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왼쪽)은 지난 10일 5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몰린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해 기성용, 린가드(사진 오른쪽) 등과 인사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사진=서울시 제공](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315/1710478937783387.jpg)
K리그는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1, 2부리그 25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15개 구단이 시도민구단이다. 구단을 운영 중인 지자체의 장은 당연직으로 구단주를 맡는다. 이에 구단의 주요 행사인 개막전에는 김진태 강원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이재준 수원시장 등 대부분 구단주가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일부 기업구단의 경기에도 지자체장이 찾았다. 김관영 전북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지역 홈경기에 방문했다. 기업구단들도 지자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국내 대부분 경기장은 지자체 소유다. 구단 홍보물 설치, 홈경기 진행 등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한 일도 많다.
정치인의 경기장 방문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한다. K리그2의 충남아산 FC는 지난 9일 홈경기에서 정치 시비에 휘말렸다. 충남아산은 이날 부천 FC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붉은색 상하의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스타킹도 붉은색이었다. 원래 충남아산의 상징색은 파랑과 노랑이다. 정작 붉은색은 상대팀 부천을 상징하는 색이다.
![충남아산 FC는 2024시즌 홈 개막전에서 구단의 전통적인 상징색과 다른 색상의 유니폼을 입고 나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315/1710478759241592.jpg)
구단이 창단 이래 꾸준히 사용하던 상징색을 버리고 붉은색 유니폼을 홈 개막전에서 선수들에게 입힌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구단주(박경귀 아산시장)와 명예구단주(김태흠 충남도지사)의 소속정당 색깔을 따라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경기에는 박 시장과 김 지사가 나란히 현장 응원과 시축에 나섰다. 김 지사는 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충남 FC 파이팅"이라는 응원 메시지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팬들은 현장에서 즉각 반발에 나섰다. 특히 서포터즈 인원들은 '축구는 정치 도구가 아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걸개를 내걸었다. 경기 후 충남아산 서포터즈 '아르마다'는 성명문에서 '홈경기 당일 아침 구단으로부터 깃발(응원도구)을 사용해 줄 것을 요청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구단이 제작한 깃발에는 붉은색 깃발도 포함돼 있어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충남아산 구단이 전통의 상징색이 아닌 색상의 유니폼을 이날 경기에 입은 것이 절차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구단은 지난해 말부터 붉은색 유니폼 제작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당일 착용할 유니폼은 사전에 양팀이 조율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인까지 이뤄져야 유니폼 색상이 결정된다.
구단은 새로운 유니폼 색상에 대해 '아산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아산은 매년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 4월 28일을 전후로 성웅이순신축제를 여는 지역이다. 하지만 구단 대표이사의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따라했다"는 발언으로 혼선을 빚었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명예구단주인 김태흠 도지사까지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는 "서포터즈가 (인원이) 많지도 않다, 정치색이 강하다"는 발언으로 축구팬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충남아산 구단은 현재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부터 꾸준히 파랑과 노랑을 홈 유니폼에 녹여왔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315/1710478848283542.jpg)
축구계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국제 스포츠단체인 FIFA, IOC 등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축구 국가대표팀은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세리머니에 나서다 메달 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바 있다.
2019년 보궐선거를 앞두고선 K리그 경기장 내에서 선거운동이 벌어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경기장 내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였기에 구단 측에서 선거운동을 제지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정치인과 선거 운동원들은 막무가내로 경기장에 진입했다. 당시 문제가 된 당대표는 "규정을 몰랐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피해를 입은 구단 측은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제재금 20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한 축구인은 정치권의 각성을 요구했다. 그는 "과거에는 경기장이 선거 유세장 그 자체였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라면 누구나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경기장을 드나들었다. 그땐 당연한 일이었다"며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장 출입을 금지하는 규정이 생겼다. 법을 만들 사람들인데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