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청자 공략으로 S급 배우 몸값 치솟아…반면 드라마 편성 반토막에 ‘노는 배우’도 수두룩
배우와 드라마 제작사. 한 배를 탄 이들이다. 제작사가 없으면 드라마도 없다. 배우가 없어도 드라마는 없다. 그런데 이처럼 같은 침대를 쓰는 이들이 서로 딴소리를 한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을까. 답부터 얘기하자면 둘 다 맞다. 무슨 상황일까.
#“회당 10억 원”의 진실
넷플릭스는 2023년 “K콘텐츠에 향후 4년 동안 25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치다. 하지만 그들이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 등 한국 배우와 제작진이 만든 콘텐츠로 올린 성과를 고려할 때 ‘합리적 결정’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편당 수백억 원의 개런티를 받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고려했을 때, K콘텐츠는 여전히 가성비 좋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019년 창궐한 코로나19는 K콘텐츠 시장에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OTT 플랫폼을 타고 ‘집콕’ 생활을 하는 글로벌 구독자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숱한 히트작이 쏟아졌고, K콘텐츠와 거기에 출연한 배우들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는 곧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엄밀히 따져, 현재 회당 10억 원 이상 되는 몸값을 부를 수 있는, 받을 수 있는 한국 배우는 단 한 사람뿐이다. ‘오징어 게임’의 주역인 이정재다. 그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연을 맡을 정도로 급성장했고 현재 촬영 중인 ‘오징어 게임2’의 회당 출연료는 10억 원을 상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해외 인지도와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이정재가 그 정도 개런티를 받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업계 내에서는 또 다른 배우가 한 작품에 캐스팅되며 “회당 10억 원”을 불렀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이 배우의 개런티는 5억 원 안팎에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호가가 곧바로 실거래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10억 원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배우에게는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명 스포츠 스타가 연봉 수백억 원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만큼의 ‘돈값’을 해내느냐다.
배우 김고은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가 농담처럼 ‘돈값 해야지’라는 말을 늘 하는데, 이건 정말 진심이다. 배우로서 받는 페이에 대한 정말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영화 ‘파묘’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주며 개봉 2주도 되지 않아 6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톡톡히 제 몫을 했다. 결국 ‘얼마를 받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얼마나 큰 수익을 내느냐’가 중요하다.
#“드라마판이 개판이다”의 진실
요즘 배우들의 신세 한탄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배우 김지석은 최근 JTBC 예능 ‘배우반상회’에 출연해 “나는 주연, 조연, 조조연 상관없다. 좋은 작품이면 무조건 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잘될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다. MBC 예능 ‘나혼자 산다’로 주목받은 이장우 역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요즘 드라마판이 개판이다. 너무 힘들고 카메라 감독님들도 다 놀고 계신다”면서 “방송가 황금기에 있던 자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제가 한때는 ‘주말극의 아들’이었는데 요즘엔 주말드라마 시청률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가장 현실적으로 현재 상황을 짚은 배우는 오윤아였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출연할 작품이 없다. 요즘은 드라마 편성 수가 반으로 줄어서 이미 찍어 놓은 드라마도 편성을 못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제작 편수도 줄어들었고, 편성 수도 감소했다. 이미 촬영을 마쳤지만 공개를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자본이 넘치던 시절, 제작비를 수급해 이미 다 촬영해 놓았는데 정작 사가는 곳이 없다. 왜일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해외 OTT 등의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고, 티빙과 웨이브 등 토종 OTT는 적자폭이 크다. 돈 주고 사서 걸어도 수익을 내지 못하니 아예 제작이나 편성 편수를 줄인 셈이다.
결국 배우와 제작사, 모두에게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 콘텐츠 시장이 활황일 때, 제작사는 큰 고민 없이 고만고만한 콘텐츠를 찍어냈다. 그리고 찾는 곳이 많아지자 배우들은 앞다퉈 몸값을 올렸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했고, 그에 따라 경쟁 속에서 값을 올린 전형적인 경제 논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불황이 되자, 제작을 할 수도 없고 배우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몸값까지 크게 내리진 않는다. 없는 살림을 털어 드라마를 만들려는 제작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부익부 빈익빈이 반복된다. 편수를 줄여도 유명 작가, 배우가 참여한 작품은 제작된다. A급을 넘어 S급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찾는 곳이 많은 S급 배우나 작가들의 몸값은 더 올라간다. 그러니 한 편에서는 ‘10억 원 요구는 너무하다’고 하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출연할 작품이 없다’고 한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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