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찻잔 속 태풍 “실제 투표 양당 쏠림, 두고봐야”…등록 정당 56개·창당 준비위 12개 달해 ‘난립’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22대 총선의 비례대표 배분 방식과 관련해 고심을 거듭하다가 병립형 선거제 회귀 대신 현행 준연동형제 유지를 선택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비례대표로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채워주는 방식이다. 지역구 당선이 어려운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다만 ‘지역구 5석 이상’ ‘정당득표율 3% 이상’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비례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거대 양당은 비례 의석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과거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준연동형제를 처음 시행하려 하자 강하게 반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민주당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그러면서 준연동형제 취지는 도입부터 무력화됐다.
지난 2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번 총선에서 비례의석은 한 석이 줄어 46석이 됐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창당을 선거제 확정 전부터 일찌감치 준비했다. 2월 23일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앞으로 국민의미래 선거운동을 제일 앞장서서 하게 될 한동훈이다. 국민의미래는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바다. 사실상 다른 말이 아니다”라며 두 정당이 ‘한 식구’임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새진보연합·진보당·시민사회와 손을 잡고 통합형비례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재명 대표는 3월 3일 창당대회 축사에서 “나라의 희망과 미래를 향해 뜻을 같이 하는 모두가 이번 총선에서 손을 맞잡고 이겨내는 출발점이 바로 더불어민주연합의 출범”이라고 강조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당대표를 맡은 ‘조국혁신당’도 같은 날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조국 대표는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검찰독재의 강’이며 ‘윤석열의 강’”이라고 주장했다.
제3지대 ‘빅텐트’를 펼쳤다가 열흘 만에 갈라선 이준석 대표와 이낙연 대표는 각각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를 이끌고 있다. 이들 정당은 주요 현역 의원들이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례대표에서 의석을 노리는 모습이다.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소나무당을 옥중 창당했다. 이외에 기존의 녹색정의당도 지역구보다 비례의석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용 정당이 난립 양상을 보이면서 비례의석이 어떻게 배분될지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특히 이번 총선은 지난 2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비례의석이 한 석이 줄어 46석이 돼 경쟁이 더 치열하다.
당초에는 이준석 이낙연 여야 전직 당대표들이 거대 양당을 탈당해 세운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총선의 ‘태풍의 눈’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신당을 준비할 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0%대 중반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반 이슈몰이 이후 점차 국민들 관심에서 멀어지더니 현재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있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지난 3월 5일부터 6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각각 응답률 2.9%와 3.0%를 기록했다. 이어 한국갤럽이 지난 3월 5~7일 사흘간 실시한 ‘비례정당 정당 투표’ 여론조사를 봐도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응답은 5%와 2%에 그쳤다. 현 상황을 보면 이번 총선에서 비례의석을 한 석나 건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인 셈이다.
제3지대에 몸담았던 한 전직 의원은 “이낙연 이준석 대표는 기존 기득권을 타파하고 혁신하겠다고 거대 양당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런데 신당을 세우고 개혁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설 연휴를 앞두고 지지율이 정체되자 외연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전격 합당에 합의하고, 서로 주도권을 두고 다투다 다시 갈라서면서 구태의 모습을 보여줘 최악의 수가 됐다. 특별한 반등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두 정당의 지지율 정체는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비례대표 선거도 지난 2020년 총선과 비슷한 결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1대 총선 비례 선거의 경우 미래한국당이 19석, 더불어시민당 17석, 정의당 5석, 열린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3석씩 나눠가졌다. 이번에도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이 20석 안팎을 차지하고, 10석이 안 되는 남은 의석을 군소 정당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앞서 알앤써치 여론조사의 ‘비례정당 정당 투표’ 질문에서 국민의미래는 37.2%, 민주당 주도 비례연합정당(더불어민주연합)은 22.9%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비례정당은 37%, 민주당 중심 비례연합정당은 25%를 나타냈다.
다만 조국혁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개혁신당, 새로운미래와 다르게 조국혁신당은 창당 이후 오히려 지지율이 올라가는 흐름을 나타낸다. 앞서 알앤써치와 한국갤럽의 ‘비례정당 정당 투표’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은 각각 22.9%와 15%를 기록했다(이상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보완재’로서 역할을 강조하며 민주당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는 3월 5일 만나 윤석열 정권 심판에 힘을 합치자고 뜻을 모았다. 조 대표는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의지가 있어도 조심해야 하는 캠페인을 담대하게 전개하겠다”며 “‘검찰독재 조기 종식’ ‘김건희 씨를 법정으로’ 등 캠페인을 해서 범민주진보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앞서 두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을 합치면 국민의미래 지지율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다.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일시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야권 한 관계자는 “2020년 총선에서도 조국혁신당 같은 위치에 있었던 열린민주당이 초반에는 10%대 후반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결국 총선 직전에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 체제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투표소에 들어가면 결국 거대 양당을 선택하는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국혁신당이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열린민주당 지지율이 흔들린 이유는 총선 막판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열린민주당이 아닌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졌다. 따라서 조국혁신당이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느냐의 관건은 민주당의 총선 선거운동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례대표용 정당이 난립하면서 투표용지에서 유권자들의 눈에 쉽게 띄기 위한 정당 간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준연동형제가 처음 시행된 지난 2020년 4월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선거에 35개 정당이 뛰어들어 투표용지만 48.1cm에 달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투표용지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미 등록된 정당이 56개, 창당 준비 중인 창당준비위원회가 12개 등 총 68개의 세력이 활동하고 있다. 이 정당들이 모두 비례대표 후보를 내서 투표용지에 올라오면, 투표용지 길이는 80cm를 넘을 전망이다.
이처럼 비례정당 투표용지 속 끝없이 열거된 정당들 중 기호는 현역 의원 수가 많을수록 앞 순번에 배치된다.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공천에서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을 ‘이삭줍기’하려 노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역시 기호 앞 순위 배정을 위해 비례 위성정당에 ‘의원 꿔주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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