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작진·당사자 협상 없이 돌연 통보…문재인 시계 논란 속 남희석으로 교체 ‘정치성향 탓’ 수군
김신영은 최근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관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앞서 34년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 고 송해의 자리를 이어받은 지 꼭 1년 5개월 만이다. 진행자로 발탁될 당시 여러 후보를 제친 젊은 여성 MC로 주목받았고, ‘전국노래자랑’을 오래도록 이끌 차세대 진행자로도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불과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오는 3월 9일 인천 서구편 녹화가 마지막이다.
‘전국노래자랑’의 MC 교체는 김신영은 물론 프로그램 제작진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이뤄져 논란을 키우고 있다. 방송가의 관례에 배치되는 일방적인 통보라는 지적이다. 제작진 역시 ‘김신영 하차’ 결정을 통보받은 뒤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신영의 소속사 씨제스스튜디오 관계자는 “제작진이 (KBS로부터) MC 교체 통보를 받고 당황해 연락이 왔다”며 “불과 일주일 전에 마지막 녹화 일정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김신영의 하차 통보가 알려지자마자 후임 진행자도 확정됐다. 방송인 남희석이 김신영의 뒤를 이어 3월 12일 전남 진도 녹화를 시작으로 프로그램을 이끌 예정이다. 이미 후임 진행자를 선정하고 김신영에게 하차를 통보한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 진행자의 하차와 후임자 결정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진 ‘전국노래자랑’ MC 교체는 당사자들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단행돼 그 배경에 의혹이 증폭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적인 배경’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힘을 얻는다. 특히 KBS는 종합 일간지 논설위원 출신인 박민 사장이 2023년 말 취임한 직후 시사 프로그램을 하루아침에 폐지했고, 인기리에 방송하던 여성 진행자의 예능프로그램도 잇따라 폐지했다. 프라임 타임 뉴스 진행자를 예고 없이 교체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방적인 통보에 의구심 증폭
김신영은 2022년 10월 16일부터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왔다. ‘국민 MC’로 인정받은 고 송해가 1988년 5월부터 무려 34년 동안 지킨 자리를 김신영이 이어받으면서 여러 화제를 만들었다. 당시 송해는 고령을 이유로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후임을 놓고 국내 유수의 방송인들이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KBS는 ‘프로그램 쇄신’과 ‘젊은 에너지’ 등을 이유로 김신영을 전격 발탁했다. 여러 세대와 전국 곳곳의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호감형 방송인’으로 김신영이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로 시청층을 확대하려는 제작진의 복안도 있었다.
KBS는 김신영을 진행자로 발탁한 뒤 대대적으로 알렸다.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노래자랑 최초 여성 MC 발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KBS는 김신영을 내세워 프로그램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전략과 각오를 강조하기도 했다. 김신영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책임감과 각오를 밝혔다. ‘전국노래자랑’ 출연을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신영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시청자들이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청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하차 통보’를 통해 김신영의 자리를 남희석에게 넘기면서도 KBS는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의구심을 넘어 논란이 증폭되자 KBS는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입장문을 보내고 “고 송해에 이어 젊은 에너지로 이끌어준 김신영에게 감사드리며, 새로운 진행자 남희석을 향한 응원 부탁드린다”고 짧게 밝혔다. 제작진과 상의 과정도 없이 단행한 진행자 교체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은 ‘일방통행’이다.
#‘문재인 시계’ 자랑 때문? 정치적인 해석 분분
일각에서는 김신영의 하차 통보에 정치적인 배경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새롭게 진행을 맡은 남희석이 여권 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실제로 남희석은 2023년 12월 고향인 충남 보령시에서 강연을 열었는데,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워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장동혁 의원의 부인이 참여했다. 올해 초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박성민 의원의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한 바 있다.
하지만 오랜 방송 활동으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남희석을 특정 정치 성향의 인사들과 엮어 바라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희석은 야권 인사들과도 두루두루 친분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에선 김신영의 ‘정치 성향’이 이번 하차 통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2018년 김신영이 SNS를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문재인 시계’를 착용한 사진이 발단이 됐다. 당시 김신영은 “맨날 차고 다녀야지”라는 글도 남겼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 같은 내용이 확산하자, 보수 성향의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은 “특정 집단은 김신영이 ‘문재인 시계’를 자랑해서 잘렸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진짜 황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국에서 일한 경험을 들며 “전날 교체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며 “(김신영처럼) 일주일 전 교체 통보는 양반”이라고 말했다. 김신영의 하차에는 어떠한 정치적인 배경이 없다는 전여옥 전 의원의 주장은 마치 KBS를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면서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현재 KBS 시청자권익센터에는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반대하는 의견부터 교체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달라는 요구가 줄을 잇고 있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상황을 지적하면서 KBS와 김신영이 어떤 계약 조건을 맺었는지 공개하라는 요청까지 잇따른다. 김신영 하차 이유에 대해 답해달라는 청원에는 이미 1000명 이상의 시청자가 동의했다.
이에 KBS 7일 시청자 의견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시청률 하락”을 주요 기준으로 김신영의 교체를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KBS는 “시청자 민원을 통해 프로그램 경쟁력 하락에 대한 우려 역시 제기됐다”며 “프로그램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제작진은 다양한 특집을 기획하는 등 김신영과 함께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오랜 세월 프로그램을 사랑한 시청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고가 붙지 않는 KBS 1TV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채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송해가 진행하던 2019년부터 2020년까지 1년간 수도권 평균 시청률(9.4%)과 김신영이 진행한 1년 5개월간의 평균 시청률(4.9%)을 수치로만 단순 비교해 진행자에 하차 통보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과정을 두고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하차 통보가 알려진 직후 소속사를 통해 “마지막 녹화까지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는 입장을 냈지만 그 외의 발언은 삼가고 있다. 하지만 상당히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신영은 급성후두염 진단을 받고, 자신이 진행하는 MBC FM4U ‘정오의 희망곡’의 6일과 7일 생방송에 불참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김신영은 현재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증상을 겪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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