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야마 아키라, 납세액도 어마어마해 지자체 “제발 이사 가지 마시길”…연재 펑크 한 번도 안 낸 ‘성실맨’
#만화 위상 높인 천재 만화가
작가 도리야마는 1978년 주간지 소년점프에 단편 ‘원더아일랜드’로 데뷔했다. 1980년 첫 장편 ‘닥터슬럼프’를 연재하며 일약 각광을 받았고, 이듬해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사회 현상을 일으켰다.
대표작 ‘드래곤볼’은 1984년부터 무려 11년 동안 연재했다. 주인공인 손오공이 7개를 모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드래곤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다. 캐릭터들의 압도적인 매력과 손에 땀을 쥐는 치열한 액션 대결로 큰 인기를 누렸다. 단행본의 누적 발행부수는 2억 6000만 부를 넘어섰다. 2019년 기준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포함한 드래곤볼 시리즈의 총 매출은 230억 달러(약 30조 2910억 원). 이는 일본 만화 중 독보적인 1위다.
일본 만화시장은 1980년대 급성장했다. 1980년에 ‘닥터슬럼프’, 1984년에 ‘드래곤볼’ 연재를 시작한 도리야마의 공적은 헤아릴 수 없다. 만화 평론가 나쓰메 후사노스케는 “당시 일본에서 만화란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팽배했다. 그 틀을 걷어내고 만화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키운 주역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리야마가 만화가의 정석 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점이다. 1955년생인 도리야마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고디자인 회사에 다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 지각을 밥 먹듯이 한 데다, 반복되는 작업에 싫증을 느껴 2년 반 만에 퇴사했다. 돈에 쪼들리며 방황하던 중 우연히 카페에 놓인 만화잡지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신인상 공모 안내문이 실려 있었던 것. 우승 상금이 무려 50만 엔이라는 특전을 보고 23세에 처음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소년점프의 편집자였던 도리시마 가즈히코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만화계에 입문한다. 도리시마는 “그림체가 개성 있고 효과음을 영어로 표현한 센스가 신선했다”며 “재능이 있으니 원고를 더 많이 보내달라고 연락했다”고 떠올렸다. 불과 몇 년 뒤 도리야마는 일본 만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렸다. 단행본 드래곤볼은 스무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으며, TV 애니메이션 버전은 세계 80개 이상의 나라와 지역에서 방영돼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채워줬다.
드래곤볼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만화가가 되면서 일본 만화시장은 더욱 확대돼 갔다. 인기 만화 ‘원피스’의 작가이자 ‘드래곤볼 칠드런’으로 알려진 오다 에이치로는 “만화 따위를 읽으면 바보 된다던 시대에서 배턴을 넘겨받아 어른도 아이도 만화를 읽고 즐기는 시대를 만든 사람. 만화가 이럴 수도 있구나, 세계에 진출할 수 있구나 하고 꿈을 보여 줬다. 힘차게 돌진하는 히어로를 보는 것 같았다”고 도리야마를 기렸다.
‘나루토’의 작가 기시모토 마사시는 “가진 것 없던 시골 소년이었던 내게는 드래곤볼이 구원이었다”며 “도리야마 선생님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고 ‘만화의 신’이었다”고 기억했다.
#회자되는 전설 같은 일화들
도리야마는 만화·애니메이션계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의 국민 RPG게임 ‘드래곤 퀘스트’ 등 게임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설 같은 일화도 다수 존재한다. 그는 최초로 연소득 5억 엔을 넘은 만화가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액납세자 공시제도가 있어 신고소득액이 1000만 엔 이상이면 공시 대상이 됐다. 도리야마는 ‘닥터슬럼프’가 히트했던 1981년 5억 3924만 엔으로 일본 납세자 순위 기타문화인 부문 1위(전체 35위)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신고소득액은 6억 4745만 엔으로 2년 연속 1위였다. 그의 나이는 고작 20대 중반, 아직 ‘드래곤볼’이라는 전설이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2021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도리야마의 예상 인세 수입은 114억 4000만 엔(약 1020억 원)”이라고 한다. 여기에 애니메이션과 굿즈 수익 등을 포함하면 생전 수입은 천문학적 숫자였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납세액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세금 때문에 도리야마의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를 못가게 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도리야마 집 앞에서 공항까지 직통 도로를 깔아줬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나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피콜로 대마왕, 프리저, 마인부우 등 역대 악역들의 외형이 연재 당시 담당 편집자들과 비슷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도리야마는 “의도해서 그린 건 아니지만 평소 시달린 무의식이 만화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유사성을 인정했다. 초대 편집자였던 도리시마는 후지TV에 “악당 캐릭터 만들기를 어려워했던 도리야마에게 ‘싫은 녀석’의 대표격은 편집자였던 것 같다”고 웃으며 비하인드를 밝혔다.
생전 도리야마는 자신에 대해 “세상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스트’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령 드래곤볼 전투신을 보면 악당이 필살기로 거리를 날려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배경을 그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주인공이 초사이언이 되었을 때 머리가 금발로 염색되는 건 먹칠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가장 바빴던 시절에는 연필 밑선조차 귀찮아서 건너뛰고 바로 선화 단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성실한 만화가였다.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한 명 외엔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고, 연재 펑크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드래곤볼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게임 캐릭터와 일러스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저널리스트 가와시마 다로는 “도리시마의 스케줄 및 작업 관리 능력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드래곤볼 연재 중에는 독자로부터 선물 받은 팬티를 벽에 장식하던 중 담뱃진으로 팬티가 누렇게 변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흡연량은 많으면 하루 세 갑, 마감 전에는 하루 100개비를 피우는 골초였다고 한다.
3월 8일 열린 ‘도쿄애니메이션 어워드페스티벌 2024’에서 도리야마는 공로부문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미리 남겨놓은 수상 소감에서 그는 “젊은 시절 생활 때문인지 건강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다 재미있는 작품 만들기를 목표로 열심히 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전했다. 본인에게도 팬들에게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던 셈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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