서 열렸다. 공판에서는 김건희 여사 명의 미래에셋대우(현 미래에셋증권) 계좌의 관리 권한이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2022년 12월 2일과 9일 진행된 민 아무개 씨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 측 증인신문 기일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민 씨는 2차 작전 ‘주포’ 중 한 명인 L 씨 처남이자, L 씨가 대표로 있는 B 인베스트 주식투자 이사였다. 검찰은 권 전 회장과 L 씨를 주가조작 작전의 머리로, 또 다른 ‘주포’ 김 아무개 씨와 민 씨를 손발로 보고 있다. 민 씨는 지난 2021년 말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2022년 11월 귀국해 구속기소됐다.
검사 “김건희 명의 미래에셋 계좌에서 6만 주, 4만 주 총 10만 주 매수주문이 나온다. 12시 30분에 체결 직후 증인이 김 씨(또 다른 주포)에게 ‘10만 주 받았음. 두 사람에게 5만 주씩 뺐었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증인 또는 B 인베스트에서 김건희 명의 미래에셋 계좌를 사용했기 때문에 5만 주씩 뺐었다고 문자 보낸 것 아니냐.”검찰은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권 전 회장이 2차 작전세력에게 시세조종을 의뢰하며 맡긴 일종의 ‘담보’라고 봤다. 하지만 민 씨 등 피고 측에서는 이러한 의심을 부인했다.
민 씨 “문자메시지는 저렇게 돼있는데 내가 김건희 씨 계좌를 B 인베스트를 통해 매매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억도 없고 모르는 일이다.”
(2022년 12월 2일 공판 중)
검사 “(김 여사) 미래에셋 계좌를 담보로 제공 받은 것이냐.”검찰은 2차 주포들이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로 파일명 ‘김건희’ 엑셀 파일을 내밀었다. ‘김건희’ 엑셀 파일은 B 인베스트 주식투자 사무실을 검찰이 압수수색하다가 직원 A 씨 노트북에서 확보한 것이다.
민 씨 “아닙니다.”
(중략)
검사 “5억 원 상당 들어있는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대우 계좌를 그대로 받아서 가지고 있다가 증인이든 김 씨든, B 사든 본인들이 (블록딜로) 다 팔아서 계좌주(김 여사)가 화를 내는 상황이다.
민 씨 “담보를 받는다는 건 처분권한이 나에게 있어야 손실이 났을 때 리스크를 해지할 수 있는데, 다른 명의의 계좌를 가져와서 그걸….”
검사 “이거 누가 처분했나. 처분권한 누구한테 있었나. 문자메시지상으로는 (또 다른 주포인) 김 씨가 처분한다.”
민 씨 “내 말은 주식의 매매를 떠나서 계좌에서 현금 인출을 누가할 수 있느냐는 거다. 우리가 담보를 받았다고 검찰이 주장하는데, 그 상황에서 김건희 씨가 그 돈을 찾아가 버리면 우리가 담보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
(2022년 12월 9일 공판 중)
검사 “(A 씨) 컴퓨터에서 나온 (김건희) 엑셀 파일이다. 맨 위에 보면 ‘인출’이라고 해서 ‘대우계좌 9억 6202만 7758’이라고 돼있다. 김건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내역을 보면 2010년 12월 15일 예수금 잔고가 9억 6202만 7758원이다. 12월 16일 5억 원, 12월 17일 4억 6202만 7758원 합계 전액이 인출됐다. 여기 적혀있는 인출금액과 똑같다.재판부는 파일에 적힌 ‘12%’ 의미에도 주목했다. 엑셀 파일 마지막 두 줄을 보면 1월 10일과 11일에 각각 3020만 원과 1200만 원이 기록돼있고, 뒤편에는 12%가 적혀있었다. 2022년 8월 26일 공판에 A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재판장이 “증인(A 씨)이 직접 작업한 것이기 때문에 표 안 계산식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 이 셀의 의미가 뭔지 알 것 같다. 1월 10일에 3020만 원 12%, 1월 11일 1200만 원 12%. 이게 무슨 뜻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A 씨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 다음에 ‘3000만 원 대우계좌’ 보이나. 이것도 2011년 1월 10일 미래에셋대우증권에서 3000만 원 현금으로 인출됐다. 그 밑에 잔고 ‘대우계좌 1억 4334만 1664’ 보이나. 이날 도이치모터스 주식 유가증권 잔고가 29만 1105주였다가 토러스증권(현 DS투자증권)으로 26만 6105주를 이체출고하고, 나머지 남은 2만 5000주를 2011년 1월 12일쯤 모두 판매해서 예수금 잔고가 정확히 1억 4334만 1664원이 됐다.
이 내용이 직원 컴퓨터에 작성됐다. 증인 또는 B 인베스트, (또 다른 주포) 김 씨가 김건희 명의의 토러스 계좌, 미래에셋대우 계좌 인출내역까지 관리하면서 권한까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 씨 “기억에도 없고 잘 모르는 내용이다.”
(2022년 12월 9일 공판 중)
금융업계에서는 수수료나 이자일 것으로 추정한다. 첫 번째 가설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세력에 지급할 수수료가 12%라는 것이다. 반대로 김 여사가 이들에게 돈을 빌려줬고, 그 대가로 12%의 이자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검찰은 재판부의 의문에도 공판 과정에 엑셀 파일에 적힌 12%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공판 과정에서 김 여사 명의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관리권한, 담보 성격 여부, 엑셀 파일 속 12%의 의미 등을 두고 공방이 이뤄진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금추적만 제대로 해도 불법 수익금의 최종 도착지를 찾을 수 있고, 돈의 성격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내역을 보면 2010년 12월 예수금 9억 6000여만 원 전액이 인출됐다고 밝혔다. 2차 작전 주포들이 본인들은 인출 권한이 없었음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 돈은 김 여사 측에서 인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내역에도 어느 은행이나 증권사 계좌로 빠져나갔는지 명시돼있다. 이 미래에셋증권 계좌에서 인출된 돈이 추가적으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확인하면 작전세력과 김 여사의 관계가 더 명확히 드러났을 텐데, 이를 검찰이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거 금융수사를 전담했던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금융 사건에서 돈의 흐름은 수사의 기본이다. 검찰은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좌를 압수수색하는 등 확보해 들여다보면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공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혐의를 부인해도 명확한 증거를 들이밀고 반박해야 한다”며 “그런데 도이치모터스 재판에서는 김건희 계좌에서 자금흐름 추적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피고인들이 혐의를 부인해도 증거를 내밀지 못하고 말로 공방만 주고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22년 4월 22일 열린 ‘1차 작전 주포’ 이 아무개 씨에 대한 증인신문 공판에서는 검찰이 ‘계좌추적 거래내역 중 일부’를 증거로 제시하며 이 씨와 사건 관련자 사이에 돈을 이체한 내용을 추궁한다. 그동안 설명한 김 여사 사례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여권은 ‘검찰이 2년 동안 김 여사를 탈탈 털었지만 혐의점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지만, 실상 검찰이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금융수사의 기본’인 은행계좌 조회조차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앞서 일요신문은 김 여사와 함께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연루된 모친 최은순 씨에 대해서도 검찰이 자금추적을 위한 은행계좌 조회를 하지 않은 정황을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단독] 계좌추적 왜 안했을까…‘도이치 주가조작’ 최은순 관여 정황). 장모 최 씨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를 실시하지 않았는데, 김 여사에 대해서는 엄정한 사법의 칼날을 들이밀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일요신문은 서울중앙지검에 김 여사 수사 관련 질의를 보내고,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